본문 바로가기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진실 바라보기 (4)

(2012년 7월 12일)

 

농담 잘못했다가 감옥에 갈 수 있는 나라, 한국


창피한 일이지만 이런 제목의 기사가 CNN 홈페이지를 장식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것은 이곳에 살면서 피부로 느꼈다. 2010년 11월에 돌아와서 느낀 한국은 '정말 많이 좋아졌구나!'이었다. 미국 대사관에서 만난 공무원보다 한국의 관공서에서 만나는 공무원들이 훨씬 더 친절했고, 사태의 정곡을 콕콕 짚어내는 TV의 시사 프로그램들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그런데 지난 1년여 동안 일어난 사태들은 충분히 어처구니가 없고 면목이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조폭 두목에게 무조건 충성하는 똘마니들이나 저지를 만한 '불법사찰'이 자행되고 있음이 드러났고, 누가 봐도 보복성으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 '정봉주 BBK 폭로사건 유죄판결'로 정봉주 전 의원이 구속수감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과 저축은행의 부패고리는 수많은 서민들의 꿈과 희망을 앗아갔고, 경제살리기란 구실로 재벌의 규제완화는 문어발식 사업확장으로 중소 상인들과 자영업자들을 파산의 나락으로 밀어넣었다.


이러한 문제들을 파헤쳐야 할 각종 시사 프로그램들은 없어지거나 축소되었고, 10년 이상 지속된 PD수첩이나 추적60분 같은 프로그램들은 결방되었다. KBS, MBC, YTN 같은 주요 방송사 사장들은 현정권과 코드가 같은 인사들로 채워졌고, 이에 항거하는 파업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해야 할 당국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1987년 민주화 대투쟁 이후,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는 동안 이룩한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 그동안 숨소리 조차 내지않고 조용히 지내던 군사독재의 상징인 전두환씨가 다시 건재함을 과시하며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고, 그의 추종자인 하나회 출신 강창희씨가 입법부의 수장이 되었다.


그 결과인가? 

CNN에 실린 기사가 한국인들을 부끄럽게 한다.

잘못 뽑은 대통령 부시가 미국과 세계경제를 망쳤고, 잘못 뽑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은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


팟캐스트(Podcast) 방송


제도권 방송에서 갈증을 해결하지 못하는 대중들에게 팟캐스트 방송이 인기다. iPod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MP3 음악을 다운로드 받듯이 방송을 다운로드 받아 듣는 것으로 시작한 팟캐스트는 스마트폰이 일반화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큰 돈 들이지 않고, 취재원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는 팟캐스트 방송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김어준이라는 괴짜가 만드는 '나는 꼼수다'가 작년 초부터 젊은 층을 파고 들면서부터다.


30대 젊은 샐러리맨들이 퇴근 후에 대폿집에서 만나 소주로 스트레스를 풀며, 얼큰해진 상태에서 친구들끼리 하는 잡담을 그대로 전하는 듯한 진행으로, '씨발', '좃까', '개새꺄' 같은 원색적이지만, 친구들끼리는 흔히 하는 말투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도권 뉴스에서 밝히지 못한, '내곡동 사저 문제', 선거관리 위원회 컴퓨터 디도스(DDos) 공격 같은 뉴스가 이곳에서 폭로되었다는 것이다.


(사진설명; 나는 꼼수다 제작진으로 왼쪽부터, 자칭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구속된 정봉주 전의원, 시사평론가인 막말파문의 김용민, 시사 IN 기자 주진우)


지금은 수백개 - 어쩌면 수천개 -의 팟캐스트 방송들이 있다. 분야도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어, 스마트 폰만 있다면 관심있는 분야를 골라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시간이 있을 때, 마음대로 들을 수 있다. 나는 아침에 운동하고 샤워할 때나 낮에 운전하면서 주로 듣는다.


나는 꼽살이다 (코메디언 김미화가 진행하는 경제관련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 (오마이뉴스에서 제작한 시사관련 방송으로 이하 '이털남')를 비롯해 도올 김용옥 교수의 강의모음, 인문학 강의 등이 있는데,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이털남에 장진수씨가 출연하면서부터다. 장진수는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씨가 'PD수첩'에서 폭로로 총리실의 '공직윤리 지원관실'이 수사를 받게 되자, 상사의 지시로 관련문서를 파기하였다가, 그 증거인멸 죄를 뒤집어 쓰고 억울하게 실형을 선고 받았던 공무원이다.


윗선에서 아무 일 없게 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죄를 인정했다가 실형을 살고 나와 '그간의 사정'을 폭로했는데, 그가 찾아간 곳은 제도권 방송이 아니라, 바로 팟캐스트인 '이털남'이었다. 평범한 보통사람인 그가 수많은 밤을 고민하여 선택한 곳이 제도권 방송이나 신문사가 아닌 팟캐스트였다라는 사실이 관심을 끌어 본격적으로 듣게 되었다. 제도권 언론이 얼마나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믿지 못했으면, 팟캐스트 진행자를 찾아갔을까?


이렇게 웃기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 한국이다.


<후기>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신입사원 시절, 컴퓨터실 운용요원으로 교대근무를 한 적이 있습니다. A조가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정상근무를 하면, B조는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근무합니다. 물론 C조는 쉬고 다음날 정상근무에 임합니다. 즉 3개조가 돌아가면서 근무하는 거지요.


저는 B조라 저녁 6시까지만 회사에 들어가면 되는데, 그날 아침에 정부 감사원에서 명절을 앞두고 근무기강감사를 나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출근부라는 것이 있었는데, 출근하면 자기 이름을 찾아 그 날짜에 사인을 하는 것이었지요. 감사원들이 출근부를 가져오라고 했고, 출근부를 가져가는 A조 직원은 무책임하게 그날 근무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찾아 친절하게 '가라사인'을 해서 갖다 준 것입니다.


당연히 오후근무인 나는 출근사인이 되어 있으면 안 되는데, 사인이 되어 있으니 문제가 된 것이지요. 담당부장으로부터 송구한(?) 전화를 받고 갔더니 총무부장과 같이 있었는데, 저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리사인'은 죄가 커서, 견책을 받게 되니 보통 경고로 그치는 '사전날인'으로 하자는 것이었지요. 즉 다른 사람이 저지른 선의의 중죄(?)를 감추기 위해 하지도 않은 자신의 경범죄(?)를 인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의 경험이 없고 어리숙하기만 했던 저는 그렇게 하자고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일이 커졌습니다. 감사원에서 '경고'로 미흡하니 기강확립 차원에서 '견책'을 주라고, 지키지 않을 수 없는 권고(?)가 내려온 것입니다. 저는 억울했지요. 견책은 한 호봉이 누락되는 경제적 불이익을 영원히 받게 되는 거니까. 그러나 번복하자니, 이번에는 위증죄가 걸려 여러 사람이 걸려들게 됩니다. A조 당사자, 담당과장, 담당부장, 상벌위원회 위원장인 총무부장 등 높으신 어른들까지.


결국, 제가 그 죄과(?)를 뒤집어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의(?)를 위해서. 그 회사에 14년간 재직했는데, 그 동안 당한 경제적 불이익은 매년 봉급에, 보너스에 퇴직금에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정확히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몆 백만원은 되었을 겁니다. 


 

감출 수만 있으면 일단 감추고 보고, 속일 수만 있으면 속이고 보는 것이 지극히 당연시 되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그때 뼈저리게 새겼던 기회였습니다.

그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ㅎㅎㅎ


참, 이말을 잊었네요.

최근에 본 'Hitler, the rise of Evil (히틀러, 악의 등장)'에서 본 마지막 장면입니다.

"The only thing necessary for the triumph of evil is for good men to do nothing." Edmund Burke 가 한 말입니다.

제가 바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방관자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실 바라보기 (6)  (0) 2013.11.09
진실 바라보기 (5)  (0) 2013.11.09
진실 바라보기 (3)  (0) 2013.11.09
진실 바라보기 (2)  (0) 2013.11.09
진실 바라보기 (1)  (0) 2013.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