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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제주의 삶

좋은 점, 나쁜 점

(2011년 1월)

 

- 생활비? 한 달에 백만 원이면 충분해요. 여기서 내는 월 렌트비면 생활하고 저축까지 할 수 있어. 물론 생활비란 쓰기 나름이지만, 사치스럽게 살 생각 아니잖아? 그러면 백만 원으로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요.

 

- 돈 쓸 일이 뭐 있어? 집만 전세로 하나 갖고 있으면, 집세 나갈 일이 있어? 그리고 놀기만 할 거 아니잖아? 소일거리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생활비는 어떻게든 벌어. 걱정하지 말고 오게나.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이게 사람 사는 거야. 환경이 아무리 좋으면 뭐해? 사람이 재미가 있어야 살지.

 

- 살 거는 쌀하고 고기밖에 없어. 먹을 거는 지천에 널려있어. 주변에서 다 뜯어 먹으면 되. 이웃에서 갖다 주는 것도 다 못 먹어.

 

일 년 전에 미국에 놀러 왔던 처형과 동서가 했던 말이다.

은퇴한 후 아는 사람 없는 제주에 눌러 사는 손위동서와 처형은 외로움 때문인지 우리가 와서 같이 살기를 원했다.

‘무얼 해서 어떻게 먹고 사느냐?’는 내 질문에는 항상 걱정하지 말라는 말 뿐이었다. 물론 나와 집사람을 아니까 하는 말이었겠지만, 미국생활에 불안과 함께 불만이 쌓이기 시작한 내게는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3개월이 걸렸다.

지난 9월말 역이민을 결심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제주에서 정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실직을 하고 취업에 나섰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국에서의 학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니며 몸으로 때우는 테크니션도 아니었다.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절친한 친구 하나는 금융위기 전에 실직을 한 후, 각고의 노력 끝에 재취업을 했는데, 그 친구가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는지 잘 알고 있는 나는 자신도 없었지만, 내세울 것도 없었다. 지금도 그 친구가 살아남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눈물겹도록 처절하다. 50대 중반의 데이터베이스 관리자로 퇴근 후에도 10시가 넘도록 일을 하고 맡겨진 프로젝트를 끝내기 위해 주말까지 스스로 일을 하기도 한다.

 

학력, 언어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친구를 따라갈 수 없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살기도 이젠 싫었다. 지난 십 몇 년 그렇게 산 것으로 충분했다.

 

- 제주 날씨가 원래 이렇지는 않습니다. 오시고 나서 날이 계속 이러니 잘못 왔다고 생각하실까봐 걱정이 됩니다, 하하.

 

일 년에 몇 번 보기 힘들다는 눈이 또 내리고 있었다. 아는 분에게 밀감을 사러 서귀포 다녀오는 길에 눈이 내려 길이 막혀서 우회하고 또 사고가 나서 길을 도느라고,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길을 두 시간 만에 도착했다. 근처에 동서 때문에 알게 된 분이 새로 연 찻집에 들려 난롯가에 자리를 잡고 차를 시켰다. 이층에 앉아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날씨와 주변의 도로가 언제 생겼는지를 물었다.

 

이십년 전만해도 길이 없어서 걸음이 주된 교통수단이었다고 한다.

 

- 전화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어느 날 어르신 한 분이 저녁에 집에 들르셨어요. 전화를 하시지 힘들게 오셨냐고 하니까, ‘기계가 하는 말을 어떻게 믿어?’ 하시더군요. 그게 1980년대였습니다. 이 앞에 길이 들어선 것도 1993년 이야깁니다.

 

미국에서 들은 말들이 다 맞는 것은 아니었다.

이유야 어떻든 전세는 구하기 힘들었고, 가격도 비싸 세를 얻느니 사는 쪽을 택했는데 전화위복이 될지 후회가 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살 거는 쌀과 고기밖에 없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한국은 십 수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변해 있었다.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지하철은, 오물냄새 나고 불결하기 짝이 없는 뉴욕의 100년도 더 된 지하철과는 비교도 안 되게 깨끗했다.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지옥철도 더 이상 아니었다. 쾌적했다. 어디서나 충전이 가능한 교통카드 한 장이면 어디를 가든 지하철이든 버스든 대중교통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서울에서 사서 쓰던 카드를 제주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

 

내가 본 관공서의 공무원들은 대부분 친절했다. 오히려 미국시민으로 찾아간 미국대사관이 훨씬 불편했다. 안내나 표지판 등 어디에 어떻게 줄을 서라는 건지 알 수가 없게 되어 있어서 Notary Seal을 하러 갔다가 엉뚱한 줄에 서는 바람에 30분을 낭비하기도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TV는 한국말로 24시간 방송한다. 미국처럼 드라마, 영화, 음악, 스포츠, 골프 등의 수많은 전문채널이 있고 미국에는 없는 바둑, 장기까지 있다. 미드(미국 드라마)는 한글자막이 있어서 미국에서처럼 이해 못하고 넘어가는 장면이 없다. CNN, MSNBC같은 뉴스 프로그램은 미국과 같이 영어로 방영한다. 또 VOD(Video On Demand) 서비스가 일반화 되어있어 못 본 시사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도 나중에 얼마든지 다시 볼 수 있다. (최근 1주일 프로그램을 다시 보려면 500원에서 천 원 정도의 비용이 들지만) 심심할 짬이 없다. TV보면서도 받았던, 언어로 인한 스트레스는 더 이상 없는데, 가격까지 비할 수 없이 저렴하다. TV, 인터넷, 전화까지 Triple Play가 40불(4만 5천원) 정도다. 요금제도에 약간 차이가 있지만 미국의 90불과는 차이가 크다. 그것도 미국에서는 오직 1년 프로모션 기간뿐이다. 인터넷 속도도 비교가 안 된다. 제주의 변두리에서도 다운로드 속도 4~5Mbps는 쉽게 나온다. 나 같은 한량에게는 더 할 수없는 좋은 조건이다.

 

미국에서는 주거비, 차량 유지비, 식비 순으로 지출이 발생했지만, 이곳에서는 주거비는 크게 부담이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물론 서울에서 산다면 다르겠지만 - 서울에서도 자기 집이라면 지출이 클 것 같지는 않지만 - 최소한 제주는 그렇게 생각된다.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차를 비롯한 전자제품 등 공산품의 값이 매우 비싸다. 만약 역이민을 계획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차와 TV, 비디오 등 200V 겸용제품은 가져오거나, 사 오라고 권하고 싶다. 현대, 기아, 혼다나 토요다 중에 연비가 좋은 실용적인 것으로 사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차를 한국으로 보내는데 $1,500, 관세가 감정가의 30%, 통관 수수료가 80만원이라고 한다. 단, 구입한 지 3달이 넘어야 한다. 3년 된 중고 소나타가 천 오백만원이 넘으니 가지고 있는 차량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면 굳이 팔지 말고, 갖고 오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관세 30%는 한국에서 제작된 차가 아니면 어떤 차라도 부과된다고 한다. 즉 소나타도 미국에서 제작된 것은 관세를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앞으로 한미 FTA가 발효되면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2008년 이후에 제작된 삼성이나 LG TV는 전부 100V ~ 220V 겸용으로 만들어진다. 가전제품은 최소 50%에서 100%까지 차이가 난다. 냉장고나 세탁기까지 가져올 필요는 없겠지만, 다른 것들은 가져와도, 불편하지만 다운 트랜스를 쓰면 대부분 사용할 수 있다. 20W, 100W짜리 소형 트랜스부터 1KW, 3KW짜리 트랜스도 있으니 웬만한 가전제품은 다 쓸 수 있다. 전원장치만 교체 또는 조정하면 되는 컴퓨터는 미국이 훨씬 저렴하니 추가로 하나 사와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주거비는 싸지만, 물가는 많이 비싸다. 고기류는 물론이고 생선 같은 다른 식재료도 미국과는 비교가 안 되게 비싸 보인다. 미국처럼 카트에 잔뜩 실었다면 4~5백 불은 쉽게 나올 것이다. 그러나 주당 소리를 듣는 내게 가장 좋은 것은 소주나 막걸리는 싸다는 것이다. 개스(휘발유)도 많이 비싸지만, 이동거리가 미국에 비해서는 비할 바 없이 짧으니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웬만한 곳은 3마일 이내고 10마일 이상 갈 일은 별로 없다. 봄이 오고 여름이 되어 소풍이라도 다니게 되면 혹 모를 일이다.

 

이곳은 많이 Condensing 되어있다는 느낌이 든다. 공항, 항구, 시청, 도청 등 모든 곳이 가깝다. 어디든 언덕에 올라서면 저 멀리 하얗게 파도치는 바다가 보인다. 북쪽 끝 제주에서 남쪽 끝 서귀포까지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신호등에 걸려 서 있다가 파란불로 바뀌었다고 바로 출발하면 매우 위험하다. 내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고 나서도 오른쪽 길에서 바뀐 빨간 신호에 좌회전하는 차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빨간 신호에서도 지나가는 차가 없으면 그냥 신호르 무시하고 지나간다. 맨 우측 차선은 가급적 이용하지 않는 게 좋다. 불법주차 차량들이 반드시 있어 차선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면도로는 주차된 차량들 때문에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내가 비키거나 상대가 비켜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많이 불편하고 위험을 느꼈지만, 요령이 생기니 불편을 모르고 지낸다.

 

구랍 30일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1일까지 내리다 그치다 하면서 눈 닿는 곳을 온통 하얗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언덕길에서 눈썰매를 탄다. 차를 타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데도 눈 치우는 차량을 볼 수가 없다. 등산화를 신고 아내와 산길을 오른다. 산길로 접어들면 보이는 건 밀감 밭의 노란 귤이요, 들리는 건 새소리다. 눈 위에 찍힌 말굽자국이 보인다. 누군가 말을 타고 지났음이 분명하다. 노루가 저만치서 후다닥 도망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인기척에 놀란 장끼가 몇 발자국 앞 덤불 속에서 요란하게 날아오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이 없다.

 

<후기>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비슷하지 크게 다를 거야 있겠습니까마는 답답함은 없어진 것 같습니다. 잠드는 게 힘들었는데 쉽게 잠에 떨어지는 걸 보면 마음이 편해진 모양입니다. 아내도 내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고 이야기 합니다.

 

저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보다 형편이 못한 분들도 있겠고, 제 이야기가 가소롭게 들리는 넉넉한 분들도 있겠지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형편이 안 되어 부득이 사시는 분들을 주위에서 꽤 보았습니다. 웰페어를 받아야겠기에,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혹은 말 못할 사정들을 갖고, 이것만 해결되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분들에 비하면 저는 행복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경우는 포기가 힘들었습니다. 일단 포기를 하고 나니 그 후는 쉬웠습니다.

정착에 십만 불 정도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집(8천만 원)사고 등기하고, 이사하고, 가구와 인테리어 비용, 자동차, 가전제품 장만하는 데 1억 천만 원 들었습니다. 일단 한가로움을 즐기고 일 할 곳을 알아볼 예정입니다. 현재로선 백만 원 벌이만 한다면 무엇이든 하려고 합니다. 필요한 정보 있으면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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