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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제주의 삶

귀국해서 한달

(2010년 12월 말에, 제주시 월평동에서)

 

- 이봐요, 당신 뭐하는 거요? 일찍 와서 접수한 사람들부터 순서대로 나눠줘야 할 거 아니요? 늦게 와서 접수한 사람들 먼저 주면 일찍부터 와서 기다린 사람은 뭐야. 이런 꼴 보기 싫어서 한국 떠났었는데 돌아오자마자 또 다시 이런 꼴을 봐야하는 거야!

 

나보다 먼저 나서 준 그 분이 고마웠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점잖은 차림의 노부부가 아무 표정 없이 순서를 무시한 채 일을 하는 담당자에게 고함을 쳤다.

60대로 보이는 또 다른 분이 거들었다.

 

- , 당신!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면서 어찌 일은 한국식으로 처리하는 거야. 아침에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와서 기다린 사람들은 뭐야? 시간이 남아돌아 그런 줄 알아. 순서를 지켜야 될 거 아냐?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처리한 일 중의 하나가 와이프의 영주권 포기였다. (집사람은 어떤 이유로 영주권 상태로 있었다.)

 

토요일에 도착해서 월요일 아침에 광화문에 있는 미 대사관을 찾아갔지만 영주권 포기는 수요일에만 접수를 받는다고 했다. 창구에서 I-407 (Abandonment of Lawful Permanent Resident Status) Form과 주민등록을 회복하기 위한 절차안내서를 얻었으니 아주 헛걸음은 아니었지만. (혹 같은 일로 미 대사관을 찾는 분들은, 저처럼 헛걸음 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전화를 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또 인터넷에서 I-407 양식을 미리 받아서 작성하시기를.)

 

재미있는 일은, 양식을 받아 나오는 길에 웬 아주머니들이 호객을 하고 있었다.

- 영주권 포기하세요? 양식 잘못 쓰면 큰일 나요. 양식 써드릴게요. 3만원이면 돼요.

이름, 영주권 번호, 주소 그리고 영주권을 포기하는 이유를 영어로 쓰는 간단한 일인데도 그걸 대행해 주겠다며 호객을 하는 것이었다.

 

수요일 아침 일찍 다시 대사관을 찾았다.

전날 미리 양식을 작성해 놓았음은 물론이고, 일이 끝난 후 제주로 가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저녁 비행기를 예약해 두었다. 미 대사관에서 서류처리만 빨리 되면 모든 일은 한나절이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대사관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무시하고 창구에서 안내된 대로, 바로 3층으로 올라가니 열두어 명가량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작성한 서류를 창구에 제출하니 이름을 부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그러니 이미 와 있던 분들은 나보다 더 부지런한 분들이었다. 기다리면서 한가하게 주위를 둘러보니 60대 후반이나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50대로 보이는 분들도 몇 명 보였다.

 

창구에서 서류를 받는 유리 칸막이 너머 친구에게도 눈이 갔다. 얼굴이 검고 덩치가 있는 그 친구는 40후반으로 보였는데, 사람이 창구 앞에 기다리는데도 전화를 오래 받는 등 보기에도 꽤나 불친절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계속 들어왔고 서류를 창구 안으로 넣고 자리를 잡고 앉는 바람에 대기석은 금방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검은 얼굴이 대기석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 대사관에 바쁜 일이 있어서 서류처리를 바로 할 수가 없습니다. 오후 2시에 오시기 바랍니다. 그 때 교부해 드리겠습니다.

 

비행기 예약시간 때문에 난감했지만, 하는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1시 반에 다시 대사관에 들어섰으나 두시가 넘어서도 창구의 검은 얼굴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고 묻는 사람에게는 그냥 기다리라고 할 뿐이었다. 그 시간에 서류를 접수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졌고, 불평으로 수군거림이 고조되기 시작한 세시가 다 되어서야 확인서를 나눠주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접수순서에 관계없이 사람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오후 2시가 다 되어 접수시킨 사람들의 이름이 아침 이른 시간에 접수시킨 사람보다 더 빨리 호명되고 있는 것이었다.

 

머리에 김이 나기 시작한 지 한참 된 나였지만, 그곳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나이가 젊은 축에 들어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중이었는데, 점잖으신 어르신 하나가 참지 못하고 호통을 치신 것이다. 아침부터 기다렸으니 다들 다른 약속들이 있었을 것이고 하릴없이 기다리면서 시간을 죽였으니 시간에 쫓겨 초소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서울에 연고지가 없는 분들은 호텔이나 여관에서 숙식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볼 일이 지체되면 예정에 없이 하루를 더 호텔에서 묵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들 연세가 있는 분들이다.

 

그러나 그 검은 얼굴은 흘깃 한번 쳐다보았을 뿐 100장도 넘는 그 서류들을 제멋대로 한 사람씩 순서에 관계없이 호명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대사관에 항의해서라도 이사람 혼내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잊기도 했고 또 절차가 번거롭게 생각되었다.)

 

서류를 뒤늦게 받아든 사람들은 더 이상 다툴 시간이 없이, 바로 근처에 있는 외교통상부의 여권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관공서 퇴근 전에 그 확인서를 여권과에 제출해서 거주여권을 취소한 후, 그 증빙서를 받아 동회에 제출하여야만 말소된 주민등록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 검은 얼굴이 항상 불친절한 것만은 아니었다. 기다리던 중에 젊은 미국인이 부인으로 보이는 한국여자와 함께 나타나자,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하던 전화도 끊고 보기에도 친절하고 정답게 응대하는 것이었다. (이런 걸 본 사람들을 더 열 받을 수밖에.)

 

외국국적동포 국내거소신고증(이하 거소신고증)’을 신청하기 위해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1시 쯤 들린 제주 출입국관리소는 한가했다. 서양인 하나가 옆 창구에서 여직원과 마주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필요한 양식을 작성한 후 수수료와 함께 제출하니 창구의 직원은 미국여권도 달라고 하였다. 1주일 후 거소신고증 찾을 때 여권도 같이 돌려준다고 한다.

 

- How long can I stay in this country?

 

- 내년 520일 까지 서류 가지고 다시 오면 됩니다.

 

옆 창구의 서양인은 “H~O~W L~O~N~G C~A~N I ~~~~" 아까 한 말을 한 단어씩 천천히 되뇌고 있었다. 상대에게 확실히 알아듣게 하려는 듯.

 

여직원은 서양인의 말을 알아듣고 한국말로 대답하고 있었으나 갈색점퍼 차림의 서양인은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듯했다.

 

- 혹시, 통역 필요하세요? 내가 물었다.

 

여직원 옆에는 입에는 칫솔을 물고, 한손에는 컵을 다른 한손에는 서류를 들고 들여다보고 서있는 남자직원이 있었는데 그가 대답했다.

 

- 필요 없어요. 괜찮아요.

 

그곳을 걸어 나오면서 묘한 통쾌감을 느꼈다. 그동안 영어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가!

이민국에 갈 때마다 혹 잘못 알아듣고 잘못 대답할까봐 노심초사하지 않았던가?

대기석에 앉아 내 이름을 기다리면서 실수하지 않을까 얼마나 긴장하며 기다렸었던가?

간단한 영어도 한국말로 대답하는 여직원도 문제였지만, 한국에 거주하면서 간단한 한국말도 못 알아듣고 쩔쩔매는 젊은 친구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면 내게 문제 있는 걸까? 하하하

 

부천시 중동에 사는 여동생 집에 며칠 기거했다. 80년대 후반 분당, 일산, 평촌, 안산과 함께 수도권 거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어진 신도시다. 바둑판처럼 구획정리가 잘 되어있고 2~30층짜리 아파트가 즐비하다. 주변에는 40층이 넘어 보이는 주상복합 건물 여러 동이 건축되어 마무리 중에 있었다.

 

일요일 아침 중앙공원을 산책했다. 시청 앞에 있는 공원은 조깅코스, 산책도로, 자전거 길과 각종 운동기구 등이 깨끗하고 산뜻한 주변풍광과 어우러져 인상적이었다.

 

두터운 외투와 방한모, 목도리로 중무장한 두 쌍의 서양인 부부가 내 앞에서 이야기 하며 천천히 산책하고 있었다.

 

- Hey, Puppy!(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Stop! Don't go there.

 

빨간 외투 차림의 여자가 자기 앞에서 뛰어가는 푸들 강아지에게 하는 말이었다.

푸들은 냄새를 맡는지 이곳저곳에서 코를 박아대다가 달려가곤 했다.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인 푸들을 향해 여자가 다시 소리쳤다.

 

- , 거기 서. 가지마! , .

 

마음 깊은 곳에서 통쾌한 웃음이 터졌다.

이곳에서는 강아지도 한국말을 해야 알아듣는구나!

 

<후기>

11월 중순의 토요일 새벽 도착한 인천공항은 싸늘했지만, 마음만은 내 나라에 왔다는 생각에서인지 푸근했습니다. 조카와 함께 새벽에 마중 나온 매제의 속없는 웃음도 마음을 가볍게 했습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살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외국국적동포국내거소신고증이라는 긴 이름의 주민등록증 역할을 하는 증명서 만들기였습니다. 목요일에 신청했는데 다음 화요일에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처음에는 2년간의 체류허가를 주는데, 다음 갱신부터는 3년을 준다고 합니다. 갱신하기 위해 해외로 나갔다 올 필요는 없고, 제한 없이 준다고 합니다. 의료보험은 아직 안 만들었지만, 의료보험 만들 때에도 필요합니다. 이것만 있으면 은행통장도 만들고 신용카드도 만들 수 있습니다. 한국생활에 불편이 없는 거지요.(주의할 점: 여권에 있는 영어이름을 사용하는데, 신청할 때 창구에서 부탁하면 영어이름 밑에 괄호로 한글이름을 넣어줍니다. 저는 처음에 몰라서 나중에 다시 만들었습니다. 이때, 국적말소 표시가 있는 기본증명서를 동회에서 발급받아가야 합니다. 한국에서 영어로 이름쓰기가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니까요.)

 

다음은 자동차 면허증 만들기였는데, 미국대사관에 가셔서 미국 면허증 공증을 받아가야 합니다. 전화로 예약을 하면 오전에,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오후 한시 이후에 대사관 앞에서 줄을 섰다가 들어가야 합니다. 시민권자가 들어가는 입구는 광화문 대로를 향해 따로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한국 여직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선서를 하는 맨 왼쪽창구만 한국말을 못하는 흑인 여직원이 있습니다.

 

이것과 함께 미국 면허증, 반명함판 사진과 수수료를 내면 전국 어디에나 있는 자동차 면허 시험장에서 한국 면허증으로 바꿔줍니다. 이때 미국 면허증은 시험장에서 보관합니다. 면허증 두 개를 같이 갖고 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출국할 때 들리면 한국 면허증과 교환하여 돌려준다고 합니다.

 

다음은 차를 사는 것이었는데, 중고차 값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활비를 가급적 줄이기 위해 모닝이라는 1,000cc짜리 2년 된 중고차를 8백만 원에 구입했습니다. 경차라 등록세나 취득세도 없고 개스도 적게 먹는다는 이야기에 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주라는 좁은 땅에서 두 식구가 타기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것은 다 상대적인가 봅니다. 미국에서는 그렇게 작아 보이던 소나타도 이곳에서는 대형차처럼 커 보이니까요.

 

2주 전에 이사를 했습니다. 그동안 짐정리하고 필요한 물건들 사들이느라고 바빴지만, 이제는 한가해졌습니다. 날씨는 LA에 비할 수 없이 춥지만, 서울에 비해서는 훨씬 덜합니다. 그래서 운동으로 조깅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이곳은 눈이 왔습니다. 뉴저지에서 10년을 넘게 살았어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맞은 셈입니다. 눈을 맞으며 집사람과 8마일을 걸었습니다.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눈 덮인 산길을 걸으며 길옆 밀감농장의 귤을 서너 개 도둑질(?)해 먹기도 했습니다. 마주 불어오는 바람이 매서웠지만 가슴만은 따듯하고 푸근했습니다.

 

내년에는 경기가 좋아져서 미국에 사시는 한인 모두가 따듯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제주에서 희망의 새해를 나흘 앞두고 카페지기가.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눈 내리는 풍광이 너무 좋아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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