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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제주의 삶

물가를 비교한다

(2011년 2월)

 

- 어이구, 친구야! 오랜만이다. 잘 지냈나? 웬 일이냐? 5일장엘 다 나오고.

 

- 진짜 오랜만이다. 장사는 잘 되냐?

 

-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 5십만 원 주고 갈치 13마리를 사서 구색을 갖춰 놓았거든. 한 마리에 5만원씩 팔고 있는데 한 마리도 못 팔았어. 명색이 생선가겐데, 갈치 없이 장사할 수도 없고.

 

제주 오일장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특별한 일이 있어 오일장을 간 것도 아니고, 집사람을 따라 나선 것인데 이리저리 서성대며 사람 사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 내겐 흥미롭다. 2일, 7일은 제주에서 4일, 9일은 서귀포에서 장이 선다고 한다.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와 함께 살포시 비린내를 풍기는 생선지역으로 들어섰다. 바둑판처럼 좌판을 진열하고 그 사이가 통로다. 좌판 안쪽으로 주인들이 앉아 지나가는 손님들을 부르기도 하고 생선을 손질하기도 한다. 갈치와 꽁치, 고등어 등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생선들과 이름을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생선들이 즐비하게 좌판 위에서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생선을 좋아하는 나는, 유독 먹음직스럽게 빛깔 좋고 두툼한 갈치가 눈에 띄어 가격이나 보려고 걸음을 떼는 중에 그 가게 주인인 듯한 젊은 친구가 지나가다 만난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생선 한 마리에 50불이라니!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잠시 혼동이 왔다.

 

미국의 한인마트에서도 ‘제주 은갈치’를 판다. 여기처럼 비싸지 않았지만, ‘갈치가 다 거기서 거기지.’ 하는 생각에 싼 것만 사다 먹은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 보니 ‘한국산’ 또는 ‘국내산’이라는 표시가 있는 먹거리는 무조건 비싸다. 먹거리에 대해 문외한인 내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 같은 생선인데 거기서 거기겠지’라는 생각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먹어보니 틀린다. 제주 은갈치는 조리거나 굽거나 해도 입안에서 녹는 듯이 부드러웠다. 그래도 그렇지, 한 마리에 50불짜리 생선을 서민이 어찌 사먹을 수 있을까 싶다. 왜 한국에서 수입하는 제주 은갈치가 미국에서 더 싼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20불짜리 갈치도 비싸다고 하지 말고 사먹었어야 했다고 때 늦은 후회(?)가 들기도 한다.

 

하긴 LA 지역의 한인마트들의 가격은 지나친 경쟁으로 많이 왜곡되었다고 생각한다. LA의 Ralph나 동부의 ShopRite는 가격차이가 별로 없지만, LA의 한아름과 동부의 한아름은 가격차이가 큰 것을 경험했다. 이유야 어떻든 LA에 사시는 분들은 물가만큼은 혜택을 누린다고 생각한다. LA의 무한 리필 $9.99짜리 삼겹살이나, $2.99 자장면 등 비정상적인 가격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물가는 미국과는 비할 수 없이 비싸다.

 

농수산물 같은 1차 상품은 물론이고, 특별소비세가 붙는 TV같은 2차 상품도 두 배 이상 비싸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에게 TV를 사주었다. Buyers Edge라는 인터넷 몰에서 LG 47" LED TV를 $1,039(세금포함 $1,111)에 샀다. 한국에서는 동급이 G마트라는 인터넷 몰에서 \2,100,000에 팔리고 있다.

 

이곳 제주는 도시가스 시설이 없다. 몇 년 전 도시가스 기지를 건설하는 계획이 있었는데 제주도민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난방과 조리에 LPG 가스를 사용한다. 도시가스보다 30%이상 비싸다고 한다. 난방비가 무서워 난방시간을 최소로 하고 내복을 입고 집안에서도 스웨터를 입는다. 그렇게 해도 제주에서조차 기록적으로 낮은 기온 탓인지 1월에는 벌써 25만원이 넘는다.

 

개스도 $6(리터당 \1,800)이 넘는다.

도무지 소득이 더 적은 나라가 미국보다 싼 게 없다. 무엇 때문에 미국보다 생활비가 저렴하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상점들의 간판을 본다. 삼겹살 1인분에 \4,800이라고 커다랗게 써 붙인 간판이 보인다. 삼겹살 자체는 미국보다 많이 비싼데도 그걸 재료로 파는 음식점은 미국보다 훨씬 싸다. 3차 상품 즉, 서비스 비용이 저렴한 것이다.

 

답은 인건비다.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의 인건비는 미국과 큰 차이가 없지만, 노동위주의 저소득층 인건비는 형편없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음식점, 세탁소 같은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힘들게 살고 있다는 뜻일 거다. 케이블 TV, 인터넷 비용이 싸다. 택배, A/S같이 저렴한 서비스 비용은 비교할 수가 없다. 대중교통비도 싸다. 택시비는 맨하탄과 별 차이 없지만, 지하철이나 버스는 많이 싸다. 서울에서 1불이면 웬만한 곳은 다 간다. 제주에서 김포까지 싼 항공료를 찾으면 3만원이하지만, 공항이용료(4천원)와 유류할증료(8,800원)가 별도로 붙는다. 그래도 싼 편이다.

 

의료보험공단에 들렸다. 집사람은 주민등록을 회복했으니 의료보험자격이 있다. 주민등록을 살린 시점부터 두 달간의 보험료 청구서를 엊그제 받았다. 두 달에 $80이다. 나는 3개월이 되는 2월에 다시 오라고 한다. 외국인의 신분이라 혼자라면 한 달에 $80이지만, 부부로 신청하면 둘이 한 달에 8~9만원($80) 정도라고 한다. 미국의 10%도 안 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금도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하는 이 제도가 앞으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주거비가 싸다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도 오레곤, 몬타나, 유타 같은 시골의 주거비는 싸지만, 한국 사람이 살기에는 쉽지 않다. 한국의 주거비가 싸다는 것은 전세제도가 있기 때문이지만 사라지고 있는 제도로 제주에는 찾기가 쉽지 않다. 주거비가 싼 것은 세금이 싸기 때문일 것이다. Property Tax 즉 재산세는 내가 집 갖고 살던 뉴저지와는 비교가 안 된다. 작은 집이라도 하나 갖고 있으면 주거로 인한 지출은 거의 없다. 백야드의 잔디를 관리하기 위한 지출이나 비싼 수돗물을 줄 일도 없고 콘도에 산다면 관리비도 싸다.

 

다른 분들 이야기대로 한 달 생활에 백만원이면 충분할 지는 아직 의문이다.

 

1,000cc짜리 차가 오죽하겠는가? 조금만 오르막이면 차가 빌빌댄다. 삼차선 길의 일 차선에서 빌빌 올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왼편에서 굉음이 들린다. 커다란 덤프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빌빌대는 내 차를 추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람과 함께 순간 공포를 느낀다. 중앙선에 칸막이는 없어도 비교적 넓게 노란색으로 빗금이 쳐져있는데 그걸 넘어서 추월을 한다. 그것도 집채만한 덤프트럭이.

 

제주 운전자들의 교통질서의식은 수준이하다. 아무데서나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일쑤는 물론이고, 한적한 곳에서는 신호등마저 지키지 않는다. 일인당 차량대수가 전국 평균을 30% 웃돈다. 30분 또는 한 두 시간 마다 한 대씩 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너무 불편하다. 오래된 길은 좁고 구불구불한데다 경사도 심한데 그런 곳에서도 속력을 내고 추월을 한다. 개스가 6불이나 하는 나라에서 급가속과 급제동으로 개스를 축낸다. 고급차도 무척 많다. 제주에서도 머세데즈나 BMW를 심심찮게 본다. 이걸 탓할 수는 없다. 어제 뉴스에서 제주시 공공택지 분양가가 역사상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평당 486만원. 라스베가스 초기에 에이커당 4불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과 함께, 2~30년 전 몇 천원 몇 만원 하던 땅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스위스에서 세계 7대 자연경관을 뽑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한다. 1차적으로 28곳이 선정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제주도다. 금년 11월 최종 목적지인 7대 경관에 선정되기 위해 위원회가 구성되고 전 총리인 정운찬씨가 위원장이다. 경쟁지는 그랜드캐년, 아마존, 이과수, 하롱베이 같이 세계적으로 쟁쟁한 곳이다. 물론 선정이 된다면 제주도민으로 영광이고 한국인으로서 자랑이다.

 

하지만 선정만 되면 끝인가? 세계적 망신거리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먼저 주민들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도록, 교통질서를 지키도록, 외지인에게 친절하도록 意識의 개조가 필요하다. 길을 걷다보면 곳곳에 함부로 버려진 비료포대, 음료수 깡통, 과자 봉지, 담배갑 등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단속하는 카메라가 없다고 신호등조차 지켜지지 않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불친절에 음식점에 들어와 앉은 것이 후회가 되는데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7대 경관’에만 선정되면 된다는 것인가? 짧은 시간에 높은 성장을 한 탓인지 한국은 세계순위 같은 명성과 하드웨어에는 광적으로 집착하지만 소프트웨어는 도외시한다. 전형적인 졸부의 모습이다.

 

물론 제주는 아름답다. 아직은 때가 타지 않은 자연경관이 있기 때문이다. 516 도로 주변의 자연림, 깨끗한 바다, 수려한 한라산이 있어 그렇다. 그러나 지금 파괴되고 있다. 20층 높이의 아파트가 곳곳에 들어서고 재벌들이 앞 다퉈 대규모 리조트를 건설하며 자연훼손에 앞장서고 있다. 관광업계에 종사하는 대부분은 급여가 없고 업체로부터 커미션을 받는다고 한다. 관광버스 기사가 관광객을 실어 나르면 손님의 머릿수에 따라 관광지 입장료나 음식비의 일부분이 기사의 수입이 되는 비정상적인 행태가 관행인 산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난하지만 마음 편하게 살자는 생각으로 돌아온 한국에서의 생활이 세 달로 접어든다. 제주로 이사해서는 한 달 반이다. 컴퓨터를 새로 셋업하고 평소 배우고 싶었던 프로그램도 새로 설치했다. 책이나 영화를 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글을 읽기도 한다. 물론 오솔길을 뛰다가 걷다가 하는 운동도 빼놓을 수 없다.

 

<후기>

어떤 분이 제 글을 보고 ‘최근 역이민 논쟁’이라는 글을 올린 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제가 시간을 내어 글을 올리는 뜻이 왜곡되었기 때문이지요.

 

누차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이 좋다 미국이 좋다'라는 의미로 쓰는 글이 아니니까요. 혹 어떤 이유에서든 한국으로 역이민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잘 적응하고 즐기면서 사시는 분들은 하등 읽을 가치가 없는 글입니다. 경제상황이 한국이 좋고 미국이 나쁘기 때문도 아닙니다. 아무리 미국경기가 나쁘고 한국이 좋다고 해도 미국이 한국보다는 낫겠지요. 경제규모나 비중이 비교나 할 수 있습니까?

 

산타모니카 같은 멋진 해변이 한국에는 없습니다. 강원랜드를 가보지는 않았지만, 라스베가스나 애틀란타 시티에 비교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살기 좋아도 적응이 안 되는 분도 있고 저같이 실패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연세가 들어서 고국을 찾고 싶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런 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글 쓰는 시간이 아깝지는 않습니다.

 

F4라는 비자가 있는지 몰랐을 때에,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미시민권을 유지하면서 한국에서 불법체류를 하지 않기 위해서 1년에 한 번씩 해외에 나갔다가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같이 무식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겁니다.

내가 행복하다고 다른 사람도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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