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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교민업소에서 당한 나쁜 경험들

(2011년 11월 11일)

 

10년을 훨씬 넘게 살았어도 미국인들과 대화할 때는 항상 긴장하게 된다. 혹시 놓치는 이야기가 있을까봐 그렇기도 하지만, 잘못해서 손해를 입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귀와 눈, 그리고 머릿속이 본능적으로 잔뜩 긴장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조크에도 웃음이 나오지도 않고, 나 자신도 대화에 유머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어진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가장 좋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하다. 어딜가나 말 때문에 긴장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적당히 유머를 섞어가며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이민 초창기에에 당연히 그랬지만, 웬만큼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게 된 후에도 병원이나 변호사, 테크니션 등이 필요할 때는 한인업소를 찾게 된다. 그런데 한인업소를 이용하고 나서는 후회할 때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 나쁜 기억들을 꺼내본다.

 

첫 번 째 나쁜 기억은 14년 전 주택을 구입한 후 클로징을 위해 난생 처음으로 선임한 변호사였다. 양XX라는 변호사를 소개한 분은 당시 나가던 교회의 집사였다. 이민 초창기 시절이라 매사 혼자 결정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찾아 물어보고 했었다. 뉴저지에서 유일했던 친구에게 물었더니 얼마 전에 집을 사서 클로징한 적이 있는, 같은 교회에 나가는 OO집사에게 물어보란다. OO집사는 자기가 집을 살 때 약간의 문제가 있었는데, 양 변호사가 깔끔하게 처리해주었다며 소개해 주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그 둘은 친구 사이였다. 변호사 비용을 물었더니 남들 받는 만큼 받는다고 한다.

 

당시에는 보스톤에 출장을 가있었는데,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변호사가 게으르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수시로 연락이 왔다. 그래서 전화를 하면, 그의 부인이 받는데 잘 연결이 되지 않기도 했지만 매우 퉁명스럽고 대답도 흐리멍텅했다. 줄리라는 미국인 아줌마 리얼터의 말을 듣고 변호사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았지만 바꾸기에는 시간이 늦어 있었다.

 

그 변호사에게 일을 계속 시킬 수 밖에 없었고, 그 나마도 그 친구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사정조로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클로징 비용으로 6백불도 비싸다고들 했지만, 그는 9백불을 요구했다. 6년 후, 그 집을 다시 팔 때는 리빙스턴 시장을 지냈던 변호사에게 맡기고 6백불을 주었다.

 

클로징을 하고 나서도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정산금에 문제가 생겨 셀러 측에서 8백불 가량을 요구했지만, 내 계산에는 4백불이 맞는 금액이었다. 양 변호사에게 전화하니, 그는 집 하나 클로징 한 것 가지고 정말 귀찮게 한다고 하며 그쪽 이야기가 맞으니까 다 주라고 하였다.

 

○ 당신이 셀러쪽 변호사요 바이어 쪽 변호사요, 어떻게 셀러쪽 이야기만 듣는 거요.

 

- 뭐야, 이 사람이 양 변호사를 뭘로 보고 큰 소리야!

 

당신 교민사회에서 어떻게 소문 났는지 알아!

 

- 어떻게 났는데?

 

이제 막 와서 아무 것도 모르는 이민자들 등쳐먹고 산다며! 잘 쳐 먹고 잘 살아, 이 자식아.

 

며칠 후, 셀러측 변호사에게서 언제까지 돈을 보내지 않으면 소액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편지가 왔다. 돈도 돈이지만, 달라는 대로 다 주고나면 억울해서 며칠 잠을 이루지 못할 것만 같았다. 셀러 측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는 내 말은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끊었다. 고심 끝에 내가 생각하는 금액의 수표를 끊고, 그 사유와 계산 방법을 상세히 적어 편지로 보냈고 그것으로 그 사건은 변호사 개입없이 종결되었다.

 

한국의 소위 S대를 나왔다고 광고하는 그 변호사에 대해 주위 사람들에게 물으니, 그 사람에게 일 시키면 안 된다고들 하였다. 영어 못하는 이민자들 등쳐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친구 와이프 조차, '그 사람에게 일 시키면 안 되는데.... 소문난 사람인데, 쯧쯧' 하며 혀를 찼다. 그래서 그런지 몇 년 후에는 뉴욕에서 뉴저지 에디슨이라는 타운으로 이전을 하였다는 광고를 보았다.

 

그 후로는 집을 사고 팔 때 다시는 한국인 변호사를 찾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두 번 째는 집에 에어컨이 고장났을 때였다.

 

그렇게 클로징을 한 것은 3월 초이었다. 여름이 와서 에어컨을 틀었더니 더운 바람만 나왔다. 다시 유일하게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나도 몇 번 보고 인사를 했던 적이 있는 김XX 집사를 소개했다. 갑자기 찾아온 더위로 바쁘다는 그에게 사정을 해서 수리를 받았는데, 수리비가 4백불이라고 했다. 가스가 하나도 없어서 가스를 채웠다고 했다. 새는 곳이 있는 것 같은데 못 찾았다는 말도 했다.

 

다음 해에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했다. 이번에는 회사 일로 아는 업체가 생겨서 그곳에 부탁했다. 이번에는 수리비가 $280 이었다. 그것도 새는 곳을 찾아 밸브를 교체까지 해서, 그 집을 팔 때까지 다시는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이 경험은 작년에 LA에서 서바이벌을 위해 에어컨 테크니션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고, 잠깐이나마 테크니션으로 따라다닌 경험으로 김 집사라는 분이 얼마나 형편없고 또 얼마나 바가지를 씌웠는지도 다시 생각나게 했다. 가정용 에어컨에 가스가 없을 때는 제일 첫 번 째 의심해야하는 곳이 그 밸브였다. 그 때는 더 쌌겠지만, 가정용 5톤 짜리 가스충전은 백불이면 충분했다. 많이 받아다 해도 $150.

 

세 번 째는 뉴저지 팔리세이드 팍에 있는 정OO 발병원에서의 경험이다.

 

구두에 문제가 있었는지 오른 쪽 발바닥 뒷굼치 부분에 통증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했지만, 오히려 통증이 더 심해졌고 그래서 찾아간 발병원이었다.

의사는 대뜸 '이곳이 아프지요?' 하고 아픈 부위를 정확히 집었다.

 

- 이거 잘 낫지 않는 병입니다. 통증은 주사로 없애 드릴 수는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가면 다시 재발합니다. 그 때는 또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재발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져요. 근본치료는 신발에 까는 깔창을 맞춰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신발이 의료보험이 안 되요. 한 번에 $380인데 6개월에 한 번씩 바꿔야 합니다.

 

- 발을 웬만하면 사용하지 마세요. 혹 서있는 직업은 아니시죠? 다행입니다. 당분간 발을 사용하지 마세요. 조깅이나 등산도 안 됩니다. 깔창을 깔아서 염증 부위를 가라앉혀야 합니다.

 

그는 깔창을 팔기위해 열심이었지만, 나는 긴가 민가해서 주사만 놓아달라고 했다. 주사를 맞자 신기하게도 통증은 멈추었다. 닥터는 내게 스트레칭 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장딴지 근육이 늘어나서 아플 정도로 스트레칭을 하라고 했다. 나는 월그린에 가서 십불하는 깔창을 사서 신고 다녔지만, 통증이 없어지자 곧 잊고 말았다.

 

6개월 쯤 지난 후, 통증은 다시 찾아왔고 이번에도 병원에 갔다.

- 보통 3개월이면 다시 찾아 오는데 오랜만에 오셨네요. 깔창없이 치료되기 힘듭니다.

 

이번에도 그는 깔창을 팔기위해 열심이었지만, 나는 깔창으로 아픔이 없어진다면 다른 방법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도 주사만 맞고 나왔다. 대신 집에 돌아와서는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고, 금방 '족저근막염(Plantar Fasciitis)'이라는 병명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닥터는 왜 병명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면 일시적으로 통증은 없어지나 절대 맞지 말라는 말도 있었지만, 깔창을 맞추어 신으라는 말은 없었다. 뒷꿈치를 보호할 수 있는 쿠션이 있는 것을 추천하고 있었고, 대부분 스트레칭 운동으로 호전될 수 있으며, 여러가지 스트레칭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열심히 그대로 따라 했더니 몇 달 후에 통증은 없어졌으며 5~6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괜찮다.

 

<후기>

영어 때문에 항상 긴장하고 기죽어 살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라 글을 쓰긴 했지만, 이런 글을 올리자니 남의 땅에서 정직하게 열심히 사시는 많은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비싼 수업료 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꼼꼼하지 못한 내 잘못도 큽니다만, 같은 말을 쓰는 한국인이라고 믿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거꾸로 이용하는 짓이야말로 정말 나쁜 짓이라고 믿어집니다. 더 잘해 주지는 못할지언정.

 

그런데 위의 일은 뉴저지에서 겪은 일이지만, LA에 1년 남짓 살다보니까 이 정도는 약과더군요. 오히려 믿는 사람들이 더 하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가장 실수한 것 중의 하나가, 지인의 말만 믿고 2009년 여름 뉴저지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것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가 기후는 좋지만 한인끼리의 경쟁이 너무 심하고 임금도 너무 적더군요.

 

어려운 때이니 서로 돕고 살아도 힘들 텐데 하는 생각에 옛날 일을 꺼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