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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기타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을 보고

프로그래머는 아니지만 평생을 컴퓨터로 먹고 살았고, 비록 젊었을 때 이야기지만 아마추어 세계에서는 적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강1급 실력이었던 만큼 이번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 특별히 관심이 컸다. 6개월 전 알파고가 유럽 바둑 챔피언인 '판후이'를 5대0으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대부분 다른 이견이 없다는 듯, 이세돌의 승리를 확신한다고 방송했다. 또한 언론의 취재에 응한 이세돌은, 한 판이라도 자신이 진다면 그건 알파고의 승리라고까지 호언하며 승리를 자신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알파고를 개발한 사람이 웬만큼 자신이 없다면 세계 최고수에게 도전장을 던졌을 리 없고, 또한 최초 개발자이자 설립자인 옥스포드 출신 중국계 영국인은 수학 천재로 아마추어 바둑 고수이었다. 가로, 세로 19줄의 총 361개의 착점을 갖고 있는 바둑의 알고리즘을 분석, 철저한 계산으로 이기는 수만을 찾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둑판 위의 돌이 많아질수록 착점할 곳이 적어지기 때문에 알파고는 종반으로 갈수록 경우의 수가 적어져 계산이 쉬워진다. 더군다나 감정이 없는 알파고는 상대의 독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번 대국의 룰에 대한 요점은 이렇다.


총 5번의 대국을 두어 3승을 하면 승리자가 된다. 보통의 기전이라면 5전 3선승제로 어느 한쪽이 3승을 먼저 거두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이번 대회는 다섯 번의 대국을 다 치루기에 5패나 1승4패의 전적도 나올 수 있다. 학습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에게 학습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우승 상금은 백만불이다. 대국료는 한 판에 3만 불이고, 승리수당은 2만 불이다. 따라서 이세돌이 다섯 번의 대국을 모두 승리하면, 총 수입은 125만 불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반면에 모두 지면 대국료 15만 불이 그가 받는 모든 것이 된다. 따라서 110만불이 왔다갔다하는 게임인 것이다. 또한 각자에게 주어진 생각하는 시간은 두 시간이며, 두 시간이 지난 후에는 1분 내에 착점해야 한다. 이를 초읽기라고 하는데 도합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고 세 번째 초읽기를 넘기면 패한다.


역시 초반에는 알파고가 이세돌 보다 시간을 더 많이 썼다. 둘 곳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알파고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맞받았다. 두점 머리는 스스로 맞지 않는다는 바둑의 격언도 무시하며 끊어야 할 곳은 끊었고, 갇힌 돌을 잡지도 않고 대세를 유지했다. 하수처럼 줄바둑도 두었고, 자신의 약한 돌을 알아서 보강하기도 하며, 6~70 수가 진행되었을 때는 아마추어가 볼 때도 알파고의 유리한 진행이 되었다.


내 눈에는 다소 치사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이세돌은 컴퓨터가 판단할 수 없도록 약간 변칙적인 행마를 했다. 오히려 그것이 판세를 쉽게 불리하게 만들었지 않았는가 싶다. 그러는 순간에 알파고가 이상한 행마를 하는 바람에 이세돌은 좌중간 하변에 큰집을 지었고, 모든 방송의 해설자들은 이세돌이 유리해졌다고 말했다. 아마추어인 내 눈에도 알파고가 둔 수는 엉터리였다. 판세가 뒤집어진 것처럼 보이긴 했다. 그러나 집을 대충 세어보니 큰 차이가 없었고 매우 비슷했다.


그 순간에 알파고가 강수를 터뜨렸다. 그런데 더 크게 수가 날 것 같은 곳에서 알파고는 적게 수를 내고 물러섰다. 이미 알파고는 그 순간에 계산을 끝낸 것 같았다. 반집인지 한 집인지가 문제지 이기는 것은 충분하다는 계산 말이다. 나중에 이세돌의 실수가 나오면서 세 집 이상으로 벌어지는 바람에 이세돌이 돌을 던졌지만, 만약 계가를 했더라면 서너 집의 승부였다. 이세돌 같은 초일류 기사의 대국에서는 한 집 이상이면 끝내기에서 뒤집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상대는 감정도 없이 철저히 계산에 의지해서 착수하는 컴퓨터이기에 뒤집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컴퓨터는 바둑판 위의 361개의 착점을 계산해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인정하기 싫더라도 인정해야 한다. 같은 조건이라면 인간은 컴퓨터를 이길 수 없다. 인간의 감성까지 학습해서 시와 소설을 쓰고, 신문기사를 쓰는 날도 머지 않을 것이다. 해마다 똑같은 내용을 가르치는 학교의 수업도 컴퓨터가 훨씬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인간이 얼마나 오류를 범하기 쉬운지 이번 대결의 생방송에서도 보여주었다. KBS2와 YTN 뉴스채널, 바둑방송 등 세 곳에서 해설을 진행했는데, YTN의 해설자 김만수 프로기사는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세돌이 이기고 있다고 해설하고 있었다. 한두 집도 아니고 서너 집 이상 차이가 나는데도 이세돌이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의 판단력을 흐렸을 것이다. 컴퓨터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실수다.


이어지는 다음 대국이 내일 같은 시간에 벌어진 다음에는 하루 쉬고 또 이틀간 대국이 이어진다. 남은 대국에 한 판이라도 이세돌이 이겼으면 하는 바람이 이루어질까? 내 소견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 오늘 오후 한 시. 흑을 쥔 이세돌이 첫 수를 우상귀 소목에 착점하고 있다.


▼ 어제 챌린지 행사에서 딥마인드 데미스 하사비스 CEO, 이세돌, 알파벳(구글 지주회사)에릭 슈미트 회장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 그동안 한 판이라도 진다면 알파고의 승리라고 말했던 이세돌이, 어제는 5대0이 아닐 수도 있다며 한 발 물러섰다.


2016. 03. 09 제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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