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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

한국에서 병원가기 1

(2011년 5월 25일)

 

어제부터 시작한 비가 월요일인 오늘까지도 그칠 줄을 모른다. 다른 해에 비해 가뭄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단비일 것이다. 비도 오고 딱히 할 일이 없으니, 문득 병원에나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지만, 게으른 탓에 미루어 두었던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첫번째는 대장 내시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15년 쯤 전에 한 번 배가 아프고 설사가 나서 의사의 처방으로 했던 적이 있었는데, 하도 오래되어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해보려는 생각이 있었다. 2년 전 뉴저지에서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예약했었는데, 시간이 없어 위 내시경만 했었기 때문에 찜찜한 구석도 있었다.

 

다음은 '하지 정맥류'인데, 언젠가 내 다리를 본 여동생이 검붉은 핏줄이 보기에 흉하다면서 병원에 가서 주사 한 대 맞으면 낫는데, 왜 그러고 다니냐고 핀잔을 준 일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서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지만, 곧 여름철이 오니 치료를 받고 싶었다.

 

'한마음 병원'이라는 종합병원이 집에서 차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는데, 주치의 제도가 없는 한국이니 아무 병원이나 가면 그만이다. 주차장을 두 바퀴 돌고 겨우 주차시킨 다음, 안으로 들어가지 많은 사람들이 번호표를 들고 접수대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에 30여명이 있었으나 8명의 접수원들이 계속 방문객들을 받으니 20여분도 안 되어 내 차례가 되었다.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는 접수원의 물음에, 하지정맥과 대장내시경, 호흡기 알러지를 말하니, '흉부외과', '소화기 내과'와 '호흡기 내과'의 3장의 티켓을 끊어 주었다.

 

내과 쪽으로 가니 4~50명이 복도를 채우고 있었고, 간호원들이 접수라고 쓰인 책상에 두어 명씩 자리하고 있어 티켓을 주고 진료를 기다리는 사이 흉부외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 다리 정강이에 생긴 지렁이 모습의 핏줄을 흉부외과에서 진료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곳은 사람이 별로 없어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의사는 무척 친절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국의사들은 친절하고는 거리가 멀어서, 미국에 갔을 때 의사의 친절과 자세한 설명에 감동한 적이 있었지만, 호랑이 담배 피던 때 이야기다. 급변하는 한국답게 병원도 의사도 지난 날과는 많이 달랐다.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며, 주사 한대로 치료하던 것은 의학지식이 미치지 못하여 원인을 몰랐을 때의 치료방법이라고 한다.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하는데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비싸니까, 생활에 지장이 없으면 그냥 지내라고 한다. 꽤나 내가 없어 보인(?) 모양이다. 난 10만원의 검사비용을 내기로 하고 초음파 검사를 의뢰했다.

 

다시 접수대로 가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다가 흉부내과 진료비와 초음파 검사비를 내고, 내과로 갔다. 호흡기 내과에서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증세를 듣더니 의사가 오히려 내게 물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것이다.

 

30년 이상된 것으로 치료가 힘들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증세를 줄일 수 있는 약을 처방해 달라고 주문하고, 처방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진료실을 나왔다.

 

소화기 내과의 젊은 의사는 쉽게 대장내시경을 권한다. 너무 오래되었다는 거다. 나같은 경우 대장에 용종이 있을 경우가 많은데 적은 용종은 바로 제거를 한다고 한다. 간호원에게 관장에 필요한 설사약을 받고 설명을 듣는 사이, 초음파 실에서 전화가 와 빨리 오라고 한다. 아마 컴퓨터로 내가 어느 곳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지 찾아낸 것 같다.

 

지하실에 있는 초음파 실에 가서 기다리니 이름을 부른다. 검사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약간 지루하게 기다리니 과장(진료했던 의사)이 와서 검사를 한다. 10분 정도 검사를 하고 나서 다시 10분 정도의 설명을 곁들이는데, 정맥에서 피가 역류하고 있으니 수술하는 게 좋겠다고 한다.

 

다시 진료실로 올라가서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레이저 수술은 간단한데 의료보험 적용이 안되어 80만원 이상이 들고, 보험적용이 되는 일반수술은 2~30만원이면 되지만 3일 정도의 입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까짓거 가진 것이 시간인데 비싼 진료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진료비에서 본인부담금은 한 과목당 7천 5백원(개인병원의 경우 3천5백원)이었고, 대장 내시경은 \37,270원을 냈다. 나중에 더 내야 할 지는 모르지만, 보험적용이 안되는 수면내시경이 아닌 일반을 택했다. 검사비 포함 총 의료비가 \160,000 ($150) 정도 들었다.

 

미국에서 보험이 있다면 $10 정도의 코페이만 냈을 것이지만, 보험이 없다면 수 천불이 들었을 것이다.

3가지(심할 때 먹는 약 1주일치, 증상을 누구러뜨리는 30일분과 코에 주입하는 약) 알러지 약값은 만 2천원을 냈는데 (총 4만원 중 2만 8천원은 의료보험), 미국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보험이면 $45 (한가지당 코페이 $15)을 냈을 것이다.

 

Family Doctor에게 가서 Referal을 받을 필요가 없어서 편했다. 국민보험이라 그런지 보험이 적용되고 안 되고 따지는 것이 다소 복잡하게 느껴졌지만, 진료시스템이 무슨 공장의 콘베이어 시스템 같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아주 짧았다. 세명의 의사를 만나고 한 번의 초음파 검사를 받고 간호원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접수대에서 번호표를 뽑고 세 번(한 번은 접수, 두 번은 의료비 지불)을 기다리는데 총 2시간 반이 걸렸는데, 내가 아는 한 미국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는 그야말로 Light Speed인 셈이다.

 

거기다 예약조차 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간 것인데도 말이다.

 

내시경은 6월 1일, 하지 정맥류 수술은 6월 7일로 잡혔다. 그걸 끝내고 다시 2편을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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