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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

생활비를 따져본다

- 식비: 40만원, 주당 10만원

 

- 각종 공과금: 30만원

   o 전기: 5만원

   o TV, 인터넷, 전화: 5만원

   o 휴대폰 2: 5만원

   o 의료보험: 5만원

   o 가스 및 난방비: 10만원

 

- 자동차: 15만원

 

- 외식, 취미, 세금 및 기타: 15만원

 

이렇게 해서 두 내외가 생활하는데 월 100만 원 정도의 생활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3달에 가까운 한국생활에서 얻은 결론이다. 물론 이것은 내 경우라는 조건이 붙는다. 생활비야 그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를 수밖에 없겠으나, 일정한 직업이 없는 50대 실업자가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리 궁색한 티를 내지 않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각각의 항목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식재료는 비싼 물가 때문에 미국에서처럼 풍족하게 구입하기는 힘들다. 미국처럼 일주일치나 이주일치 한꺼번에 구입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곳 마트에서 장보는 사람들의 쇼핑카트를 보면 몇 가지밖에 담겨있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그래도 5만원을 쉽게 넘는다. 미국에서는 냉장고가 가득차서 장을 본 후에 정리하는 것이 짜증이 났지만, 이곳에서는 큰 냉장고가 별로 필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휑하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사오면 되니까, 최소한 시들거나 상해서 버리는 낭비는 없다.

 

전기는 5만원이 보통 넘는다. 겨울이라 추울 때는 온풍기를 가끔씩 사용한다. 냉장고 세탁기 김치냉장고, TV 두 대, 컴퓨터가 주요 전기제품이지만 46인치 TV는 집사람 때문에 항상 켜져 있다. 전기를 많이 사용할수록 단가가 높아지는 누진제이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편이다. 현재는 에어컨이 없지만 여름에 에어컨을 써야한다면 또 다른 문제다. 이웃들 이야기는 여름에 시원해서 에어컨 없이 지낼 만하다고 하는데 다행이다.

 

TV와 인터넷, 전화를 3년 약정 패키지(결합상품)로 가입했다. 전화요금에 따라 다르지만 4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휴대폰은 처음에는 비용이 많이 나왔다. 여기 저기 다니면서 전화할 일이 많았으니까. 지금은 전화할 일이 별로 없으니 집사람과 함께 두 대에 5만 원 정도면 충분하다.

 

내가 사는 제주의 특성상 가스와 난방비는 별개가 아니다. 난방은 겨울에만 필요하겠지만, 거실에서도 내복과 스웨터를 입고 지낼 정도의 최소한의 난방을 하더라도 1212월은 20만 원 이상 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난방이 불필요한 계절에는 5만원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평균해서 월 10만원으로 책정했다.

 

현재의 의료보험은 5만원을 약간 넘지만, 11월이 되면 8만 원 이상으로 오를 것이 틀림없다. 크게 차이 나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차 없이 살기는 힘들다. 자가용을 가진 가구 비율이 제주도가 전국 최고다. 내가 가진 승용차는 천 cc 짜리 모닝이라는 차다. 풀 탱크가 10갤런(35리터)도 안 들어간다. 개스 엠프티 램프가 들어오고 난 후, 가득 채우면 5만원 가량 들어가는데 2주 이상 간다. 다닐 일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한 달이 갈 때도 있다. 앞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하면 늘어나겠지만. 보험료(1년 60만원)가 꽤 되지만 3개월 마다 나오는 자동차세도 경차라 5만 원 이하니까 평균 15만원으로 계산했다.

 

외식을 안 하고 살 수는 없다. 집사람이 좋아하는 동태찌개가 6천원이다. 허름한 식당이지만 점심때는 2~30분씩 기다려야 차례가 돌아온다. 추어탕, 감자탕, 해물 뚝배기 같은 메뉴가 자주 찾는 것들이다. 소주 한 병 추가해도 2만원으로 충분하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재산세가 한참 저렴하다. 또 장부가액 1억 원 미만의 집은 재산세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정확한 것은 고지서를 받아 봐야 알 것 같다.

 

취미생활에 어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할까? 도서를 구입하거나 집사람 취미인 화초나 인테리어 소품 구입에도 지출이 생긴다.

 

월 백 만 원 정도의 생활비면 그다지 보기 흉하지 않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데 최소한의 생활만 할 수는 없다. 가끔은 친구들을 만나거나 경조사에 참석하러 서울에 갈 일도 있다. 2~3년에 한 번은 아이들을 보러 미국에도 가야한다. 일 년에 한 번씩은 국내나 가까운 동남아시아 여행도 필요하다. 이삿짐에 섞여 가지고 온 골프채는 베란다 한구석에 처박아 두더라도.

 

이런 것들을 고려하면 역이민 하여 고국에서 생활하기 위해 30만 불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10만 불은 주거를 마련하고 정착하는데 필요한 자금이고 20만 불은 은행에 두고 5%의 이자수입(세전 연 천 만 원)이라도 있어야 한다. Social Security 자격이 필요하다.

 

친구들은 무슨 일이라도 해야지 일없이 제주에서 어떻게 지내느냐고 걱정을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심심할 새가 없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새롭고 재미있다. 대학 때 고수 소리를 들었던 나는 TV 바둑 프로그램만 보아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낸다. 아직은 뉴스도 재미있고 책을 읽으며 가끔씩 이렇게 인터넷에 글 쓰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루에 두 시간씩 제주대학까지 걷는 운동으로 한나절이 간다.

 

무언가 일을 해야 하는데 하는 압박감이 없지는 않지만, 미국에서처럼 심하지는 않다. 아직 은퇴하기에는 너무 젊은데, 보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일자리 구하기는 쉽지 않다. 구인광고를 보고 몇 군데 전화를 해보았는데, 45세 이하를 찾는다고 대답한다. 45세가 정년이라는 뜻의 사오정이라는 단어가 실감난다. 봉사하는 일이라도 찾아서 일하는 가운데 즐거움을 찾아야한다. 그러나 그동안 오랜 세월동안 타국에서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았으니 당분간 여유를 즐겨도 된다고 아니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준다.

 

오늘 마지막 실업수당을 신청했다. 20094월에 신청하여 장장 99주 동안 주당 $584를 받았다. 금융위기 때 실직한 사람들을 배려한 오바마 덕분이다. 큰 도움이 되었다.

 

<후기>

지난주에 LA에 계신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30년을 살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아무 연고가 없고 제가 쓴 글을 보고 제주에 관심이 있답니다. 월 생활비가 백만 원이라는 말에 회의가 있으신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3개월의 경험을 근거로 생활비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수도세나 관리비 같은 몇 천 원의 지출은 생략했고, 만 원 이하는 사사오입으로 정리했습니다. 제가 사는 집과 비슷한 크기의 30평대 아파트가 제주 시내에 위치하면 2억 원 정도 합니다. 전망 좋은 전원주택도 그 정도 합니다. 저의 경우는 제주 변두리 후미진 곳에 있는 다세대 주택이라 8천만 원에 구입할 수 있었지요.

 

가급적 오해나 착오가 없으시도록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으며, 필요한 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끔 사실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혹 다른 생각을 가지셨다면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젊어서 노후준비가 충분히 되신 분들을 위한 내용이 아닙니다. 저처럼 아직은 더 일할 나이에 어쩔 수 없이 은퇴를 택하여 고국으로 돌아오시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을 위해 쓴 글입니다. 저도 계획대로 직장생활을 60세까지 계속했다면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은 안했을 지도 모르지요.

 

2주 전에는 충남 홍성에 정착하신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30년 이상을 살아서 영어가 더 편하다고 하셨는데 한국이 그리워서 2년 전에 오셨답니다. 부인은 미국을 떠나기 싫어했는데도 오셨다더군요. 어려운 점은 한국에는 연고가 없어서 외롭다고 하십니다. 주민들 텃세도 힘들게 한답니다.

 

그 부분은 저도 충분히 공감이 갔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처럼 미국에서 사시다 오신 분들이 이웃해서 산다면 대화의 공감대가 있으니 외로움을 덜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사라봉 공원에서 바라본 한라산이 멀리 보인다.


- 절물이라는 공원이다. 한국적인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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