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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불행은 남으로부터 온다.

(2013년 2월 27일에 작성한 글)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을 보다 보면 시상식 장면을 중계할 때, 가끔 이상한 장면을 보곤 한다. 금메달이나 은메달 보다도 동메달을 목에 거는 선수가 더 기뻐하고 환호하는 모습이 다소 이상하게 보이기도 한다. 은메달을 딴 선수는 오히려 침울해서 슬퍼보이기까지 하는데,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은메달을 딴 선수는 자신이 금메달에 실패한 것에 아쉬워하고 후회하지만, 동메달을 딴 선수는 자신이 메달을 획득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기꺼이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은메달 선수는 금메달 선수로 인해 불행해지고, 동메달 선수는 자신의 능력에 의해 행복해진다는 아이러니다.


이를 두고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불행은 남에게서 오고, 행복은 자신에게서 온다. 다른 말로 바꾸면 불행은 밖에서 오고, 행복은 안에서 온다.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하듯 한국인은 유난히 남의 눈을 의식한다. 자신의 본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내가 가진 것만 인정받으면 안 된다. 그 이상으로 나를 인식하고 인정해주어야 한다. 소위 명품이라고 알려진 핸드백이나 악세서리를 걸쳐야 하고, 성형수술이라도 해서 예뻐지고 싶은 것도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유별나기 때문이라고 밖에 이해할 수가 없다.


어렸을 때 나도 그랬다. 흰 쌀밥에 계란이나 멸치볶음 도시락을 싸오는 친구가 부러웠다. 보리가 섞여 시커먼 밥에, 궁내나는 김치가 전부인 도시락을 꺼내기가 창피해서 도시락을 꺼내지 못하고 굶는 어리석은 짓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학교친구들이 내가 얼마나 가난한 집에서 없이 사는지 알게 될까봐, 친구를 집에 데려올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신체검사 때는 어버지 것을 기워 입고 다니는 팬티가 죽고 싶을 만큼 창피했고, 소풍 때는 보기 좋은 '니꾸사꾸'를 맨 친구들이 꿰맨 보따리를 들고가는 나를 어떻게 볼까 두려워 가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대가리가 커져 철이 들 때까지는 그렇게 남이 눈이 중요했고,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그렇게 부끄러웠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 철이 들고 나서는 그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란 것도 알았지만, 사회생활을 해보니 사회는 온통 비슷한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정장을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직원들도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다녀야 했다. 미국연수 때 그 회사에서 가장 놀란 것 중의 하나가 넥타이를 맨 직원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다. 물어보니, 커스터머를 상대하는 직원들만 정장을 입는다고 했다.


- 니, 회사에 소풍 왔나? 옷차림이 그게 뭐꼬! 편하자고 그렇게 입고 다니믄 사무직들이 우리 직군을 어떻게 보겠나?


토요일이고, 임원들이 퇴근한 오후에, 임원실에 장비를 설치할 일이 있어 정장을 입지 않고 출근했다가 높은 분에게 불려가 터지고 난 후에는, 무슨 일을 하던지간에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로 목을 졸라매고 다녔었다. 일의 능률이나 필요성보다는 남의 눈이 중요한 사회라는 것을 절감해야 했다.


미국에서 10년 넘게 회사를 다녔지만, IT를 담당하는 내가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입은 날은 일년에 딱 하루 뿐이었다. 연말파티(Year end party)다. 물론 이곳에서도 사장이나 영업을 하며 고객을 만나는 직원들은 정장 차림이다. 영주권을 받고 처음 한국에 갔을 때, 옛날 직장을 찾아갔다. 칸막이 하나 없이 무슨 강당같이 넓게 탁 트인 사무실에 들어서니 눈이 부셨다. 4월의 화창한 봄날의 햇살이 가득한 사무실에 수많은 직원들이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으로 하나같이 앉아 있는 모습이 생경스러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나도 한 때는 저 속에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아들 대학 졸업 때, 녀석이 누나들이 사준 넥타이를 들고 내게 왔다. 넥타이를 매 달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녀석은 넥타이를 처음 매는 것이었다. 넥타이를 맬 일이 없는 미국에서 자랐으니 당연할 밖에. 녀석도 나를 닮아 그런지 넥타이 매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얼마 전에 통화했다. 좀 더 경력을 쌓고 나서 회사를 옮겨야겠다고 한다. 넥타이 안 매고 다니는 회사, 그리고 칼퇴근하는 회사가 좋단다. 바쁘면 오버타임 수당을 많이 받으니 좋지 않느냐, 옛날에 나는 한국에서 수당도 없이 일하기도 했다고 했지만 돈도 싫고 자유시간을 즐기는 게 더 좋다고 한다. 여자친구가 없느냐는 말에는 데이트할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여자를 사귀느냐고 대꾸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아빠, 시간에 자유로운 농사가 좋을 것 같아요. 농사나 배워볼까! 하하, 그래 그것도 괜찮다.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그래, 이놈아! 행복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서 온다. 네 안에서 오는 거란 말이다. 너는 남을 의식하지 말고 너 자신만 생각하거라. 그래서 네 안에서 행복을 찾아라. 그렇게 살거라. 인생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길지 않단다.


<후기>

한국인은 태생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민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을 의식하고 사는 한.

집안에 자살한 아이가 있습니다. 괜찮은 대학을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했지만, 취업이 잘 안되고 남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견딜 수 없어 그리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남으로부터 온 불행 때문에 비극을 불러온 것이라고 봅니다.


하루에서 열 명에 가까운 젊은 목숨들이 안타깝게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고 합니다. 자기자신의 본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내는데 떳떳하지 않는 한, 이런 비극은 멈출 수가 없을 겁니다. 이제 다른 잘 사는 나라들과 하드웨어 비교 - 국민소득, 무역규모 - 를 멈추고, 소프트웨어를 진화시켜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철학, 인문학을 중요시하고 성장보다는 복지를 중시하는, 남의 눈보다는 내 스스로의 성찰이 더 중요시되는 그런 한국을 꿈꿔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