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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한류(韓流) 이야기 (1)

(2013년 1월 30일에 작성한 글)

 

K-POP, 한국드라마, 영화 등 한국문화가 한류(韓流)라는 이름으로 세계에서 인기가 높다는 소식은 정말 기분좋은 일이다. '한류(韓流)'라는 신조어는 아마 중국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추측해 보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그 한류의 명성과 기세는 내가 상상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그 어떤 것이었다.


지난날 내가 담당했던 IT 부서에 매니저급 직원을 채용한 일이 있었다. - 그때는 곧 들이닥칠 경제위기는 까마득하게 모르고 회사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던 호시절이었다. '드미트리'라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젊은 친구를 채용했는데, 우크라이나에서 오뎃사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와 함께 이민한 후, 뉴저지 주립대학인 킨 유니버시티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중소 제약회사에서 IT 매니저 경력을 가졌던 매우 똑똑한 친구였다. 머리도 잘 돌아가지만, 말도 청산유수여서 '이 친구가 모르는 일이 있을까!'하고 생각될 정도였는데, 결국 채용 후에는 이 친구가 아는 척하는 것을 너무 믿었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었다.


이 친구가 한류 팬이었다. 조선, 전자, 무기, 철강과 같은 산업에서 음식에 이르기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을 예찬했다. 전세계에서 한국과 같은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고 열변을 토했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에서 지금과 같이 성공한 나라는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그의 한국에 대한 지식이나 예찬을 듣다보면 한국인으로서 그가 말하는 만큼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않은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팔리세이드 팍, 브로드웨이에 있는 '신라제과'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일이 있던 딸 아이에게 들은 이야기다. 손님 중에 일주일에 한 번씩 들려 빵을 꼭 사가는 중년남성이 있었는데, 올 때 마다 자기에게 자꾸 말을 걸고 싶어하는 눈치를 보였다고 했다. 하루는 한가해서 그 중년남자와 한참 이야기를 했다면서 전하는 내용은 이랬다. 


뉴저지에는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두 시간 동안 한국어 방송을 하는 로컬 채널이 있는데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보게 된 모양이었다. 주말에는 '용의 눈물' 같은 KBS 대하 드라마 사극을 방송하였는데, 언제부턴가 영어자막처리를 해주었다. 우연히 보기 시작한 한국사극에 그만 빠져들었다는 거다. 당시에는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사극을 방영하고 있었고, 이 사극을 보다가 생긴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한국을 떠난 딸아이는 아는 게 별로 없었겠지만, 그 남자가 한국에 대해 얼마나 혼자 공부했는지 자기보다 한국을 더 많이 아는 것 같다고 했다.


같이 일하던 한인 직원 하나가 아이를 낳는 바람에 입주 가사돌보미로 남미출신 스페니쉬 할머니를 채용했는데, 한국제품 예찬론자였다고 했다. 한아름 전자제품 코너에서 가습기를 산 할머니는 너무나 만족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소음도 없을 뿐더러 청소도 간편해서 비싸게 주긴 했지만, 사용해 본 다른 어떤 제품보다도 뛰어나다고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하더라는 거다. 앞으로는 TV, 냉장고, 세탁기 등 모든 가전제품도 'Made in Korea'를 살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미국서 살면서 직간접으로 경험한 위 세가지 에피소드는, 한류의 인기가 3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남미와 북미에 이르기까지 범세계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부정적인 면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 스스로는 그 가치를 굳이 인정하지 않고 폄하하려고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내딸 서영이'라는 TV 드라마를 몰아본 적이 있다. 지난 주까지 40회를 방송한 이 주말 드라마는 지금 최고 인기리에 방송되는 연속극이다. 시청률 40%를 넘었다는 뉴스를 보고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보기 시작한 것이 2주 전이었는데 그만 일주일 내내 1회부터 36회까지 밤잠을 설쳐가며 볼 정도로 빠져들었다. - 한동안 글을 올리지 못한 이유다. - 그만한 매력이 있었고, 한류 드라마가 왜 중국이나 태국, 베트남은 물론이고 중동에 이르기까지 인기가 있는지 그 이유를 알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소위 미드(미국 드라마)라고 불리는 할리우드 연속극이 인기였다. '보난자', '도망자', '내 아내는 요술장이', '형사 콜롬보', '6백만불의 사나이' 같은 것들이 지금도 생각나는 할리우드 드라마다. 이런 미드에 비하면 국내 연속극은 그 수준이 너무 유치해 볼만한 게 별로 없었다고 생각된다. 주로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어 라디오 연속극과 별로 차이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미드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분부신 액션이 눈요깃거리와 흥미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또 중동이나 개발도상국 같은 곳에서는 반미감정이 팽배하고 지나친 노출과 퇴폐적인 장면(Scene)으로 대중적 거부감이 심한 탓에 할리우드 스타일이 환영받을 수 없는 지경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류는 다르다. 가정사가 주된 소재로서 어느 문화나 문명에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주몽이나 선덕여왕같은 사극 스토리는 모든 민족이 갖고 있는 민간전래 전설과도 유사한 점이 있으면서도 출연자들도 몸을 칭칭 싸매고 나오니(?) 퇴폐적인 요소는 찾아볼 수도 없다. 또 이런 나라들은 경제적 사회적 조건이 자신들의 드라마를 만들 여건도 성숙하지 못하지만, 국민소득의 증가로 TV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즉, 그들에게는 한류 드라마가 안성맞춤인 셈이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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