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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그녀 이야기 (3)

(2013년 1월 29일에 쓴 글)

 

- 야! 오빠를 제주도에서 이렇게도 만나네. ㅎㅎㅎ

 

○ 그러게, 제주에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 하여튼 반갑다. 어디 가서 이른 점심을 먹을까, 아니면 차나 한 잔 할까?

 

- 나는 한 시까지만 공항에 가면 되니까, 어디 가서 차나 하면서 이야기나 하지 뭐.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지난 해 11월 초였다. 패키지 관광을 한다는 그녀는 투어 마지막 날에야 연락을 해 왔다. 제주의 '한라 수목원'에서 일행과 떨어져 혼자 있다는 말에 바로 그곳으로 갔고, 기다리던 그녀를 만났다. 시간이 오전 11시도 되기 전이라 딱히 갈 곳도 마땅찮고, 또 내가 어떻게 제주에서 역이민 삶을 꾸려가는지 궁금해 할 것도 같아 집으로 가자고 했다. 갑자기 집으로 찾아가면 언니가 싫어할 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집으로 차를 몰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 > 가을의 방문객 참조 2012. 11.12)

 

- 또 걸 프랜드가 생겼어.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니까 새로운 일도 아니지, 뭐. 이번 걸 프랜드는 부자야. 걔도 이제는 늙었잖아. ㅎㅎㅎ, 돈 많은 좋은 사람 만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잖아!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질문에, 그녀는 마치 남의 일을 말하는 것 처럼 이야기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 남편의 얼굴을 떠올렸다. LA에서 다시 만난 그는 젊었을 때 보았던, 옛날의 모습은 더 이상 아니었다. 머리는 이미 반백이었고, 샤프한 얼굴의 윤곽은 그대로 있었지만 삶에 지친 듯 처진 모습이었고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그늘이 느껴졌다.

 

LA 부에나 팍에서 살 때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전화를 받고 집에 갔었는데, 베쓰룸에 샤워기가 고장나서 새고 있었다. 동생은 필요한 부품까지 다 사놓고 있었지만, 바꾸는 방법을 몰라 헤매고 있었던 것이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금방 해결할 수 있는 쉬운 문제였다.

 

- 남편은 돌아오면 집에서는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않아. 형광등 하나 갈 줄 모르는데, 뭐. 무슨 일이 생기면 다 내가 해야 해.

 

신랑은 이런 일 할 줄 모르느냐는 말에 이렇게 답하는 그녀의 말에 화가 났었다. 원, 세상에! 쌍팔년도 이야기도 아니고 이게 무슨 고리타분한 이야기란 말인가!

 

- 아이들이 아빠를 만나지 않겠다고 하는 걸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어. 엑스 허즈번드가 아이들은 끔찍이 좋아하거든! 일주일에 한 번이든, 한 달에 한 번이든, 만나서 식사도 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다 오라고 했어. 부녀간인데 그럴 필요 없잖아. 나도 걔를 그렇게 미워하지는 않아. 그냥 오랫동안 알던 친구로 생각하기로 했어.

 

- 오빠, 세상 편한 거 있지! 왜 빨리 이혼하지 않았나 몰라. 이렇게 편한데.

 

친구 어머니에게 들은 말이 생각나 물었다.

 

○ 어머니 빚은 다 갚았어?

 

LA를 떠나면서 마지막 인사차 찾아 뵈었던 친구 어머님은 아직도 정정하셨다. 가든 그로브에서 혼자 살며 장구도 배우고 소리도 배우면서 취미생활로 소일하고 계셨다.  사무실 차린다고, 사업을 한다고 조금씩 빌려간 돈이 꽤 된다고 하며, 돈을 빌려갈 때는 곧 갚겠다고 하고는 말대로 갚지 못하는 딸과 사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 오빠, 그것도 알고 있었어요? 다 갚았어. 집 팔아 남은 돈으로 빚 다 갚고, 아이들에게 차 한 대씩 사주고 나니까 딱 맞더라, ㅎㅎㅎ. 아직은 벌 수 있으니까 돈이야 또 벌면 되지, 뭐.

 

집사람이 호들갑을 떨며 그녀를 맞았다.

 

- 아가씨, 더 예뻐졌네! 이렇게 점점 더 예뻐지는 비결이 뭐에요?

 

- 무슨 소리에요? 언니가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지, 더 좋아보이는데! 아유, 어쩌면 이렇게 깨끗하게 잘 해놓고 살아요? 저 화분들 좀 봐! 굉장하네!

 

짜장면을 배달시켜 점심을 때웠고, 동갑내기 두 여자의 수다로 그러지 않아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은 더 금방 지나갔다. 그녀는 현관을 나서면서, 빈손으로 와서 미안하다며 싫다는 집사람에게 억지로 얼마를 떠맡기고 떠났다. 나와 식사나 하라면서.

 

그녀를 제주공항에 내려놓고 돌아오는데 마음이 짠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언니랑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니 마음이 좋네. 나는 한국에서는 영영 못 살 것 같지만, 오빠는 잘 돌아왔어!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운명이 시키는 대로 했겠지만, '만약에'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 상상을 펼치게 했다. 만약에 그렇게 되었더라면, 그녀와 나의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으까?

 

운명의 신이 있어 물어볼 기회를 준다면 정말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후기>

그녀가 이 글을 볼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누군간의 프라이버시가 관련된 글이라 쓸까 말까 많이 망설였던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민이라는 흔치않은 선택을 했던 사람들로서, 이런 조각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전체 그림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망설임을 떨쳐냈습니다.


지나간 30년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앞으로 살아갈 30년은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남편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살며, 자신을 위해 그동안 인생에서 잊고 있었던 행복을 찾아가기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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