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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

알러지

(2012년 10월 23일에 작성한 글)

 

미국에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알러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다른 지역은 몰라도 동부에서는 꽃 피는 봄이나, 기온이 떨어지는 가을이 되면 수 많은 사람들이 알러지로 고통을 받는다. 남쪽으로는 노스 캐롤라이나부터 북쪽으로는 뉴햄프셔나 버몬트까지 알러지를 유발하는 식물이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알러지가 없던 사람도 동부에서 10년쯤 살면 알러지가 생긴다는 떠도는 이야기도 있지만, 나는 한국에서도 알러지로 고통을 받았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콧물이 흐르거나 눈이 따갑고 가렵기도 하지만, 가장 괴로운 것은 코가 막히는 것이다.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맑은 콧물이 흘러나와 바닥에 휴지를 받쳐놓아야 할 정도이었다.


뉴저지에서는 봄에 출근을 위해 나가면, 밤새 세워놓은 차의 윈실드에 꽃가루가 노랗게 앉은 것을 볼 수 있다. 소위 알러지를 유발하는 물질이다. 일기예보에는 알러지 인덱스를 반드시 예보한다. 1(약)부터 10(강)까지인데, 봄에는 8 이상인 경우가 많고, 알러지 환자는 이런 날은 가급적 야외활동을 하지 말라고 권유받는다.


가을에도 알러지가 생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찬바람 영향이 있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다. 의학에 문외한이므로 알러지의 원인이나 알러지 물질에 대해 논할 입장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 알러지에 고통을 받다보니 주워들은 풍월은 많다. 그중에서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있다.


- 알러지는 선진국형 질병이라고 한다. 너무 위생적인 생활이 알러지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한국도 6~70년대 못 살 때는 이런 질병이 없었는데, 생활이 좋아지기 시작한 80년대부터 급격히 늘었다. 유럽이나 미국, 아시아에서는 일본 같은 선진국에만 있는 병이다. 지금도 인도나 중국, 방글라데시 같은 비 위생적인 국가에서는 드물다.


- 한의학적으로는 체질의 변화에서 생기는 일종의 감기증세라고 본다. 즉 감기를 달고 사는 셈인데,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을 오래 섭취하여 생기는 병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날이 차지면 유리창에 물기가 서리는 것 처럼, 열이 많은 사람들의 비강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대의학으로 보면 알러지는 간단하다.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유해물질이 아닌 물질에도 몸의 면역체계가 반응하면서 나타나는 질병인 것이다. 특정 꽃가루가 콧속으로 들어오면 이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재채기도 나고 콧물이 난다는 원리다. 그렇다고 몸의 면역체계를 무너트릴 수도 없다. 워낙 치료가 안 되는 질병이니 설도 많고 치료법도 많지만, 살아가는 데 불편은 있어도 크게 지장이 있는 질병이 아니니 고통을 감수하면서 계절이 바뀌기만 기다리기도 한다.


코가 막히면 수면을 취할 수가 없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다. 이비인후과를 찾아가 콧속을 기계로 청소하고 약을 먹으면 증상이 가라 앉는다. 그런데 회사에서 짤리고, 의료보험이 없어진 2009년 봄, 알러지가 찾아왔을 때는 당황했다. 그렇지 않아도 불면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코까지 막히니 죽을 노릇이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약국에 쫓아가서 알러지 코너에 있는 선반에 있는 약들을 뒤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발견한 약이 'Nasal Spray'라는 약이었다. 밑에는 'Extra Moisturizing 12 hour nasal spray'라고 적혀 있었다.


Cvs Nasal Spray Original 12 Hour Nasal Spray 1.25 Fl Oz.희한하게도 이 약만 콧속에 넣고 30초 정도 지나면, 막힌 코가 시원하게 뚫렸다. 병원에 다녔을 때보다 훨씬 효과가 좋았고 간편했다. 콧물이 흐르고 재채기가 나는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문제는 코막힘이었는데, 5불도 안 되는 약이 간단하게 해결해 준 것이었다. 이런 약이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귀찮게 병원을 쫓아다니지도 않았을 거다.


다른 분들은 다 알고 있고, 나만 몰랐던 약인지는 모르지만 이 약을 알고나서는 알러지가 별로 두렵지 않았다. 알러지가 시작되면 단식을 하는 단식을 하는 친구도 보았다. 골프를 무척 좋아하는데, 야외활동을 하지 못하니 아예 단식을 선택한다는 거다. 굶으면 알러지가 없어진다고 하는 것을 보면 먹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긴 한다. (한국에도 이 약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없다면 수입해다가 팔아도 될 것 같다.)


이민 가기 전에도 알러지로 많은 고통을 받았었다. 병원에도 다니면 알레르겐(알러지 유발인자)를 찾는다고 바늘에 알레르겐을 묻혀 등에서 수백 번을 찌르고 했다. 반응을 보이는 물질이 너무 많다면서, 치료는 곤란하고 증상이 심할 때 증상을 완화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두 번째 검사를 할 때는 의사가 왜 치료를 못하느냐고 장담을 했었다.


미국에서도 똑 같은 검사를 또 받았다. 그때는 사과에도 알러지 현상이 왔었다. 사과를 먹고나면 눈이 따갑고 가려웠는데, 의사 말이 사과에 꽃가루 성분이 있어서 그렇다는 거다. 그래서 받은 '등을 찔러대는' 검사도 역시 같았는데, 의사 말은 틀렸다. 일년 동안 꾸준히 알레르겐 적응치료를 받으면 된다는 거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들려야 한다면서. 그래서 그렇게 치료해서 나은 사람 있다면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가장 최근 것으로.


연락을 해 보았더니, 치료 받지 말라고 한다.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거다. 그렇게 치료를 포기한 것이 5년 전 일이다. 제주에 돌아와서는 많이 호전되었다. 미국에서는 봄에 더 심했는데, 제주에서는 가을에 더 심하다. 미국에 있는 알러지 물질이 이곳에는 없는 것 같다. 화장실에서 콧물이 흐르는 것은 여전하지만, 화장지를 받쳐놓을 정도로 심하지 않다. 재채기도 전처럼 심하지는 않다. 저녁에 콧속에 약물 한 방울만 떨어뜨리는 걸로 불편함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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