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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

Sleepless in Jeju

(2012년 11월 24일에 쓴 글)

 

젊어서는 잠자는 데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 때나 머리만 기대면 잠이 들었었다. 학교 다닐 때는 시험 때가 되면 '잠 안 오는 약'을 먹어야 잠을 이기고 공부할 수 있을 정도로 잠이 많았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버스를 타고 집에 가다가 잠이 들어 종점까지 갔던 적도 많았고, 심지어는 막차에서 잠이 드는 바람에 집에 가지 못하고, 버스 종점에서 차장누나가 주는 담요를 덮고 버스에서 잠을 잔 적도 있었다.


군대시절에는 어땠나! 초번이나 말번 보초는 일병 말년이나 상병 쯤 되어야 돌아오는 호사이었고, 졸병은 두 번째나 말번 직전에 서는 보초를 배당받는다. 막 잠이 들어 시체같은 놈을 보초서라고 깨우면, 바짝 든 군기 때문에 일어나긴 하지만 죽음보다 견디기 힘들기도 했었다. 전방의 겨울 밤, 살을 에이는 그 추운 바람 속에서도 졸았고, 심지어 야간행군 시에는 믿어지지 않지만 졸면서 걷기도 했다.


그렇게 꿀맛보다 달콤했던 잠이 언젠가부터 고통이 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승진 후에 2년도 안 되는 짧은 지방 건설현장을 거쳐 본사로 부임했다. 강남 삼성동 20층 건물의 14층이 사무실이었다. 출근시간만 있었고, 퇴근시간은 없었다. 매일 같이 9시, 10시까지 일을 해야 했으며, 심지어 새벽에 퇴근하기도 했고 밤을 세우기도 했지만, 일 같지도 않은 일이었다. 다음날 높은 분들에게 보여줄 보고서를 작성하고, 예산절감 계획을 세우고, 감사지적 사항에 대한 반론을 작성하는 것 등의 일인데, 단어의 취사선택과 한자로 바꿔 쓰고 영어로 된 전문용어를 알기쉽게 풀어쓰고 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부장에게 '빠꾸' 맞고, 국장에게 터지고 부하직원 비위 맞추고, 그렇게 쌓여간 스트레스는 어느 순간부터 잠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바스락거는 소음만 있어도, 신경이 쓰였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쩌다 집에 있기라도 하면, 와이프는 아이들이 시끄럽게 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나는 결코 좋은 가장도 좋은 아빠도 아니었다. 분당의 아파트 16층에 살 때는 자정무렵의 한밤중까지 시끄럽게 하는 윗층과 대판 싸우는 못된 사태까지 발생했다. (한국에서 층간 소음문제로 살인까지 났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자회사로 옮겨 한 부서를 책임질 때는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다. 대면하기 조차 싫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만나서,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비굴한 웃음을 흘려야 했다. 소심하고 옹졸한 성격 탓인지, 체질상 그런 일에 적합하지 않은 탓인지는 몰라도 잠에 대한 고통은 점점 심해졌다. 눈은 벌겋게 핏발이 설 정도로 잠을 원해도, 머리는 세수를 하고 난 것처럼 잠과는 거리가 멀었다. 술이 일상화 되었지만, 일시적일뿐 해결책은 아니었다. 아니, 일로 만난 사람들과 마시는 술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방해가 되었다.


Better Life를 꿈꾸며 이민을 했고, 거기서 만난 생활도 적응하기 위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단지 생활환경은 꿈과 같았다. 넓은 백야드에는 노루들이 무리지어 찾아왔고, 무엇보다 절간처럼 조용했다. 가끔 멀리서 기차가 요란한 소음을 내며 건널목을 지나가긴 했지만, 그것 조차도 감미로웠다. 직장에서는 몸으로 때우며 열심히 일했고, 집에만 들어오면 마음이 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면은 잊혀갔다. 시스템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착오로 '이메일 서버'를 다운시키는 바람에 3일 밤낮을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하는 긴장 속에서 살았지만, 정신적으로 고단하지는 않았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위기는 항상 평온할 때 찾아왔던 것 같다. 무난해 보이는 이민생활의 위기도 그렇게 왔었다. 회사는 점점 커졌고 일은 편해졌지만, - 몸은 편해졌지만 정신은 피곤해져 갔다 - 그리고 여기서 밝힐 수는 없지만 극심한 갈등이 몇 년 계속 되었고, 끝내는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해고와 함께 그릇된 판단으로 마음 고생을 겪었다. 불면의 밤들이 다시 찾아와 몇 년 계속 되었지만, 평화의 섬 제주로 돌아온 이후 치유의 과정을 거쳤다. 술 없이도 쉽게 잠들고, 에드빌 피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잠이 들 때가 많다.


아직도 가끔 잠 못 이루는 밤이 찾아온다. 아이들이 보고 싶기도 하고 그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불행한 인생을 산 부모님 생각으로 마음이 아프기도 한다.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다. 이제는 그 고통을 즐기는 법을 안다. 깨어있으면 된다. 내일 중요한 일도 없다. 깨어서 부모님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한 것을 뉘우치는 시간도 갖는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미안하다! 오늘 잠 못 이루는 밤에는 너희들이 더욱 그립구나!

Sleepless in Jeju.


 “서울로 가는 방향을 물을 때 인천 사람은 동쪽이라고 하고, 수원 사람은 북쪽이라고 한다. 표현이 다르다고,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자기가 선 위치와 관점에 따라 같은 사안도 다르게 볼 수 있다. 나와 다르다고 무조건 틀렸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그럴 수 있다고 보고 출발하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해도 차이점을 인정할 수도 있다.” - 법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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