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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다

(2011년 3월)

 나는 왜 한국을 떠났을까?

14년 전의 한국에서 지냈던 날들을 돌이켜 본다.

지금은 신들도 다니고 싶은 직장이라고 불리는 곳을, 당시에 나는 못 견딜 정도로 힘들어 했었다. 한 두 장의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밤을 새웠고, 일이 없어도 윗사람의 눈치를 살펴가며 퇴근시간을 정했다. 1980 ~ 1990년대의 한국은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 일을 하기 위해 돈을 주고 받는 일이 당연시되었으며, 그런 돈으로 사회 전체가 흥청망청 되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88 올림픽이 끝난 후 고속으로 성장하는 사회분위기 탓도 있었겠지만, 군사독재가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탓인지 잔치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어 모든 부문에서 팽창에 팽창을 거듭했다. 민간회사는 물론 국영기업에서도 자회사를 만드는 등 몸집을 불리기에 바빴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IMF라는 비극으로 끝이 났지만, 당시에는 앞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모두가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달렸다.

과자 만드는 해태는 해태정보통신, 소주 만드는 진로는 진로정보통신, 맥주 만드는 두산은 두산 정보통신회사를 설립하는 등, '땅 사는 사촌'이 배가 아픈 모든 회사의 사주들이 앞다투어 자회사를 만들어 돈 잘 벌리는 새로운 시장에 진출했다. (이 회사들은 IMF후에 극심한 경영난으로 매각되기도 했다.)

그 통에 당시에 설립된 국영기업 자회사에 스카우트되어 ○○사업부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사업이라는 것을 했는데 모회사와 수주하고 납품하는 모든 과정에서 돈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자회사라는 특수관계 때문에 먹어도 탈이 안 난다고 생각한 탓도 있었겠지만, 고비용 사회구조이다 보니 사업을 원할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었다.

또 이왕 대접할 때는 기억에 두고두고 남게 확실하게 하자는 내 생각도 일조를 했겠지만, 일주일에 천 만원(당시 환율이면 만 불이 넘는 돈)을 썼던 기억도 있다. 담당부서 사람들과 일식 집에서 저녁을 먹고 이차로 룸살롱에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술을 어지간히 좋아하는 나지만 그들과 일 때문에 먹는 술은 차라리 고문이었다.

룸살롱 앞에서 친구를 만난 적도 있었다. 자정이 되면 영업을 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 12시가 가까워오면 손님에게 영업시간이 끝났음을 조심스럽게 알리며 일어서기를 재촉했었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자정이 지난 후 강남 룸살롱 앞에서 모시던 모회사 계약담당 과장을 나라시 택시에 태워 보내며 허리를 90도 각도로 꺾어 인사를 하고 몸을 일으키니 옆에서 나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눈에 익은 녀석이 보였다.

내 둘도 없는 대학친구 B군이었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미묘한 분위기를 허탈웃음으로 대신했고, 우리의 사정을 눈치챈 눈치 빠른 M마담의 호의로 문 걸어 잠근 후 마담이 제공하는 공짜 술을 마시며 서로의 처지를 위로했던 기억도 있다.

대전의 꽁보리밥 집에서 점심을 같이 하던 G사장은 집사람 친구의 남편으로, 한국을 떠나기 직전 가족과 함께 전국여행을 하면서 만난 자리였다. 그는 화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중소기업에 있다가, 회사를 차려 독립한 사람이었는데 L그룹과 S그룹에 납품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는 사업하기 쉽다고 강조했다. 뇌물이면 다 통한다는 거다. 담당자가 차를 원하면 차를 사주고 돈을 원하면 돈을 주고 나서 청구서에 그만큼 더 얹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돈 벌기 쉬운 곳을 떠나 다른 나라에 가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투였다.

당시 L그룹은 정도 경영이라는 3세 사주의 경영철학을 매스컴에 매일 광고하고 있었는데, ‘정도 경영은커녕 썩을 대로 썩어서 오히려 일하기 더 편하다고 했다. 명절 같은 무슨 때가 되면 담당자가 리스트를 주는데, 거기에는 과장 부장 이사 전무까지 얼마씩 준비하라고 금액까지 명시가 되어있다는 거다. 납품대가로 현금 대신, 자기네 그룹에서 생산한 제품을 주기도 하는데 지금 자신의 차도 S그룹에서 받았다고 했다.

새끼들만큼은 이런 썩은 나라에서 살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한국을 떠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였다. 여기서 살다가는 팔팔한 성격 때문에 40대에 죽을 것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불만이 있으면 변화를 구해야 한다는 평소의 신념도 한 역할을 했다.

 내 생각은 맞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떠난 조국은 1년도 못 되어 IMF라는 생소한 단어와 함께 곧 망하는 나라처럼 뉴스에 오르내렸다. 주식과 부동산은 폭락하고, 한국의 기업들은 팔려나갔으며 원화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IMF가 단군이래 민족에게 주어진 최대의 축복이라는 역설적 주장을 기사로 싣기도 했다. 민족의 잘못된 습성을 자연스럽게 리모델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기회였든, 위기(위험한 기회)였든 위대한 조국 대한민국은 IMF를 극복하고 힘찬 도약을 통해 세계인들에게 뚜렷한 족적을 남긴다. 90년대 중반 과잉투자되었던 정보통신 인프라는 조국의 도약에 밑거름이 되었다. DJ가 잘한 건지, 노무현 대통령이 잘한 건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위대한 조국 대한민국은 내가 떠난 96년과는 정말 너무 많이 틀렸다.

-       96년말, 성남세무서의 말단 직원은 외화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자산증명서를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떼어주지 않았다. 저녁에 숙직실로 찾아가 10만원이 든 봉투를 주자 다음날 바로 해주었었다. 당시 성남세무서 숙직실이 지금도 생각난다. 담배연기 자욱한 좁은 곳에 10여명도 넘는 직원들이 퇴근하지 않고 고스톱 치는 사람들 주위에 모여있던 음습한 실내가.

-       2008년초 모친상을 당하여 장례를 치를 때, 장례식장의 행정이나 비용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20여년 전의 부친상 때와는 너무나 달라 어리둥절했다. 하다못해 쓰다 남은 과일까지도 환불이 되었다. 또 부친 산소이장 때 용인구청 공무원의 친절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간단한 예지만, 10여년의 시차를 두고 경험한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좋게 변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부패한 정치인과 부정한 사업가들 사이에 거액의 뇌물이 오가고, 부익부 빈익빈은 더 심해지고, 검찰조직과 같은 기득권층의 횡포, 탐욕에 끝이 없는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 피곤한 서민들의 일상 등은 옛날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다. 수많은 미국인들이 한국 셀폰을 가지고 다니고, 베스트 바이나 Sears에 가면 커다란 한국산 TV앞에 많은 사람들이 서성인다. 백화점을 가더라도 고급스러운 옷들은 ‘Made in Korea’.

 한국의 TV 프로그램에서도 선진국임을 느낀다. ‘북극의 눈물이나, ‘아마존의 눈물’, 실크로드 같은 많은 다큐멘터리는 세계 유명 다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추적 60’, PD 수첩’, ‘뉴스 후같은 숱한 시사 고발 프로그램도 이미 선진국임을 암시한다.

 또 스포츠는 어떤가? 수영이나 골프, 피겨 스케이팅과 같은 브루조아 스포츠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대중문화는 어떤가?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미국의 가수를 추앙하고 팝송만 흥얼거렸던 우리 세대가 아니었던가? 미국 아이들이 한국노래를 흥얼거린다는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도 한국을 배우고자 한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 고속성장에 숱한 부작용도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좋은 일은 어느 정도 비용이 들고 희생이 없이 불가능하니까.

 부의 불균형, 공정하지 못한 사회, 기득권층의 횡포, 비뚤어진 가치관, 부패하고 부정직한 정치인 등 다같이 고쳐나가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어떻게 해서 젊은 사람들은 S라인, V라인, 식스 팩, 미모 등 외형에 모든 가치가 있는 것처럼 난리다. 말초신경 자극에만 열중한다.

 결과만 중시해온 우리 세대의 잘못된 세태를 답습한 결과인지는 아닌지 반성할 일이다. 헤겔의 변증론에 따르면 정, , 합이라는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에 이른다고 한다. 그 과정에 걸리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 고통 받는 사람들이 적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이 똑똑해져야 한다. 다수가 힘을 합쳐 현명한 소비를 해야 하고, 정직한 정치가에 한 표를 행사해야 하고, 각자가 눈앞의 이익에 초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미래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힘은 다수에게서 나온다. 똑똑한 대중에게 굴복하지 않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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