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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제주의 삶

한가위 단상과 시장표정

(2012년 10월 1일)

 

돌아가신 선친이 1.4 후퇴 때 부모님은 물론이고 처와 두 아들까지 이북의 고향에 두고 단신 월남한 덕분에, 차례나 제사는 모르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성묘할 선산도 없었을 뿐더러, 자신의 부모님 생사도 몰랐으니 그리 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아버님이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로 사경을 헤맨 적이 있었는데, 국민학생이었던 저를 보고 '옥희'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아버님의 유일한 친척이었던 당신의 이모님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북에 두고 온 당신의 처 이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옥희'라는 이름을 다시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눈을 감으시기까지 가슴 속 한이 되었으리라고 충분히 짐작은 합니다.


치매로 몇 년 고생하다가 2008년 초에 돌아가신 제 모친은, 한국전쟁 때 경찰이었던 남편이 포로로 잡혀있다가 북한군이 패주할 때 총알도 없어서 화형시켰다고 합니다. 병상에 있을 때, 저를 보고 경찰이 왜 집에 있느냐면서 빨리 근무하러 나가라고 하더군요. 저를 전남편으로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개인사를 이야기 하는 것은, 제가 차례를 지내는 법도 제사를 지내는 법도 모르는 무식함을 변명하려는 것입니다. 모친이 계실 때도 교회 권사님으로 무지한 신앙생활을 하신 분이니 제사를 지낼 분이 아니었지요.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나이 탓인지 부모님 생각도 나고, 명절만 되면 무언가 허전해서 차례를 지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으나 경험도 없고 배운 게 없으니 인터넷을 뒤져 흉내만 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집사람은 몇 가지 나물을 준비하곤 합니다. 물론 전 같은 것은 시장에서 사야 했었기 때문에 집사람과 같이 시장에 나가 본 시장의 표정을 아래에 옮깁니다. 한국의 한가위 정취를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 가게 이름이 재밌습니다.


- 옥돔이라는 제주특산 생선인데, 제주산은 무척 비쌉니다. 싼 중국산이 많습니다.


- 소위 '착한 가게'라는 간판이 붙어있습니다. 짜장면 3천원이라는 '착한 가격'이 보입니다. 시장에 오면 집사람과 함께 들리는 단골가게로, 이곳에서 싱가폴 관광객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콩국수, 겨울에는 짬뽕도 합니다.


- 갈치국, 멜조림 같은 제주 향토음식들의 메뉴가 보입니다. 갈치국을 먹어 보았는데 비릿내는 거의 없었습니다. 제주음식을 드시고 싶은 분은 이곳을 들리시면 됩니다. 탑동에 있는 동문시장 주차장 건물 1층입니다.

- 정육점도 분주합니다. 하늘을 보고 있는 돼지 머리가 인상적입니다.


- 한가위 대목의 재래시장 표정입니다. 아이 엄마를 찾는 듯 아이 아빠 눈길이 분주합니다.


- 그리드(greed)한 돼지 표정을 가까이서 봅니다. 월가가 저런 모습일까요?


-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합니다.


- 고춧가루도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시장에 오지 않고는 모를 겁니다.


- 시장 골목이 사람들로 터져나갈 듯 합니다. 돈을 주고 받는 손길도 분주하구요.


- 이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사러 나왔을까요?


-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는 것은 아닙니다. 부지런히 옆눈질로 진열된 상품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 제사상에 빠질 수 없는 동태전이 될 생선들이겠지요? 사람 냄새가 흠씬 납니다.


- 백설기 등 떡도 빠질 수 없습니다. 손주들에게 줄 빵도 삽니다.


- 길 이름이 '행복로'입니다. 다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이곳에는 건어물 가게가 모여 있습니다.


- 사람 사는 냄새에 취하지 않습니까? 


- 저는 이 냄새가 좋아서 장보러 나온 집사람 뒤를 졸졸 쫓아 다닙니다.


어제 추석날에는 제주에 다시 오신 최선생(juneauatom님)을 불러내어 한라산을 올랐습니다. 저보다 연배이신데 어찌 산을 그리 잘 타는지 제가 혼났습니다. 날씨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산에 오르니 부슬비가 내리기도 했고 바람도 꽤 불었습니다. 추석 당일인데도 산행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구요.

가는 도중에 '사라오름'이라는 곳을 들리는 바람에 3~40분 늦어지기도 했지만, 진달래 대피소에서 컵라면으로 다소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10분이 늦어 백록담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명절날 산행이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5시간 반 동안 흘린 땀 덕분에 몸과 마음은 가벼웠습니다.


- 사라오름의 분화구를 배경으로 한 최선생님.


- 사라오름 입구에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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