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퇴이야기/제주의 삶

친구의 제주방문

(2012년 11월 1일에 작성한 글)

 

지난 주말에 3명의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이 제주를 찾았다. 그들이 제주를 찾았다고 쓰는 것은 순전히 제주방문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A는 창원에서 근무하는데, 와이프와 이웃에 사는 부부와 함께 차에 자전거를 싣고 장흥에서 성산까지 페리를 타고 왔다. 회사에서는 나가라고 지방으로 발령을 냈지만, 끝까지 버티겠다는 친구다.

B는 치과의사로 현재는 마포구 망원동에서 개인 병원을 하고 있다. C와 함께 비행기로 왔다.

C는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K대 전자과 교수로 있는데, 가장 친한 친구 한 명을 꼽으라고 하면 주저없이 이 친구를 말했을 정도로 한 때 내게는 가장 절친한 친구이었다. 'Out of sight, out of mind'라고 했던가, 내가 이민을 떠난 후에는 옛날 같지 않다. 서먹하기만 하다.


비행기의 지연으로 금요일 밤 늦게 만나서 동문시장에서 일행 전체와 삼겹살로 소주를 적당히 곁들여 저녁을 먹고 그들 일행은 예약한 콘도로 갔고, 일요일 저녁에는 ABC 세 명만 만나 회를 떠다가 집에 와서 술을 마시고 숙소로 돌아간 후 월요일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제주에 온 목적은 자전거 타기다. 제주가 한국에서는 손꼽히는 사이클 코스라고 한다. 하긴 이곳에서는 헬멧에 썬그라스와 멋진 옷차림으로 떼를 지어 사이클링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해안도로를 따라 움직이기도 하고, 516도로나 1100도로에서 힘겹게 페달을 밟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기는 했지만, 친구 녀석들이 사이클링 하러 올 줄은 몰랐다.


B와 C는 서울에서 자전거를 부치고 제주에서 찾았다. 자전거를 부치면 공항에서 자전거 샾으로, 돌아갈 때는 자전거 샾에서 공항까지 라이드를 주는 서비스를 해 준다고 한다. A의 와이프는 차를 가지고 주변에 있다가 자전거를 운반하거나 낙오자가 생기면 돕는 역할을 했는데, 제주에서도 이런 서비스가 하루 십 오만 원에 가능하다고 한다.


이들의 방문은 내게 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으니 비행기를 타고 제주까지 사이클링을 하러 온 것이다. 토요일에는 모처럼 가을비가 왔었는데, 그 비를 맞아가며 하루종일 자전거를 탔고, 일요일에는 1100도로를 따라 그 높은 경사를 사이클링하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는 거다.


C는 공부하고 경력을 쌓느라고 40이 다 되어 띠 동갑하고 결혼했는데, 와이프는 의사다. 덕분에 아이들 셋은 아직도 학교에 다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울 턱이 없다.

B는 80년대 목동에서 개업을 했고, 90년 대에는 강남에 병원을 가졌었다. 충분히 벌었는지 돈도 귀찮고, 환자가 적당히 있는 편안한 동네에서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A는 장남이자 외아들로 부모님이 젊은 편이다. 경제적으로 부모님 덕을 좀 볼 수 있는 친구다.


물론 나는 이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힘들다. 개인연금(401K)을 받을 때까지 적어도 3년은 적게 까먹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니 십만 원 밖에 안 하는 기타를 사는 것도 몇 번의 생각이 필요하다. 무능력으로 일찍 은퇴한 탓이다. 미국에서 올 때 코스트코에서 사 온 300불 짜리 마운틴 바이크도 아직 베란다에 그대로 쳐박혀 있다. 마음에 여유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역시 혼자 하기에는 자전거 보다는 하이킹이나 트레일링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삶에 찌들은 탓일까? 그들이 가고 난 뒤, 와이프가 이야기 한다.


- 당신 얼굴이 훨씬 편해 보여. 친구들은 왜 그런지 찌들은 모습이야. 쓸데 없는 말들도 많고.


40년 전에 11명이 모여 죽을 때까지 우정을 변치말자고 철없는 맹세를 했던 친구들이다. 그러나 그 중에 둘은 이미 세상사람이 아니다. 하나는 남미 어딘가에 연락없이 살고 있고, 하나는 미국에 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사고로 잃은 친구도 있다. 40년이라는 시간이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놈들의 방문으로 한동안 상념에 빠져든다.

'은퇴이야기 > 제주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동차 사고  (0) 2013.11.15
가을의 방문객  (0) 2013.11.15
제주에서 집 지으려는 분들에게  (0) 2013.11.15
한가위 단상과 시장표정  (0) 2013.11.15
집과 이웃(7)  (0) 2013.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