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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

알바의 경험 II

(2012년 2월 24일)

 

아침에 서울에서 입원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지난주 목요일에 입원하고, 지난 월요일에 수술을 했다고 한다.

제거해야 할 종양이 너무 커서 갈비대를 하나 잘라내고 수술을 한 다음 다시 붙였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움직일 때는 아프다고 한다.

워낙 건강한 체질이라 회복이 빠른 편이라고 하니, 다음주 중에는 퇴원을 해서 돌아온다고 한다.


그나저나 내 임무는 생각보다 빨리 끝나게 되었다.

어제 저녁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어린이집 원장 남편이 붙잡는다.

바쁜 일이 없으면 자기네들 회식하는데 같이 가자고 권한다.


2월 마지막 주 금요일로 4살 된 아이들이 수료식을 했고, 1년간 수고한 선생들과 저녁을 하는 자리였다. 원장을 포함한 선생들이 6명, 그리고 원장 남편과 스페어 운전기사인 내가 참석한 곳은 무제한 리필이 가능한 고깃집이었다.

다음 주는 아이들이 몇 명 되지 않고 또 3.1절 공휴일이 끼어 있으니 자기들이 알아서 할 테니 나는 필요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 주는 수술한 친구가 돌아와서 일을 할 테니까 내 임무는 사실상 끝난 셈이다.


2주 동안 아침 저녁으로 3번을 돌며 아이들을 날랐다.

내가 운전한 지역은 노형동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제주에서는 가장 번잡한 곳이었다. 오피스텔, 고층 아파트, 이마트와 롯데마트, 유흥가 음식점, 상점들과 비지니스 건물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었다. 골목마다 차들이 넘쳐나고 있었고, 마주 오는 차가 있으면 빨리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서 누가 양보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아이들이 제 시간에 나오지 않으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그 사이에 다른 차들이 비켜달라고 하면 앞뒤로 움직이며 비켜야 한다. 가끔가다 차들이 뒤엉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선생들은 아이들 부모에게 쩔쩔 매었다.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들이 늦을 때는 마냥 기다리고, 그러다가 다음 차례에 늦어지면 전화로 사정을 하며 이해를 구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바로 집 옆에도 어린이 집이 있는데 굳이 먼 곳으로 아이들을 보내는 일이었다.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저녁 4시부터 6시까지는 온통 노란 색의 어린이집 차들이 넘쳐났다. 아파트 마다 어린이 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주민들이 그곳에 아이를 보내지 않고 굳이 차량으로 아이들을 실어나르는 곳으로 보내는 이유를 물어보니 선생들이 웃기만 할 뿐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사회가 돌아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

몇 아이들은 부모가 출퇴근 길에 직접 데려가기도 해서 그때 그때 마다 아이들 순서가 바뀐다. 어떤 때는 예정보다 10분 일찍 도착할 때가 있지만, 부모가 까다로운 사람들이라며 그 복잡한 길에서 마냥 기다린다. 일찍 도착했다고 전화하면 될 일이지만, 기분 나빠한다는 거다. 또는 부모가 아직 퇴근하지 않아서 아무도 없기도 하다.

아침에는 아직 자고 있는 아이를 들고 나오기도 한다. 또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더 자게 두어야 한다며 일찍 데리러 오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나중에 따로 한 바퀴 더 돌아야 한다.


아이들 봐주는 댓가는 한달에 35만원이라고 한다.

미국에 비하면 참 저렴하다. 미국에서는 서너살 아이들을 봐주면 한달에 최소 천불에서 천오백불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것도 부모들이 출퇴근하면서 라이드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대를 졸업해서 평생을 능률, 효율, 개선이라는 단어와 싸우며 살았다.

어떻게 하면 좀더 효율적으로 능률을 높이고, 일의 프로세스를 개선하는가를 생각하면서 평생을 살아온 내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을 본 느낌이다.


이 일을 하는 동안에 내가 살던 미국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뉴저지의 덴빌과 브릿지 워터의 한적하고 깨끗한 환경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이 일을 하던 친구는 자기 와이프와 보험사무실을 하니, 아침에 좀 일찍 집에서 나와 어린이집 차를 운전하고 근처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다시 저녁에 운전을 하는 Two Job을 하는 셈이었지만, 나는 중간에 다시 집으로 갔다 나오는 것도 힘들었다. 감기 기운이 남아 있어서 다른 무엇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감기가 나은 다음에는 근처의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나 저나, 아무 사고없이 임무를 완수한 것으로 만족한다.

오늘 아침에 병상에서 고맙다며 전화를 준 친구에게 작게나마 도움을 주었다면 내게도 작은 보람일 뿐이다.

그는 내가 제주에 살면서 사귄 유일한 친구다.


<후기>

인구 51만, 한국인의 1% 정도가 사는 제주에도 이렇게 복잡한 곳이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런 곳에서 살라고 하면 저는 못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운전을 하면서 선생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이런 곳이 좋다고 합니다.

든 게 주변에 있어서 살기에 편리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하긴 은퇴해서 사는 사람이 이런 곳을 좋아할 리가 없겠지요.

제가 사는 곳에서 정확히 11킬로이니 7~8마일 밖에 안 되는 곳이지만, 좁은 땅 제주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것도 멀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ㅎㅎㅎ 잘 이해되지 않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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