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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3월을 열며

일 년 열두 달을 4계절로 나누면 3개월이 하나의 계절이 된다. 일 년의 시작은 1월이지만 계절의 시작은 봄이고, 봄의 시작은 3월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늘날의 달력인 '그레고리력' 훨씬 이전에 사용하던 로마시대의 달력은 1년이 10 달이었으며, 실제로 밤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이 새해의 첫날이었다.


지구 온난화로 계절의 변화가 옛날 같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3월의 시작은 정초와는 다르게 또 다른 의미의 출발선이다. 새 책과 새 노트로 새 학년을 시작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일 수도 있을 테고, 뒷동산에는 진달래가 피고 동네 울타리에는 개나리가 흐드러져 세상이 화사한 색으로 치장하는 탓일 수도 있다. 어제 새벽에 만난 차가운 공기가 오늘이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텐데도, 오늘 새벽이 보다 포근하게 느껴진 것도 날짜를 의식했기에 그랬을 것이다.


여느 날처럼 새벽 운동과 샤워를 끝내고 컴퓨터로 뉴스를 훑으니, 첫눈에 띄는 기사가 '격동의 3월, 대한민국 국운 가른다!'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겨울이었던 3개월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지나갔다. 매일 쏟아지는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뉴스들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정국은, 본격적인 뉴스 대담 프로가 시작하는 오후 2시 반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눈과 귀를 하루 종일 뉴스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어느 대하소설보다 흥미로운 소재들이 많았으며, 인간세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갈등의 요소들이 범벅되어 있었다. 돈, 권력, 음모, 불륜, 부모, 자식, 형제, 모함, 정의와 불의, 우정, 배신, 가족사, 암투, 모략, 선동, 불법, 매수, 이합집산, 협박, 폭력과 살인, 탈선과 미혼모, 진실과 위선, 억지와 거짓, 진짜와 가짜, 선과 악, 아름다운 모습과 추한 성정 등, 인간사에 등장하는 모든 욕망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진실을 덮고 사실을 가리려는 시도와, 거짓을 사실처럼 위장 호도하고, 자신들의 주장과 다르다는 이유로 과학수사(Forensic)를 근거한 검찰 발표까지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진위(眞僞)와 선악(善惡), 미추(美醜)를 따지는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들에게 정의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일뿐이지 진실이나 사실에 근거한 논리가 아니었다. 광장에서도 법정에서도 논리보다는 주장이, 이성보다는 감정이, 대화와 설득보다는 강요가 우선했다. 심지어 16%에 불과한 세력이 78%가 넘는 여론보다 우세하다며 억지를 부렸다.


그런 혼돈의 시간이 지난겨울이었다. 2월의 마지막 날인 어제 우여곡절 끝에 특검은 막을 내리고, 오늘 새 봄이 시작되는 첫날을 맞았다. 매일 새벽마다 뛰는 초등학교 운동장의 공기 속에도 포근함이 느껴졌다. 이 봄에는 혼돈과 어둠이 사라지고 이성과 질서를 되찾아 사람들 사이에 따뜻함이 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계절만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도 포근한 봄기운이 느껴지면 좋겠다.


신문기사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 '격동의 3월'이라니! 격동의 시간은 지난겨울로 이미 끝났다. 이젠 봄이다. 격동 후에 안정을 되찾아가는 시간일 뿐이다. 열흘 정도면 탄핵의 가부가 결정될 것이고, 거기에 맞춰 주장과 감정, 강요 대신 이성에 기초한 논리대로 새로운 시대로 거듭날 것이 분명하다. 지난 60년 세월이 그랬던 것처럼!


대한민국이 혼돈의 시대를 끝내고 다시 힘차게 도약하리라는 희망을, 3월의 첫날에 달라진 대기 속에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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