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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새해 첫날에

해마다 맞이하는 1월1일이 다른 날과 다를 것은 없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며 겨울답게 쌀쌀한 날씨라는 것도 어제와 같고, 내일과도 비슷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1월1일 뜨는 해를 먼저 보겠다고 정동진의 추운 새벽바다에 나가 소원을 빈다고 해서, 다른 날에 해돋이를 보며 소원을 비는 사람보다 월등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감상 없이 이날을 맞이하는 것도 정상은 아닐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은퇴한 마당에 회사를 다닐 때처럼 특별하지는 않다. 회사에서는 결산과 신년 계획을 세워야 하는 12월이 제일 바빴다가 새해가 되면 좀 한가해진다. 지금은 다 지나간 옛일이 되었으나, 제일 괴로웠던 일은 실적평가(Evaluation)와 봉급인상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니 너무 잔인했고, 후하게 평가하자니 운신의 폭이 그리 크기 않았다.


'행복'을 화두(話頭)로 글을 썼던 게 엊그제 같은데 1년이 되었다. 'David'님이 언급한 것처럼, 한시간이나 하루는 길지만, 한달이나 일년은 정말 빠르게 지난다. 1년 전, 12월 31일에는 '행복'1월1일엔 '행복과 불행'이라는 제목으로 썼던 글에서 '인간이란 태생적으로 행복에는 둔하고, 불행에 민감한 존재라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물론 내가 창작한 것은 아니고 이런 저런 곳에서 비슷한 글을 읽다가 그런 깨달음이 왔었다. 그것은 마치 건강한 사람이 평소 건강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다가 건강을 잃고 난 후에야, 담배를 일찍 끊지 않은 것, 술을 너무 자주 마신 것, 음식을 너무 밝힌 것, 운동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며칠 전 '노매드'님의 '왜, 날 사랑하나?'라는 제목의 글을 그런 의미로 읽었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라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글쓰기'라는 답했고 글쓰기에 올인하겠다고 생각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보다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겠다는 거대한(?) 착각을 했다. 실제로 지난 4월부터 소설이라는 장르에 몰두했지만, 그게 얼마나 자신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과대망상이었는지 처절하게 깨닫는 시간이었을 뿐이었다. 썼다가 지우고 새로 쓰기만 수십 번 했다가, 쓴 글을 열어보는 것조차 두려운 좌절감 속에서 몇 달을 보냈다.


1월1일이자 일요일인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늦은 6시 반에 운동화 끈을 조이고 집을 나섰다. 영상은 약간 웃도는 기온이라 쌀쌀했지만, 5분간 뛰어 도착한 초등학교에서 운동장을 10바퀴를 뛰자 이마에 땀이 맺혔다. 웃옷을 벗어 철봉대에 걸치고 얇은 셔츠 바람으로 15바퀴를 속도를 높여 더 뛰었다. 평소보다 다섯 바퀴를 더 돈 셈이다. 앞가슴과 겨드랑이가 땀으로 젖어 옅은 회색 셔츠가 진회색으로 바뀌었고, 숨은 턱까지 찼다. 아무리 맹위를 떨치는 독감도 이렇게 운동하면 건드리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과에 너무 연연하는 건 아닐까. 직장에 다닐 때는 늘 결과가 중요했다. 며칠 동안 밤을 새며 아무리 노력했어도 결과가 시원찮으면,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헛수고에 불과했다. 원하는 결과가 먼저 있었고 그 결과를 얻기 위해서 무엇인가 시도했다. 과거에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가 아니다. 과거처럼 아침에 나갈 직장도 없다. 그런데 삶을 꾸려가는 생각의 방식은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는 것은 모순이다. 시도가 없으면 결과도 없다. 그러나 과거처럼 결과의 성패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 은퇴했으면 생각의 패러다임도 바꿔야 한다. 지금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과정을 즐기면 그뿐이다.


그게 바로 행복이니까.


<후기>

최근 두 달은 뉴스에 빠져 살았습니다. 국정조사를 포함해서 특검에 대한 새로운 뉴스와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이해타산에 따른 이합집산과 그들의 행태는 인간이라는 욕망 덩어리를 감상하는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럴 듯하지만 아주 뻔뻔하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위선에, 타락한 인간들의 추악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 보는 것은 통쾌했습니다. 그들은 중고등학생 시절 수재로 소문난 우등생이었고 서울대학을 나왔으며, 선진국에 유학을 다녀왔고 교수나 판검사 혹은 장차관이었으며 나라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가진 것도 없고 지위나 권력은 없지만, 그들보다 훨씬 떳떳한 삶을 살았다는 긍지가 생겼습니다. 지난 두 달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사에 열심히 댓글을 다는 일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해보는 댓글활동이었지만, 그리고 그런 댓글이 어떤 영향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위선과 기만에 물든 사회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해서, 개수 제한에 걸려 더 이상 달 수 없을 때까지 달았습니다, 하하하.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제가 한 댓글 활동입니다. 두어 달 동안 2,780개를 달았으니 많이도 달았습니다.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주로 젊은이들이라 그런지 막말이 너무 많이 보이길래, 저는 꼭 '~입니다.' 투로 적었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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