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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현명했던 그들, 어리석었던 나

- 한국에게 미국이 어떤 나란데! 미국이 없었다면 1950년 공산화된 김일성 치하에서 살게 되었을 것 아닌가!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을 돕기 위해서 가장 부국이었던 미국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그들의 군대가 한국에 주둔하며 훈련하다가, 사고로 아이 한 둘 죽은 게 무슨 큰일이라고 저렇게 난리지?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행위가 아닌가!


2002년 말 미국에서의 이민생활이 웬만큼 안정되었을 무렵이었다. 1년 전에 영주권을 받아서 처음으로 한국도 다녀왔고 큰 아이는 대학에 갔으며, 가정이나 회사나 사소한 문제 밖에는 없던 시절이었다. 되돌아보면 이민생활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관심이 없었던 한국 관련 소식에 다시 주목하게 된 것은, 그해 여름에 있었던 월드컵 때문이었다. 조별 리그를 통과해 16강에 오른 것도 믿어지지 않는 사실인데, 8강과 4강에 오른 것은 우리 이민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회사 컴퓨터 설비를 책임지고 있었던 탓에 남들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출근해서 설비를 점검했던 나는, 출근시간 전 남는 시간에 인터넷으로 한국의 신문들을 보는 것이 습관이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14년 전 이 무렵 가장 뜨거운 뉴스는 일명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불리는, 훈련 중인 미군 장갑차에 의해 여중생 두 명이 압사한 사고가 원인이 된 시청 앞 촛불집회였다. 신문을 보며 ‘단순 과실치사 교통사고’에 불과한 일로 수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항의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고, 나와는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벌리는 시위에 대한 기사는, 미국 생활이 술술 풀리고 있던 당시의 내게 짜증 나는 일이어서, 한국의 뉴스에 멀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최근 두 달이 넘도록 뉴스에 푹 빠져 살고 있다. 그 어떤 고전이나 대하소설도 이보다 재미있을 수가 없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실화일 뿐만 아니라,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정권 18년과도 연결되어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뉴스는, 때로는 상상의 범위 내에서조차 경이롭고 때로는 상상마저 초월하는 놀라움을 준다. 특히 대통령이 YS일 때 떠나 MB일 때 돌아와, 한국에 살면서 혹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느낀 의문을 풀어주었다는 점에서 흥미는 배가된다.


이민생활 중에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는 이민을 한 것에 자부심을 느꼈으며, 한국에서 쌓은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이민을 결정한 스스로가 대견했던 반면,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인터넷으로 짬짬이 접하는 한국 뉴스에는 편견을 가졌다. 대낮에 탱크에 깔려 처참하게 죽은 두 어린 목숨보다,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보다, 위대한(?) 은혜의 나라 미국에 저항하는 작은 나라 국민의 어리석음이 먼저 보였다. 2008년 봄에 벌어진 소고기 촛불시위도 그랬다. 미국 소고기가 얼마나 맛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촌놈들이 벌이는 무지의 소치라고 일축했다. 겉으로 드러난 사실의 작은 일면들로 어리석고 무지한 판단을 한 것은 바로 나였다.


전후 세대이자 베이비부머에 해당하는 우리 세대는 어느덧 기득권 세대가 되었다. 물론 이민을 떠나 그 대열에서 낙오한 나 같은 사람도 있지만, 대학을 나와 퇴직할 때까지 직장을 꿋꿋하게 지키거나 시류에 적당하게 타협하며 살아온 대부분은 강남이나 신도시에 아파트를 가졌으며 살아가는데 별 아쉬움이 없는 중산층인 것이다. 유일한 리스크는 현 체제의 급격한 변화다. 예를 들어 부동산 종합세 같은 혁명적 세제 도입으로 갖고 있는 부동산이 폭락한다든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복지정책을 한다고 없던 세금을 새로 징수한다든가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들에게는 통일도 관심 밖일지 모른다. 통일이란 그들의 안정된 생활을 깰 수도 있을만한 급격한 변화일 테니까.


3년 전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권은희를 ‘걔는 쓰레기야!’라고 일갈한 친구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세상은 복잡한 것 같지만 의외로 단순하고, 간단한 것 같지만 평범한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제는 명명백백하게 밝혀졌지만, ‘깜(?)’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잘 알지도 못하는 대중들이 언론에 의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이었고, 이해할 수 없었던 박 대통령의 인사와 정책은 최순실 일당의 농간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붙어서 출세와 일신의 영달을 꾀했던 일단의 무리들이, 사실을 감추고 진실을 왜곡함으로써 단순 무지한 대통령을 무슨 대단한 의도나 지혜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함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도 있다. 대부분의 진실이 드러난 작금에도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 그렇다.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탄핵을 지지하는 80%에 가까운 국민들을 종북으로 몰거나 종북세력에 휘둘린 결과로 폄훼하고, 증언과 증거를 조작하려고 시도하는 국회의원들이다. 그들이 그렇게 진실을 왜곡해서 지키려는 것은 무엇일까. 박근혜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국회의원 지위와 현재 누리고 있는 기득권이 아닐까.


부모형제라고 해서 비도덕이고 비윤리적인 그들의 행위를 보호하는 것은 옳지 않다. 도둑질을 한 범죄자를 감춰주는 이유가 고향이나 출신학교가 같다고 해서 용서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치국가에서 들이대는 잣대가 재산이나 신분에 따라 길어지고 짧아지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듯 간단명료한 원칙이 지켜진다면 세상일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없다. 세상이 복잡한 것은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으려고 시도하는 자들 때문이다.


남들에게는 짧은 치수의 잣대를 들이대고, 자신들에게는 넉넉한 잣대를 원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전략은 단순함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게 무엇일까. 실체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증거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는 ‘종북 타령’만큼 좋은 논리는 없다. 자신에게 불리한 주장을 하는 집단을 종북으로 몰면 통했다. 그들과 같은 입장에 있는 언론과, 그들이 사전에 만들어두고, 미리 장악해 둔 언론이 같은 톤으로 나팔을 불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기득권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일신의 안락함에 따라 혹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잣대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부모형제라고 해서, 동향이나 동문이라고 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간단한 논리를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 14년 전 내가 그랬다. 내 아이들만 끔찍하게 소중했지,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은 남의 일이었을 뿐, 내 아픔은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의 일처럼 생각한 많은 사람들은 그때도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추운 겨울에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


그들은 현명했고 나는 어리석었다.


▼ 지난 주에 참석했던 제주 시청 촛불집회. 

토요일 오후 4시에 열리는 줄 알았는데 5시에 시작했다. 아직 집회 전이라 주변은 한가했다.


▼ 집회를 시작하면서 군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하여 공연이 있었다.


▼ 일찍 간 덕분에 제일 앞자리를 차지했는데, 옆자리에 있던 이 할아버지가 유명한 문정현 신부님이었다는 것을 사회자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 3분 발언을 위해 무대에 올라온 시민들.


▼ 시간이 지나면서 인파는 늘었다. 제주에 약 2,500명이 모였다고 나중에 뉴스에서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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