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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비아그라

(최근 일주일 비아그라가 한국에서 화제에 올랐습니다. 청와대에서는 왜 비아그라를 구입했을까요? 발표한 대로 고산병 때문에 샀다는 말을 믿어야 할까요? 더군다나 여성이 대통령이니 안 믿을 도리도 없습니다. 아래 글은 2년 전에 썼던 '비아그라 이야기'를 토대로 수정한 글입니다. 글의 소재상 남성 성기에 관련한 단어가 사용되니, 다소 불쾌한 점이 있더라도 한심한 수컷들의 이야기로 치부하거나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과학적 이론이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제 경험에 기초했기에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미국 이민생활 중에 몸 담고 있었던 회사가, 제약회사에서 개발한 신약(New Drug)을 개발하여 식품의약 관리청(FDA)에 승인 신청할 때 수반되는 수많은 임상실험자료와 서류들을 전자문서로 변환하는 일을 했고, 나는 그 일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담당했다. 단순히 서류를 컴퓨터화하는 것을 포함, FDA에서 쉽게 검토할 수 있도록 목차를 만들고 자료들을 서로 링크로 엮어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찾을 수 있도록 작업했다.


직원이 몇 명 되지 않았던 회사 초창기에는 IT 일을 하면서도 서류 변환에 직접 참여했었기에 일의 내용을 좀 알았다. '노바티스', '존슨 앤 존슨', '베이어(바이엘)', '아스트라' 등 많은 제약회사 고객 중에는 화이저도 있었다. 1999년 화이저와의 천만 불이 넘는 계약 성공으로 우리는 수천만 장에 이르는 임상실험 서류를 취급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비아그라 데이터의 분량이 가장 많았다.


비아그라는 실데나필의 상품명으로 정력이라는 단어(Vigor)와 나이아가라(Niagara)의 합성어다. 즉, '정력이 폭포수처럼!'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이 약은 원래 심장병(협심증) 치료약으로 개발하기로 FDA의 승인을 받고 임상실험을 하던 중, 이를 복용한 환자의 페니스가 발기하는 엉뚱한 효과 - 의학적으로는 Side Effect(부작용)이라고 하는데, 신약이 실패하는 가장 주요한 원인이다 - 가 나타나는 것이 관찰되었다. 따라서 실패한 약으로 세상에 나타나지 않을 뻔했었지만, 개발자들은 오히려 이 부작용에 주목했다.


심장병 치료제가 발기부전 치료약으로 목표가 수정되어 FDA로부터 승인을 받게 된 것이다. - 이런 결과로 심장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이 약의 처방을 받지 못한다. 이 약의 임상실험 데이터를 보면 성적인 질문으로 가득하다.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약을 먹고 몇 분 후에 발기가 되었는지, 발기가 얼마 동안 지속되었는지, 성행위시에 만족감이 전과 비교해서 나아졌는지, 관계 시간이 전보다 길어졌는지 등을 묻는 질문들이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어쨌거나, 비아그라의 출현은 20세기를 마감하는 무렵인 1998년 역사적인 초히트상품이 되었다. 단순한 '밀리언 셀링 드러그'를 넘어 '더블 밀리언 드러그'가 되었다. 매출액 기준 세계 4, 5위의 화이저는 일약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로 부상했다. 단일 약품으로 하루 매출이 몇 백만 불에 달했고,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돈을 벌어 들였다. 당시 사세 확장으로 사무실 부족을 겪던 화이저 본사는 맨해튼에 나오는 부동산을 마구 사들였고, 세계 10위권에 있는 큰 기업들을 흡수 합병한 것이 뉴스거리가 되었다. 내가 출퇴근 시에 지나던 뉴저지 53번 도로의 한 제약회사도 'Pfizer'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2001년 말 영주권을 받고 다음 해 봄 처음으로 한국에 갔을 때, 친구들 줄 선물로 비아그라 30알을 가져갔었다. 대학 동창들 모임에 참석해서 이것을 나눠주었더니, 참석하지 않아서 받지 못한 친구들에게 난리가 났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내게는 별로 효과가 없었으나, 어떤 친구들에게는 꽤 만족스러웠던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이 약이 사회에 끼친 영향은 아주 컸다. 우선 한국에서는 한의사들이 손님을 잃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의원의 최대 수입원은 보약과 정력제이었는데, 보약은 간편한 홍삼제품으로 경쟁력을 잃었고, 정력제는 비아그라 때문에 고객을 빼앗겼다. 한 때는 꽤 인기가 있었던 한의대가 요즘은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된 것도 그 탓이라고 한다. 2008년 경제위기 시, 쓰러져가는 GM의 노조가 모럴 해저드로 여론의 지탄이 된 중심에도 비아그라가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다른 제약회사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비아그라를 흉내 낸 제품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FDA의 신약개발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파는 모든 약은 FDA의 승인을 받아야 팔 수가 있다. 1900년대 초, 미국에서 임신부의 입덧을 완화하는 약이 판매되었는데, 그다음 해에 기형아가 많이 태어났던 사건이 있었다. 정부가 조사에 나섰고 입덧 약이 원인임을 밝혀진 후에, 국민들이 먹는 식품과 의약품을 사전 관리할 목적으로 FDA라는 연방정부기구가 탄생했다고 들었다. 전 세계 70억 인구 중에 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5%가 되지 않지만, 미국에서 소비되는 약은 40%가 넘는다. 미국에서 흔히 보는 비만인구들은 약으로 삶을 지탱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약을 개발하려면 FDA에 약을 개발하겠다고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기존에 치료제가 없거나 있더라도 기존의 약보다 더 우월한 효과가 있어야 승인을 받을 수 있다. 특허권은 이때부터 20년이다. 개발기간이 포함되기 때문에 제약회사들은 개발기간을 단축하는데 사활을 걸고, 그 틈새에 내가 다녔던 회사가 역할을 담당했었다. 이렇게 승인을 받게 된 신약은, 그 기능에 따라 짐승이나 사람에게 투여되고 관찰되는 임상실험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과정은 매우 복잡한 이야기가 된다. 어쨌든 이렇게 취득된 수만 건에서 수백만 건에 이르는 임상실험 데이터가 FDA에 제출되고, FDA의 전문가(대부분 Ph.D로 Reviewer의 역할)에 의해 검토된 후, 승인(Pass)이 되기도 하고, 부적격(Fail)이 되기도 한다. 약에 따라 다르겠지만, 승인을 받게 되면 그 회사의 주가는 하루아침에 두세 배로 뛰는 일도 흔하다.


다른 이야기지만, 2000년대 초중반, 마사 스튜워트가 부당 주식거래로 실형을 살게 된 것도, 임클론이라는 제약회사가 제출한 신약 승인이 FDA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는다는 것을 친구이었던 임클론 CEO로부터 미리 듣고, 매스컴에 발표 나기 하루 전에 갖고 있는 임클론 주식을 처분한 사실이 미국 증권거래 감시소에 적발이 된 것이 원인이 되었다. 이런 연유로 비아그라의 대항마로서 시카고에 있는 세계적 제약회사 '일라이릴리' 사에서 개발한 것이 시알리스이고, 독일의 제약회사에서 개발하고 영국의 세계적 명성의 제약회사 GSK에서 팔고 있는 것이 레비트라이다. 이 중에 시알리스가 효과 측면에서 타사 제품을 능가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비아그라의 특허는 2012년 5월 17일로 종료되었다. 처음 나왔을 때는 한 정에 60불이나 되었던 약의 복제약을 3~4천 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하고 복제약이다. 청와대에서 사간 비아그라의 처방전은 누구를 진단한 것일까. 페루에서 열리는 APEC 회의 참석에 대비해서 고산병 예방약으로 샀다는 청와대의 공식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꺼림칙하다. 처방전 없이 암시장에서 샀다면 모를까. 아니면 권력을 이용해서 탈법적으로 구입했을까.


참, 지랄 같은 청와대다. 비아그라는 도대체 왜 구입했을까? 세계사에 남을 국제적 망신이다. 내일 저녁은 그녀의 퇴진을 외치러 제주시청에라도 나가야겠다.


▼ 어제 방영된 '썰전'에서 가져온 스크린 샷.


▼ 개인적인 비용까지 국비로 샀다는 것인데.


▼ 설마 미용을 위해 청와대에 갔을 리는 없을 테고... 6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게, 일반인이 아닌 대통령의 자랑일 수는 없을 것 같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보다 나이가 두 살 많다.


 일이 없으면 집무실에 나가지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는 대통령. 몇 걸음 되지도 않는데. 이런 상황에서 그녀의 말을 믿을 사람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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