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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세상의 불행

개인의 불행은 대부분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된다. 욕망과 희망이라는 단어는 모두 '인간이 바라는 지향점'을 뜻한다는 점에서 비슷하기에 경계가 애매하다. 그러나 희망은 삶의 원동력이 되는 긍정적인 단어지만 욕심이나 욕망은 대척점에 있다. 따라서 욕심이란 자기 힘으로 도달할 수 없는 '부질없는 희망'을 뜻할 수도 있겠다. 열심히 땀흘려 일해서 번 돈을 저축해서 부를 이루겠다면 '희망'이 되지만, 남이 가진 것을 빼앗겠다거나 로또 당첨으로 몫돈을 만지겠다는 것은 한갓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세상의 불행은 어디에서 올까? 그것은 역사 속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훌륭한 지도자를 가진 백성은 행복했고, 그렇지 않은 국민은 피폐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 성군이었던 세종대왕은 '어리석은 백성을 가여이 여겨' 한글을 창제함으로써 백성들뿐만 아니라 그 자손들까지 행복하게 했던 반면에, 연산군이나 광해군 같은 폭군은 말할 것도 없고, 무능하고 어리석은 선조는 왜놈들이 7년 동안이나 백성과 국토를 유린하도록 버려 두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고자 했을 때, 당시의 기득권층이었던 유림과 사대부에서 엄청난 반대를 했다는 것은, 여러 차례 방영된 사극을 통해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무지한 백성들이 글을 깨치는 순간 다스리기 힘들어진다는 것이 당시 특권층이 가졌던 생각이었다. 놀랍도록 정확한 통찰이었다. '정보의 독점'이 가장 손쉬운 권력유지 수단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특권층들은 정보를 그들끼리만 독점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의사의 처방전이나 진료기록은 일반인들이 알아보기 힘들게 쓰는 것도, 판검사들이 사용하는 용어가 일상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용어로 채워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독일은 연설과 대중선동의 귀재 히틀러를 지도자로 선출하는 잘못으로 8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죽어야했다. 이태리 베를루스코니는 언론을 장악한 뒤, 온갖 선정적인 방송과 허위보도를 통해 연임에 성공하며 국민의 삶을 도탄으로 몰아 넣었다. 미국의 부시는 허위 정보를 근거로 이라크를 침공하여 애꿎은 젊은이들을 희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15만이 넘는 이라크 국민을 주검으로 만들었고 온 세계를 난민과 테러로 몸살을 앓게 했다.


IS 가담자나 테러범들이 양극화로 인한 희생자나 공동체에서 소외된 낙오자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최근 발생한 방글라데시 테러의 용의자들은 중산층 출신들이었다.(자료기사) 정부관료와 무역상을 하는 중상류층 자제까지 있었다. IS의 지도자 '알 바그다디'는 이라크의 명문대학에서 코란연구로 석·박사를 받은 엘리트로 평범한 선생이자 선량한 가장이었다. 지난주 토요일에 방송된 KBS '세계는 지금, 특파원 보고'를 보자.


▼ 그의 전 부인이 증언하고 있다.


▼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없었다면 그는 평범한 선생이자 종교인으로 평생 살아갈 사람이었다.

▼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이라크 전쟁으로, 미군에 체포되어 1년간 투옥되면서 감옥에서 만난 급진주의자의 영향을 받아 과격한 테러리스트로 변했다. 부시가 저지른 이라크 침공이 만든 사생아인 셈이다.

▼ 현재의 IS는 패전한 이라크 정부군이 주축이다. 이라크 전쟁은 시리아의 내전을 초래했으며, 시리아와 이라크의 난민들이 유럽의 골치덩이로 대두되어 브렉시트를 가져오는 결과로 이어졌다.

▼ 이 모든 사태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며칠 전, 국내에서는 나향욱이라는 47세에 불과한 고시출신 고급 공무원이 기자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대중은 개·돼지와 같다'라고 발언해서 온 사회가 분노하고 있다. 약 2500년 전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이미 '대중은 우매하다'라고 설파했으니 크게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러나 플라톤이 의미하는 바는, 대중은 이성적으로 보다는 감성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을 두고 한 말이었다. 플라톤의 통찰은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통하고 있다는 말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럼, 나향욱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jtbc'에서 어제 방송한 '뉴스룸'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교육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담당하는 정책기획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여기서 과거형으로 쓰는 것은 발언 이후 보직해임이 되었고 지금은 파면이라는 최고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국회에서 변명한 발언에 근거하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여론을 설명하면서 흥분했다고 한다. - 관용을 위해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건들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인다. (팩트체크보기)


국정화 교과서가 발표되고 작년 10월에 시행한 여론조사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같은 42%로 동률을 이루었다. 이런 여론조사에 근거해서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높으므로 이에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역사학자 대부분이 집필을 거부하고, 집필진이 선정되면 공개하겠다는 정부방침이 이에 따라 비공개로 전환되면서 여론은 급격히 악화되어, 한 달 후에 시행한 여론조사에서는 53:36으로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러자 김무성 새누리 당대표는 '국정화는 여론조사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고시를 하면 논란은 잦아들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을 개·돼지로 취급하는 것은 과연 나향욱뿐일까. 일단 결정해놓고는 상황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꾸며 대중을 기만하고 무시하는 정치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몇 년 전 정몽준 씨가 국회의원 보선에 출마할 당시 그의 막내아들이 SNS에 '정부방침에 따르지 않는 미개한 국민'이라고 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1980년 주한 미군 사령관이었던 존 위컴 대장은, 광주 학살을 자행한 전두환 정부를 옹호하며 '한국인은 들쥐(Field mice) 같아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복종한다. 한국인에게 민주주의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1979년 박 대통령 경호실장이었던 차지철은 부마사태가 일어나자, '데모대 100~200만 명만 탱크로 밀어버리면 이땅에서 데모는 사라질 것이다. 캄보디아는 300만 명도 죽였다'라며 건의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김재규가 이말을 듣고 대통령 시해를 결심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한국을 방문했던 반기문 유엔 총장이, 5월 25일 관훈토론에서 '세계 속 한국은 레벨이 훨씬 낮다. 그런 면에서 언론은 국민을 계도하는 게 중요하다.'며 행한 발언이다. '계도'라는 단어는 교육현장에서 선생이 학생에 대해 쓰는 말이다. 개·돼지까지는 아닐망정, 대중을 우매한 계도 대상으로 보는 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향욱뿐만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대중은 실제로 우매할까? 아니다. 기득권이 똑똑하고 현명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정보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요, 정치인들이 통치가 쉽도록 정보를 차단해서 대중이 우매해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중국은 구글접속을 차단하는 등, 정치권력에 불리한 정보에 대한 국민들의 접근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인들이 정상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 판단으로 그들이 남중국해 전체를 자신의 영토라며 억지주장을 하는 이유다.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그들의 막가파식 태도가 정말 두렵다. 물론 지배계층 정보독점의 극단적인 사례는 북한의 김정은 집단이다. 


지난 주에는 영국에서 '칠콧 보고서'가 7년 끝에 완성되어 세계적인 반향을 불렀다. 영국의 이라크 참전이 불필요한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메이어 총리는 이미 8개월 전에 참전을 결정했다면서, 그 증거로 그가 부시에게 보낸 자필 편지를 제시했다. 'I'll be with you, whatever.' 그리고 8개월 동안 어리석은 영국민과 의회는 그의 의중대로 움직인 것에 불과했다.


▼ 존 메이어 영국 총리는 이라크 참전이 의회에서 의결되기 8개월 전에 이미 이런 메모를 부시에게 보냈다.

영국은 선진국답다. 진상조사에만 7년을 끌다니. 만 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는 읽는데만 열흘이 족히 걸린다고 한다. 한국은 세월호 진상조사도 1년 내에 끝낼 것을 종용했고, 연장도 1회에 한해 반년이 주어졌을 뿐이었다.

영국군의 인명피해는 오직 179명 뿐이었다. 세월호는 304명이 온국민이 보는 눈앞에서 수장되었다. 미국은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해서 4천 명이 넘는 젊은이를 의미없는 전쟁에 희생시켰고, 인류역사에 크나큰 범죄를 저지른 셈이 되었다.


<후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행복여부는 지도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금의 미국 양극화도 레이건 행정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1929년 대공황을 경험한 미국은 금융가의 탐욕을 제한하기 위해서 여러 규제장치를 마련되었으나,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자 이들을 하나 둘 철폐했고, '낙수효과'나 '래퍼곡선'과 같은 엉터리지만 어리석은 대중에게는 그럴 듯해 보이는 이론을 만들어 99%가 아닌, 1%의 기득권을 위하여 법인세와 상속세를 줄이고 금융가의 탐욕을 채워주었던 겁니다. 레이건이나 부시 같은 대통령을 뽑지 않았다면 경제위기도 예방했을 것이고, 저도 제주가 아니고 미국에서 원래 계획대로 편안하게 은퇴생활을 하고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미국만 그럴까요? 한국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얼마전 여당의 국회의원이 EBS에서 방영한 '다큐 프라임, 민주주의'를 문제 삼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부방침에 맞지 않는 방송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인들을 잘 선출했다면 '헬조선', '노오력', '흙수저' 같은 부정적인 용어는 없었을 겁니다. 영국도 오늘날 브렉시트를 하지 않았겠지요. 어제 취임한 영국의 메이 총리는 '보수당을 특권층이 아닌 노동자 편'으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노동당이 아닌 보수당인데도 말입니다. 진보나 보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1% 기득권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99% 대중을 위한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서 다수의 행복을 결정하는 키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흑인문제도 다루고 싶었지만, 쓰다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여기서 줄입니다.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