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듣고싶은 것만 듣고, 보고싶은 것만 본다.

(2013년 8월 27일에 작성한 글)

 

선입관(先入觀)이라는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미리 들어가 자리잡은 개념이나 생각'이라는 뜻일 게다. 어릴 때는 아무 개념이 없지만, 살아가면서 부모나 형제로부터 또는 학교에서 습득한 개념들이 자리잡는데, 이렇게 백지상태에서 자리잡은 개념들은 쉽게 그 자리를 내놓지 않으려고 한다.


청소년기에는 친구들을 통해서 개념이 자리를 잡기도 하고, 독서를 통해 습득한 지식도 신문이나 TV 같은 매스컴과 영화에서 보고 들은 것도 개념화에 기여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터를 잡은 관념은 눈과 귀를 통해 나중에 들어오는 이종(異種)의 개념에 쉽사리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통 일컫는 '텃세'라는 것이 사람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 안에서도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해서 얻어지는 관념이라는 것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종종 경험하기도 하고, 늘상 접하는 매스컴에서도 그릇된 정보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을 본다. 특히 인간은 활자나 보여지는 정보에 약하다고 한다. 그런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 마켓팅이고 광고다. 어렸을 때부터 반복해서 보여지는 TV 광고에 의해 생겨진 선입관이 그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이제 주지의 사실로 비싼 값을 치루고 그 브랜드를 산다. 찌라시나 신문, 잡지 등에 활자화 되어있는 건강식품 또는 다이어트 식품에 대한 과장광고도 인간의 그런 약점을 이용한 마켓팅의 방법이다.


나도 그런 선입관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1983년 처음 방문했던 플로리다의 눈부신 해변에 펼쳐진 그들의 문명을 보고, 백인들이 우리보다 우월한 종족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 엉터리 믿음을 가졌던 자신이 지금은 어처구니가 없지만, 당시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여 그들에게 배운 훈육방법을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적용하기도 했다. 대학시절에 읽었던 이병주 선생의 소설 '산하(山河)'를 보면 팔도 여자를 평해놓은 부분이 있는데, 전라도 여인을 최고라고 전한다. 전라도 여인은 남자가 병신이 되더라도 떠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곁을 지켜서 보살피며 순정을 바친다는 것이다. 아마 서울 여자가 제일 먼저 도망간다고 했던가! 그런 이유로 20대 초반에는 꼭 전라도 여인에게 장가들겠다는 가상한 결심(?)도 했었다.


그런 잘못된 선입관이 편견을 만든다. 어렸을 때 들었던, 어른들의 잘못된 말 한마디가 편견이 되어 일생을 지배하기도 한다. 그런 류의 편견은 출신지방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떻다고 판단하게 만들기도 하고, 말 몇 마디만 들어보고 처음 보는 사람을 평가하기도 한다. 나무 몇 그루만 보고 숲을 판단하기도 하고, 건강하게 보이는 숲에서도 틀린 자신의 선입관을 억지로 고집하기 위해서 굳이 썪은 나무 한 두 그루를 찾아내는 수고를 한다.


즉, 자신이 보고싶은 것만 골라서 보고 듣고싶은 것만 골라 듣는 우(遇)를 쉽게 범하게 되어, 진실에는 결코 다가갈 수 없으며, 진실을 추구하는 다른 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국정원 청문회에서 어느 국회의원이 증인으로 나온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게 '대한민국 경찰이냐? 광주의 경찰이냐?' 라고 물었다고 한다. 진실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듣고싶은 것만 들으려는 극단의 망언이다.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정권을 차지하려는 위정자들이 수 십 년 전에 만들어놓은 덫에 걸려 생긴 선입관(편견)이 얼마나 국가와 민족을 해(害)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극명하지만 불행하기만 한 실례다. 권과장은 39살로 사법고시에 패스한 후, 경찰에 특채된 자랑스런 광주의 딸이자 한국의 훌륭한 여장부다.


글을 쓰고나서 달린 댓글을 보거나, 어떤 분들의 글을 보면 가끔 그런 편견에 극단적으로 치우친 분들을 보게 된다. 글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토픽을 보려하지 않고, 소재로 삼은 곁가지를 평하는 분도 있다. 글쓴이는 숲을 말하고 있는데, 굳이 나무나 풀 몇 포기를 언급하여 네거티브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다. 이런 분들이 쓰는 글에는 공통점이 있다. 내 친구 유태인이, 혹은 그리스인이나 폴란드인이 어떻게 말했다고 인용한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내가 하는 말이 한국인 전체를 대변할 수도 없으며 진실일 턱도 없다. 최소한 학자의 저술을 인용하던가, 아니면 신문이나 방송을 인용하여 반박을 한다면 납득이 되지만 말이다.


엊그제 골프를 치다가 어떤 구렛나루 백인에게 'Fucking Korean'이라는 말을 난생 처음 면전에서 들었는데, 사연은 이렇다. 3시에 티업을 했기에 16번째 홀에서는 7시가 넘었고, 저녁노을이 짙어지고 있었다. 세컨샷을 준비하고 있는데 옆에 볼이 떨어지며 굴러 다소 놀랐다. 야누스님과 나는 뒷팀에서 실수로 그런 줄 알았다. 그린 근처에서 어프로치를 하는데 또 다시 볼이 근처에 떨어졌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우리를 겨냥한 것이다. 화가 난 야누스님이 볼을 러프로 던져버리고 클럽하우스에 전화를 해서 컴플레인을 했다. 다음 홀은 숏홀이었다. 앞팀이 그린을 벗어나기 기다렸다가 플레이를 했고, 마지막 홀에서도 앞 팀이 시야에서 벗어나기 기다리는 중에 뒷팀이 왔다.


하얀물결님이 점잖게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늦게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앞팀 때문에 늦는 것이니 그런 식으로 푸쉬하지 말라고. 구렛나루가 우기기 시작했고 언성이 높아지며 그는 F 랭귀지를 사용했다. 우리가 코리안인줄 어떻게 알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코리안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메리칸들은 그런 식으로 플레이 하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에고 한심한 자식!


우리가 3번 홀에서 나무에 맞고 떨어진 볼을 찾느라고 잠시 지체한 일이 있었지만, 시간상으로는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많은 한국인 골퍼들이 내기를 한다. 다소 크게 내기를 하는 분들은 그린 위에서 퍼팅에 시간을 쓰며 신중을 기하기도 한다. 구렛나루가 그런 골퍼 뒤에서 짜증을 낸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날이 어두워 마지막 홀을 플레이하지 못할까봐 신경을 썼을 수도 있겠다. 그가 한국인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가져서 우리가 하는 말에 귀 기우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을 부인하며 자신의 편견에 집착하는 '어글리 아메리칸'에는 틀림없다.


제주 사람들이 외지인들을 '육지 것들'이라고 부르고, '서울 것들', '멍청도 것들', '경상도 것들' 혹은 '전라도 것들'이라고 부르는 한, 그들 자신도 '제주 것들'이나 '서울 것들'이 되는 수밖에 없다. 이런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는, 소위 '종북좌빨'이라거나 '보수꼴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왕따'시키며, 커뮤니티에서 배척해야 한다. 닫힌 마음을 가진 사람일수록 아는 것이 적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편견에 더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닫힌 마음으로 소통을 거부하기 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상대의 의견에 경청하며 누구의 의견이 미래지향적이며 진실에 가까운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후기>

1950년대 미국 정가를 휩쓸었던 '매카시즘'이 작금 21세기 한국에서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 세기에 소련의 붕괴로 송장이 되어버린지 오래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싸움을 하고 있는 나라는 아마도 전세계에서 한국 밖에 없지않나 생각됩니다. 이민을 떠나오기 전에는 생전 들어보지 못했던 단어인 '종북좌빨'이라는 말이 버젓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제 좁은 소견으로는 정권욕에 사로잡힌 더러운 정치인들이 내편, 네편을 가르기 위해 고안해낸 단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들에게는 민족의 분열보다는 눈앞의 정권이 더 중요할 테니까.


오랜만에 글을 올리는 분들의 수고를 생각해달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글의 본질보다는 글을 쓰느라고 사용한 단어를 가지고 문제를 삼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요?


카페에 올려진 글과 댓글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서 써본 글이었습니다.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민을 위해 찾는 분들에게  (0) 2013.11.17
삶과 죽음  (0) 2013.11.17
부패한 나라, 한국  (0) 2013.11.17
상처  (0) 2013.11.17
자기 성취  (0) 201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