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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상처

(2013년 6월 28일)

 

갑남을녀(甲男乙女)인 우리들은 모두 상처를 갖고 산다. 육체적 상처는 물리적 치료로 낫지만, 마음의 상처는 극복하기 쉽지 않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도 있고, 자라면서 형제나 친구 또는 선생으로부터 받은 상처도 있지만 자신에 의해 생긴 상처도 있다. 이런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고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다가 순간순간 불현듯 떠올라 마음을 괴롭히거나 아프게 하기도 한다.


어리석게 살아온 내게도 그런 마음의 상처가 수도 없이 많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수수깡으로 공작물을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방학숙제라고 거짓말을 하고 사서 가지고 놀았다. 개학 후에는 그 수수깡 공작물을 학교 가는 길에 남의 집 쓰레기 통에 버린 일부터, 궁내 나는 도시락의 반찬이 부끄러워 그냥 가져온 일, 부모님의 어려운 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속인 일 등등. 심지어는 후배 여학생이 소개해준 여학생을 학교 축제 때 파트너로 불러놓고, 내가 생각했던 생김이 아닌 것을 뒤늦게 깨닫고 적당한 핑계로 돌려보낸 일도 있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못났던 내 자신이 혐오스러워 쥐구멍을 찾고 싶을 정도다.


특별한 기억도 있다. 자초지종까지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길어지기에 다할 수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단학선원에서 단전호흡을 하기 시작한 것은 국선도를 하던 친구의 권유이었다.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고민을 토로하자 그 친구는 힐링의 수단으로 단전호흡을 권했다.


이민을 결심한 터라 4개월 밖에 수련할 수 없었지만, 반년치 강습비를 요구하는 원장에게 수강료를 지불하고 수련을 시작했다. 3개월째 되었을 때 2박 3일의 특별코스가 있었다. 내적치유, 즉, 잠재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상처를 꺼집어내어 치유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된다.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내 파트너는 60대 초반의 아주머니였다. 강의와 게임 등 일련의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되는 수련코스의 마지막 단계에, 가슴 속에 맺혀있는 한을 토로하는 시간에 그 아주머니는 달기똥 같은 눈물을 쏟아내며 펑펑 울어댔다.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서 겪은 시집살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킨 시어머니인양 내게 자신의 억울했던 심정을 털어내며 눈물 범벅이 된채 큰소리로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북한산 어느 호텔의 강당을 가득 매운 사람들의 흐느낌과 통곡의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로테스크 하기 그지없었지만, 수련에 참가한 모든 참가자들은 진지했다.


- 이 운동을 시작하고 난 후, 모든 것이 몰라보게 좋아졌어요. 변비가 심했고, 잠도 잘 자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다 좋아졌어요. 이 피부좀 봐요. 원래 내 피부가 거칠고 윤기도 없었는데 이렇게 젊은 사람 피부 처럼 고와졌잖아요. 지난 40년 동안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를 창피한 줄도 모르고 다 쏟아냈더니 머리 속이 다 개운하고 가슴이 너무 후련해요. 그리고 그 시어머님을 이제는 진심으로 용서하고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살 것 같다!


수련이 끝나고 아주머니와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대충 이런 뜻의 말을 전해들은 것으로 기억된다. 그 경험은 특별하고도 강렬해서 평생 단전호흡을 하고 살겠다고 했었으나 이민이라는 정신없는 생활 속에서 잊혀지고 말았지만, 훨씬 후에 성당의 ME(Marriage Encounter)라는 2박 3일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상당히 유사한 것을 느꼈었다. 불교의 참선이나 기독교의 회개라는 의식도 비슷한 성격일 것이고 짐작만 한다.


살아온 세월이 길수록 이런 마음의 상처는 깊고 클 것이다.


15년 가까운 이민생활에서 좋았던 일, 즐거웠던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힘들었던 일, 괴로웠던 일도 많았고, 그런 것들은 마음 속에 상처가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 딱지가 내려앉아 덮고 있어 아문듯 보이나, 언제든 계기만 생기면 되살아나 아픔을 느끼게 한다. 오랜만에 돌아온 뉴저지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낀다. 46번 도로변에 있는 Days Inn은 이민 초기에 차조차 없었을 때 묵었던 적이 있었고, 옛직장 부하들을 만나니 속수무책으로 레이오프 당했던 일과 보스에게 당했던 수모들이 아픔이 되어 되살아 난다.


심지어 잘 정돈된 잔디만 보아도, 잔디를 손질하는 론모어 머신 소리만 들어도 지난날 하프 에이커에 가까운 백야드를 손질하던 기억이 난다. 80번 하이웨이에서도, 턴파이크를 운전하면서도 주마등 처럼 스쳐가는 추억들이 미소짓게 하기도 하고 고통이 되기도 한다. 우리 이민자들에게는 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처가 있다. 당하지 않아도 될 수모들 영어가 짧아 당했던 일은 이민자라서 겪어야 했던 일이었다.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어정쩡한 스탠스도 이민자인 때문에 겪어야 하고, 오랜 친구들과의 이질감도 이민자들만 느끼는 감정이다.


'역이민'이란 제목으로 카페를 만든지 2년이 지났다. 이번에 뉴저지에서 몇 차례의 모임이 있었다. 성당에 다녔던 교우분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보는 분들이었지만, 지난 2년여 동안 글로 접한 탓인지 금방 친숙해졌고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로서는 한 일도 없이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에 송구한 마음이 들어, 향후 카페를 어떻게 운영하면 좋겠는지 의견을 물었지만 한국을 생각하는 이민자들에게 좋은 공간을 만들어서 고맙다는 말씀만 들었다.


"이민자들이기 때문에 겪었고 겪을 수 밖에 없는 아픔이 있습니다. 이 작은 공간이 그 분들의 아픔을 다소나마 치유할 수 있는 힐링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가까운 친구나 친지들에게 털어놓아도 이민자가 아니라면 공감할 수 없는 이민자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언제든 좋은 의견이 있으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모임을 끝맺었다.


<후기>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이들도 그들대로 많은 아픔이 있슴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부모로서 아이들게게 고통을 주었고, 아이들은 부모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헤르만 헷세가 데미안에서 말하는 '껍질이 깨지는 아픔'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 듯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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