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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친구 이야기 (1)

(2013년 6월 10일에 쓴 글)

 

- 운전을 안 한 지는 10년 되었고, 전혀 보이지 않기 시작한 건 5년 정도 되었어. 시야가 동전만 해져서 그렇지, 음식점 간판도 볼 수 있었고, 글자를 따라 시선을 움직이면 메뉴도 읽을 수 있었는데 언제부턴가는 그것마저도 보이지 않게 되더군. 그래서 이젠 도움이 없으면 아무 곳도 못 가.


언제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냐는 내 질문에 그는 썬그라스 너머의 시선을 내게 고정시킨 채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는 학창시절 같은 과에 다니며 같은 써클에서 활동했던 친구이기도 했지만, 1학년인가 2학년 때 유급을 하는 바람에 오래 같이 지내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명문고로 경기, 서울, 경복 고등학교가 있었는데, 그는 대학 동기 중 유일한 명문고 출신이기도 했다.


- 야, 내가 그놈의 대학에 10년 동안 적을 둔 놈 아니냐? 낙제에 군대에 휴학에 젠장! 10년씩 대학 다닌 놈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우리 학번에서는 딱 두 놈이다! 하하하


친구는 자신의 화려했던 전과(?)를 자랑이나 하듯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대기업 전산실에서 일하다 계열사인 보험회사 지점장이 되었고 2000년 대 초 명예퇴직 후 보험사 대리점을 경영했다.


- 2천 년도에 명예퇴직 하고 나니까, 어떻게들 알았는지 여기저기서 전화들이 오는 거야. 난 얼굴은커녕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고등학교 나 중학교 동창이라고 하면서. 퇴직금 냄새를 맡고 그걸 발라 먹겠다는 거지.


보험회사 사무실에서 만나 시작된 친구와의 대화는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계속 이어졌다.


사실 서울에 있는 동안 친구들을 만날 생각은 별로 없었다. 만나게 되면 딸 아이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하게 될 터이고, 그렇게 되면 부조금에 대한 부담을 친구들에게 주게 되는 어정쩡한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 속내를 알게 된 매제가 과묵하기만 한 평소의 모습과는 다르게 한마디 충고를 했다.


- 형님, 그래선 안 되지요. 나중에 친구분들이 서운하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 않겠어요?


마침 작년 해남 땅끝 마을 행사에서 만났던 분들 중에서 계속 이메일로 연락을 취하던 분이 있어 만날 계획이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아 할 일도 마땅히 없던 차였다. 대학친구에게 연락을 했더니, 바로 번개모임이 성사되었고 전화가 왔다.


- 야, 네가 왔다니까 내가 나가야 하는데 짜식들이 장소를 영등포로 하지 않고 사당동으로 했잖아! 네가 내 사무실에 들려 나좀 데려가라. N 그놈이 항상 다를 데리고 갔었는데 오늘은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니 부탁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친구의 사무실에 들려 친구와 함께 지하철로 약속장소로 가는 중이었다.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의 와이프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남편이 사무실에 죽치고 있느니 친구들을 만나 스트레스나 해소하고 오길 바라는 것 같았다. 친구는 오른손에는 장님용 지팡이를 짚고, 왼손은 내 오른편 팔장을 끼고 걸으며 다른 친구들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자식들과 와이프 등 살아가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 최근에 직원 하나가 그만 두었는데, 보충하지 않았어. 한 2년 전부터 너무 사업이 안 되서, 인건비라도 줄여보자는 건데, 그러다 보니 마누라가 고생이 많아. 내가 도와주는 것도 볼 수가 없으니 한계가 있잖아. 보험업도 이제는 모두 본사 직영점이나 온라인 영업 중심으로 바뀐 거야. 우리 같은 중소 규모의 보험 대리점은 점점 살아가기 힘들어. 몇 년 전만 해도 그런대로 괜찮았거든. 그런데 이명박이가 대통령이 되면서 서서히 목이 조여오는 게 느껴지더라. x팔, 청와대에 탄원서도 여러번 넣었어, 본사가 직접 영업하는 것을 제한해 달라고. 그러지 않으면 수많은 중소 대리점과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은 고사(枯死)할 수 밖에 없다고. 꿀먹은 벙어리드만.


- 그래도 아이들 다 키워놓아 다행이야. 돈 들어갈 데가 없으니까. 언젠가는 그만 두어야겠지만, 그만 두고 나면 할 일도 없으니까 그냥 하고 있는 거지. 이나마도 마누라 덕분에 하는 거지만. 내가 돕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 사람들 만나는 것도 마누라가 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에서 설겆이 정도 그리고 빨래 개는 일 정도야. 한심하지.


- 아이들은 직장 때문에 나가 살아. 아들은 직장이 오산이고 딸은 평택인데, 서울에서 출퇴근하기 힘드니까 아파트 하나 얻어서 같이 살아. 아들놈은 카이스트 나왔잖아. 니 쌍둥이 딸하고 동갑일 거야. 거기서 박사학위 받고 H기업 중앙연구소에 과장특채로 들어갔어. 연봉이 일억이 넘는데, 뭐. 딸 아이는 고대 법대 나와서 연봉 4천 정도 받는데, 나 닮아서 매사에 불만이 많아. ㅎㅎㅎ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우리는 약속장소인 4호선 이수역 13번 출구에 도착했다. 친구는 담배를 하나 빼어 물었다.


- x팔, 이놈의 담배는 아직도 못 끊고 있어. 와이프가 그렇게 끊으라고 하는데도 안 돼. 그나저나 이 개x끼는 왜 약속장소를 영등포로 하지 않고 여기로 해서 사람 고생시키는 거야. 마누라는 내가 갈 때까지 사무실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피곤해서 빨리 집에 가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새끼들이 지들 생각만 한다니까, 배려심이라고는 x도 없다니까!


그가 앓고 있는 병은 '망막색소 병성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어느 개그맨이 걸려 유명해진 병이다. 망막에 있는 시각신경이 서서히 죽어, 농구공 만하게 보이던 시야가 축구공, 배구공, 야구공, 골프공 사이즈로 줄어들다가 결국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고 한다. 50대에 그런 병에 걸려 장님이 되었으니 그 참담한 심정이야 당사자가 아니고서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이 친구야! 불평불만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게나. 그래도 자네는 착하고 현명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 행복한 생을 살아왔잖은가. 자식들도 속 썩이지 않고 명문대에 척척 알아서 들어갔고, 청년백수 어쩌고 하는 세상에서 다들 좋은 직장을 잡았으니 다른 친구들이 다 부러워하잖은가! 좋은 점만 생각하게나. 아마도 자네에게 보여지는 세상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걸 질투한 신이 자네에게서 시력을 앗아간 모양일세.


<후기>

일요일 밤 늦게 도착해서 사위 될 녀석의 인사를 간단하게 받았습니다. 어제는 비가 몹시 내렸는데 딸 아이가 다른 한국 대기업의 현지회사에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제가 운전을 하고 데려다 주었지요. 운전을 하면서 인터뷰 요령을 가르쳐주었습니다. ㅎㅎ


오늘 새벽까지 내리던 비가 그쳐, 아침에는 오랜만에 뉴저지의 청명한 날씨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와는 다른 모습이었으며 더 나무가 많고 녹색이 짙다고 느꼈습니다. 일찍 퇴근한 아들 녀석이 아빠를 위해 맥주 사러간다고 하길래 따라 나서서 오랜만에 리지필드 한아름에도 들려보았는데, 모든 것이 너무 낯이 익어 4년의 시간이 무색함을 느꼈습니다.


그날 저녁 급조된 번개모임에는 저를 포함 6명이 참석했습니다. 저와 친구는 호프집에서 1차로 끝냈지만, 나머지 친구들은 늦게까지 어울렸던 모양입니다. 


친구에게 했던 마지막 말은 친구보다는 저 스스로에게 한 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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