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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입은 닫고, 지갑은 열고

(2013년 6월 3일에 쓴 글)

 

- 택시를 운전하면서 제일 얄미운 사람들이 누군지 아세요? 네 사람이 타고가면서 지들끼리 이야기를 합니다. 몇 타를 줄였네, 두 타를 더 줄일 수 있었네 하고 떠드는 것을 들으면, 무엇을 한 사람들인지 알게 되죠. 그런 사람들이 내릴 때는, ₩2,800 원이 나오면 삼천 원을 내고 동전 두 개를 꼭 챙겨가요.

 

택시 기사의 말에 과장이 섞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40대 중반이나 후반으로 보이는 기사는 대화 도중 '그래요?', '거참' 하고 후렴구를 넣어주니 20분 정도의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 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어떻고, 나는 어떻게 살았고 하는 이야기가 무슨 소용입니까? 다 지나간 이야기고, 지금 처럼 변한 세상에는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그저 나이들면 입은 닫아 걸고, 지갑은 열고 다녀야 대우를 받는단 말씀입니다.

 

- 철부지 초등학생 꼬맹이들도 몇 푼씩 쥐어줘야 할아버지, 할머니 하고 따르지, 그렇지 않으면 퀘퀘한 냄새 난다고 근처에도 오지 않는 세상이란 말입니다. 모든 것이 옛날 같지 않다는 말이지요. 세상은 크게 변했는데, 어른이랍시고 옛날에는 어떻고 하는 잔소리는 하면서 지갑은 걸어 잠그고 있으면 손주들은 물론이고 누가 좋아하겠어요!

 

경험에서 우러난 지식을 열심히 전도(?)하는 택시기사의 뒤통수를 쳐다보며, '그렇지, 맞는 말이지' 하며 속으로 맞장구를 쳤다.

 

제주에서 김포로 오는 기내에서, 살풋 잠든 아이의 옆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택시기사가 가르쳐준 교훈이 생각났다. 아이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대했던 일들이 영상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 어떤 경우라도 이를 닦지 않고는 자지 못하게 했고, TV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했었다. 무의식 중에라도 내가 정한 원칙을 어기면 혼을 내곤 했었다. 혼을 낼 때는 대충 하지 않았다. 최소한 기억에 며칠은 남아야 레슨의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이민 초창기에는 내가 힘든 것만 생각했지, 아이들이 얼마나 힘든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었다. 한국의 입시지옥을 떠나 좋은 환경에 데려다 놓았으니, 아이들은 스스로 깨닫고 내게 감사하며 스스로 공부해서 아이비 리그에 진학할 줄 착각하고 있었다. 나야말로 옛날 6~70년대 생각만 하고, 현재의 변한 세상을 인식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그 자체였다.

 

아이들은 언제부턴가 내게 입을 닫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수(數)의 논리를 가르치고, 영어 문법을 설명할 때도, 아이들은 질문 하나 없이 듣기만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내게서 멀어져갔다.

 

언제부턴가, 아이들과 같이 있게 되면 나는 입을 닫았고, 그러자 아이들은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오직, '잘 지내니?', '아픈 데는 없니?'하는 정도였다. 아이들이 말할 때는 잠자코 듣다가, '잘 했구나!', '그렇구나', '그거, 재미있다.' 하고 맞장구만 쳐주었다.

 

'아빠, 아빠 변한 거 알아요? 옛날에 내가 알던 아빠 같지 않아요!' 작년에 왔던 아이가 한 말이다. (제 글 '딸과의 대화' 참조, 4/6/2012. 자식농사)

 

그래, 그게 인생이란다. 죽는 순간까지 깨우치고 반성하고 변하고자 노력하는 게 인생이란다. 교만하고 오만한 자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는 것도 마음이 가난해지고 겸손해지면 보인단다. 너희들도 아빠 같은 바보 부모가 되지 않으려거든, 항상 겸손해라! 그리고 생활에서 사치와 낭비를 멀리하듯, 마음에서는 교만과 오만을 말끔이 걷어내야 한다!

 

<후기>

아이가 물었습니다.

 

- 아빠, 돈이 많으면 행복해? 어떻게 하면 행복해져?

 

글쎄다, 돈이 많아서 행복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너는 몸이 행복하길 원하니, 아니면 마음이 행복하기 원하니? 마음이 행복하기 원한다면, 돈이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을 것 같다. 돈이 몸을 편하게 해줄 수는 있겠지만, 마음까지 편하게 해주지는 못할 거야. 돈이 있으면 편리하기는 해.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돈이 주는 편리함을 잘 알기 때문에, 돈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아. 집착은 욕심을 생기게 하고, 옥심이 생기면 대부분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져.

 

얼마 전에, 내가 아는 어떤 분이 돌아가셨어. 70살인데 암에 걸렸거든. 장례를 치루고 화장을 했지. 화장을 하면 납골당에 유골을 두는데, 그 자식들은 나중에 엄마가 죽으면 같이 합장하려고 부부용을 구입했는데, 그 엄마가 반대했다는 거야. 내가 왜 죽어서까지 영감탱이와 같이 지내느냐는 거지. 살아서 같이 있었던 것도 지긋지긋하다는 거야.

 

제주에 와서 그 분들을 알게 되었는데, 참 좋아 보였던 부부였어. 같이 노래방도 갔었고, 고스톱도 치고 놀았던 분들이야.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분들이었는데, 속으로는 그렇게 서로 상처를 주고 살았던 거지. 많은 사람들이 보기와는 다르게 불행하게 살고 있어. 가장 가까워야 할 부부가 그렇다면 결코 행복한 삶은 아니지 않겠어.

 

행복은 부부와 가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야. 인생은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게임이야. 단거리 경주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장거리에서는 문제가 커. 예를 들어 운동화 속에 작은 모래는 단거리에서는 문제가 안 되지만, 장거리에서는 그걸 제거하지 않으면 게임을 할 수가 없어. 즉 부부 사이에서는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사소한 것들이 더 중요한 거야.

 

너는 결혼하면, 상대방을 어떻게 기쁘게 해줄 건지만 생각해. 그 사람을 네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지마. 그사람이 좋아하면 너도 같이 즐거워 해. 그러면 돼.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어. 네가 원하는 대로 네 아이들이나 네 남편을 만들려고만 하지마, 아빠가 너희들에게 그랬던 것 처럼. 네가 네 남편이 원하는 아내가 되고, 네 아이들이 원하는 엄마가 되려고만 하면 돼.

 

그리고 집에서 공항에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가 말했던 거 기억하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주둥이는 닫고 지갑은 열어!'

그게 정답이야!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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