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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이야기

이상증세

(2012년 6월 12일)

 

나이가 들면서 겪어보지 못하던 현상들이 생기고, 어떤 것들은 추접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콧구멍에서 털이 삐져 나오기도 하는데 이건 그래도 좀 낫다. 거울을 보면 보이니까 뽑거나 잘라낼 수가 있으니 말이다. 귓구멍에서 나오는 털은 발견하기도 쉽지 않고, 스스로 제거하기도 힘들지만, 모르고 지나치다간 추접해 보이기 짝이 없다.


눈꺼풀이 저절로 떨리기도 한다.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떨리는 눈꺼풀이 신경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다행이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하여 구글같은 검색창에 '눈꺼풀이 떨린다.'라고 치고 검색하면 전문가를 찾지 않고도 즉석에서 원인을 알아볼 수도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다.


한 두 달쯤 전부터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증상이 나타났다. 남들에게 이런 이야기 들었다면 믿지도 않겠지만, 내 몸에 온 증상이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몸이 저린데, 꼭 절반만 저린 것이다. 몸을 정확히 가운데로 구분하여 왼쪽만 전기에 감전된 듯 찌릿찌릿한 증상이다. 입술도 왼쪽 부분만 저리고, 볼도 왼쪽만 감각이 이상하다.


처음 증세가 나타났을 때는 한 시간 정도 그러다가 말았다. '거 참, 이상한 일도 있다.'라고 생각하고 지나갔는데, 똑 같은 증세가 며칠 후에 또 나타났을 때는 신경이 쓰였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수많은 의견이 있었지만, 대부분 '뇌졸증', '뇌경색' 같은 단어와 겹치며, 치명적인 질병의 전조증상일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건 아닐 것이다. 그동안 살면서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음식도 신경을 쓰며 살았으니 그건 아닐 거다. 지금까지 혈압이나 콜레스테롤, 혈당 등이 정상 아닌 적도 없었으니까. 아마 운전을 한 탓일 거다. 수동차량이라 항상 클러치를 밟고 있어야 할 정도로 왼발을 많이 쓰니까 그래서 그렇겠지... 왼발 발바닥이 아플 정도니까.


세번째로 그 증상이 왔을 때는 좀 심각하게 왔다. 모처럼 집사람과 절물이라는 곳을 걸었는데, 집을 나설 때부터 저리던 왼쪽이 점점 심해졌다. 왼발을 디딜 때는 허공을 딛는 것처럼 감각이 무뎠다. 보통 5~6분 주기로 한두 시간 그러다 말기 때문에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서너 시간이 지나도 계속 되었고, 심지어는 그 다음날까지 증세가 지속되었다. 토요일이기 때문에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기에 병원을 찾기에도 뭐했다.


모를 때는 물어보라고 했던가! 혹 이런 증세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을까봐 전화를 했더니, 내 말을 들은 형제나 지인들은 당장 응급실을 찾아가라고 난리를 친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된다나, 어쩐다나. 허허허.


월요일 아침, 병원을 찾았더니 신경외과 의사가 하는 이야기다.


- 운전 때문에 그렇다면, 엉덩이나 다리 부분만 저리지 팔이나 얼굴까지 저리지는 않습니다. 물론 운전 때문에 그렇다면 그거야 좋은 현상이구요. 젊으신 분이라면 약 처방을 일단 해보겠지만, 나이가 있으니까 MRI를 찍어 보지요. 다른 검사를 다시 할 필요가 없게, 뇌와 혈관 두 가지를 찍어 보겠습니다.


인터넷에서 본 내용과 비슷한 말을 했다. 단지 다른 것은, 원인이 수백 가지로 MRI를 찍더라도 확실한 원인을 찾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의사는 하지 않았을 뿐이다.


카드로 MRI 검사비74만원을 지불하고 오전에 시간이 된다는 금요일에 예약하고 나왔으나, 좀 억울했다. 내 몸을 누가 나보다 더 안단 말인가! 틀림없이 뇌나 신경에 이상이 있을 것 같지도, 원인이 나올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눈꺼풀이 떨리는 현상이 있다가 사라진 것 처럼, 이 현상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사라졌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월요일이 되어 말짱하니 마음이 변했다. 돈 낸 것이야 나중에 돌려받으면 될 것이니, 1 주일만 더 기다려 보기로 하고 검사일을 연기했다. 그리고 토요일에 집사람과 오일장에 갔는데, 같은 증상이 약하지만 다시 찾아왔다. 또 수요일인 6월 6일 사려니 숲길을 걷는 중에도 다시 증상이 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강렬하게.


결국 지난 금요일 병원을 찾아가 난생 처음 MRI 촬영을 했다. TV에서 보았던 대로 관 같은 통에 들어가 기분 나쁜 기계음을 들어가며 30분을 넘게 있었고, 오후에 다시 만난 의사가 모니터에 나라고는 상상이 안 가는 사진들을 띄우며 설명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예상과 별로 틀리지 않았다.


- 사진 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다행입니다. 최소 뇌신경이나 뇌혈관 때문에 당분간은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곳 혈관이 약간 좁아진 곳은 있지만, 이곳은 시력과 관련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현재 보는 데는 문제가 없으시니까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구요. 다만, 혹시 모르니까 아스피린을 처방하겠습니다.


○ 의료보험은 안 됩니까? 의사 선생님에게 이야기 해보라던데요.


- 막힌 곳이 발견되면 의료보험이 적용됩니다. 그러나 다행이 괜찮으니까요. 이런 것은 의료보험이 안 되는 게 좋은 겁니다.


 아스피린이 무슨 역할을 하지요?


- 100mg 아스피린은 혈액이 빨리 응고하지 못하게 합니다. 즉 상처가 생기면 딱지가 생기는 것이 늦어져 피가 오래 나옵니다. 혈관 좁아진 곳에 효과가 있습니다.


<후기>

한마음 병원이라는 종합병원이 집에서 5분 거리에 있습니다. 2마일도 안 되니까 아주 가깝지요. 한국의 시스템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게 거의 기다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약을 하고 가도 2~30분 기다리는 것은 예사인 미국과는 아주 다릅니다. 성질 급한 한국사람들에게는 정말 어울립니다.


아스피린도 종류가 많은지 아무 거나 먹으면 안 되는 모양입니다. 미국에서 가져온 1000 알 짜리 아스피린이 있는데, 그건 325mg 짜리더군요. 아마 해열, 진통에 먹는 것 같았습니다.


하긴, '괜찮습니다.' 이 한 마디 듣기 위해서, 위 내시경이나 대장 내시경도 받는 거겠지요. 굶는 고통이나 설사약을 먹고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는 고통을 참아가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건, CT촬영이나 MRI 같은 것은 찍어서 문제가 없으면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있기를 바라면서 찍을 수도 없고, ㅎㅎㅎ.


미국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집니다. 교통사고로 피가 철철 나고 있는데도, 보험회사에서 허가가 나지 않으면 CT나 MRI는 찍어주지 않으니까요. 붕대로 싸매고 보험회사에서 승인번호 받을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교통사고 환자가 들어오면 무조건 - 상처가 있든 없든 - CT, MRI 다 찍어댄답니다. 과잉진료지요.


이해되는 일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돈과 관계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돈과 연결시키면 이해가 됩니다. 사람 생명도 양심도 돈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합니다.


- 제가 살고 있는 빌라입니다. 저는 뒤에 보이는 동에 살고 있습니다.


- 전에는 제주상업고등학교 이었답니다. 지금은 상고나 공고가 다 없어졌으니, 제주 중앙고등학교가 되었습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습니다.


- 집 뒤에 있는 삼광사라는 절입니다. 지난 사월초파일 석가 탄신일에는 주위에 차들이 꽉 차 교통정리까지 할 정도이었습니다.


- 집 부근의 전경입니다.


- 지난 달 말, 부분일식이 있다고 해서 휴대폰으로 찍었습니다. 초생달 모양의 해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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