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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시사 프로그램을 보고 느낀다

(2012년 1월 4일)

 

연말연시 중에 시사프로그램에서 전하는 뉴스들은 우울한 것들 뿐이다.


중학생의 자살


이제는 중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까지 자살하는 나라가 되었다. 중학생이 벌이는 폭력이 도를 지나쳐서 그 피해자의 아이들이 연이어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담뱃불로 지지고, 물고문과 성추행을 하는 등 그 폭력수위가 아이들의 장난 정도로 치부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저보다 약한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왕따를 하고 떼를 지어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때, 주변 손님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떠들거나 장난치는 어린애들을 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음식점 통로를 놀이터 삼아 장난을 치고 떠들어도 내버려 두는 부모들이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나무라면 아이들이 장난 좀 친 걸 가지고 뭘 그러냐는 식으로 대꾸를 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자기 자신 밖에 모르는 인간으로 자라게 되고 약한 사람들을 배려하기는 커녕 자신의 놀이감으로 생각하여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지난 해에는 지하철 막말녀 막말남이 인터넷에 회자되었다. 20대의 젊은 아이들이 만원 지하철에서 80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반말로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하는 사건들이 벌어진 것이다. 어떤 짓을 해도 꾸지람은 커녕 '하지말라'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저지른 망나니 짓이다. 그 아이들만 탓할 게 아니라, 눈감아줌으로써 그렇게 망나니를 만든 우리들 모두가 공범이다.


아이들의 인권이 강화되면서,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체벌을 할 수 없게 되고, 학교는 학교대로 아이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되자 방임으로 일관한다. 학교장은 해결은 커녕, 사고를 감추기에 급급하고 얼버무리고 넘어가기만 바란다. 그래서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정년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되고, 그런 시스템에서 아이들은 목숨을 끊는다. 열 너댓살의 중학생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회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6~70년대에는 정말 무식한 선생들도 많았다. 별 잘못이 없는데도 몽둥이와 주먹을 휘두르는 폭력교사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때문에 자살하는 아이들이 있었다는 기억은 없다. 교사의 폭력은 줄었지만, 학생들끼리의 폭력은 더 늘었고 그 피해는 더 심각해졌다. 한 쪽을 강제로 틀어 막으면 다른 한 쪽이 터지는 게 세상 이치다.



우리는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던 컴퓨터, 휴대폰을 갖고 배고픈 게 무언지도 모르고 부족한 것이 없이 누리면서 자라는 요즘 아이들이, 아침마다 교통비만 받아갖고 나와 주머니 속에는 언제나 버스표 두 장이 다였던 우리 어렸을 때 보다 더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빈익빈 부익부


사회 양극화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닐 뿐만 아니라,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지난날의 그것과 그 차원을 달리한다.

미국에서는 1929년 대공황 직전에 1%의 부자가 23%의 부를 독차지했고, 경제공황을 거치면서 10% 이내로 줄었다고 한다. 대공황 직후 내리 4차례 연임에 성공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금융규제와 복지정책 확대에 힘입은 바다.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 이후 금융규제를 대폭 완화함으로써, 양극화가 심화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다시 1%가 23%에 육박하는 부를 독점하게 되었다.


1929년 대공황의 뒤에는 주식에 대한 과도한 투자(주식만 갖고 있으면 4배까지 주식매입자금을 은행에서 대출해 주었슴)와 이를 방관한 워렌 하딩 대통령이 있었고, 2008년 경제위기 뒤에는 갚을 능력도 없는 저신용자에게 고리의 주택융자를 해준 탐욕의 월스트릿과 저금리를 유지함으로써 이를 조장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있었다. (이 경우 금융회사는 고율의 이자를 노력없이 챙길 수는 있지만, 그 담보물인 주식이나 주택이 하락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극히 위험한 돈 장난이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세계 최강의 국가이고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로 이를 극복할 힘이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한국도 미국을 열심히 따라가고 있다. 한국의 4대 재벌이 국가경제에 차지하는 비율이 건국후 처음으로 2010년 50%를 넘었다. (KBS 시사기획 창 2012년 1월 3일자 보도)


친기업 성향의 MB가 대통령이 된 후, 성장 위주의 정책과 저금리, 고환율 정책으로 서민들을 쥐어짠 덕분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친미주의자인 그는 부시가 추진한 부자 감세정책도 그대로 따라 하여 부자들을 더욱 부자로 만들었지만, 부자들은 감세정책의 이유가 된 논리 대로 그 돈을 일자리 창출에 투자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MB는 '대기업 출자제한 폐지'로 재벌들에게 날개를 달아줌으로써 감세로 벌어들인 돈을 고유업종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자영업을 하는 서민들의 주력업종인 유통업(도소매업)과 요식업에 진출하여 동네 골목에서 생계를 유지하던 서민들을 더욱 옥죄게 된다.


지난달 망년회에서 이런 양극화는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신문은 전한다. 대기업 계열회사에서 주로 망년회를 하는 강남의 호텔과 같은 고급 음식점은 몇 십만원 대의 디쉬에도 성황을 이루었고, 중소기업이 많이 들어있는 공단 주변의 서민 음식점은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했다는 거다. 몇 달치의 월급을 보너스로 받은 대기업 직원들 처럼은 고사하고 몇 푼의 보너스는 커녕 월급을 제때 주기에도 바쁜 중소기업자들에게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이니 역대 최대 무역수지 흑자니 하는 말은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을 것이다. 대기업은 흥청대고 중소기업은 폐업하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무역규모가 사상최초로 1조 달러를 넘어섰다고 정부는 홍보했다.


통계청의 2011년 사회조사 결과,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층민에 해당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45.3%에 달했다. 전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노트북, 스마트 폰과 같은 첨단기기와 자가용을 갖고 사용하고 있어도 스스로 하층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는 반증이다.


뒤늦게나마 잘못을 깨달은 MB는 '동반성장위원회'라는 것을 만들고 서울대 총장과 총리를 지낸 정운찬씨를 위원장으로 앉혔다. 그리고 대기업의 과도한 이익을 중소기업과 나누어야 한다며 '이익공유제'를 들먹였으나, 작년 3월 삼성의 이건희씨는 이렇게 기자들에게 이야기하며 정부의 뒤늣은 대책을 조롱한다.


- '이익공유제'라는 게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를 모르겠다는 말씀입니다.


중소기업에서 개발한 '돈 되는 기술'은 모두 힘으로 뺏어가는 자들이 하는 말이다.

한국에서 청와대는 최고 영향력 있는 기관이 더 이상 아니다. 바로 삼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거다. 월스트릿이 지원하면 대통령이 되는 미국처럼, 삼성이 지지하면 대통령이 되는 한국도 머지않아 보인다.


몰락하는 자영업자


한국의 금융부실이 도를 넘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자영업자가 있다.

금융권 통계에 의하면 자영업자들에 대한 대출이 160조원을 넘어섰고, 자영업자들이 100원을 벌면 21원을 대출금 이자상환에 지불해야 하는데 연체율도 심각한 상황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금도 하루에 다섯 곳이 새로 생기고 네 곳이 폐업을 하는 비율로 생긴다. 자영업자 열명 중 한 명은 폐업을 진행하고 있고, 세 명은 조만간 폐업하기 위해 계획하고 있다. 지금 영업중인 곳도 대부분 문 닫으면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버티고 있다고 하니 조만간 이로 인한 금융부실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대부분 나이가 많은 자영업자들이 취직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하고 지낼 수도 없으니 마지못해 한다고 하니 그 심각성이 크다. 또 금년에는 총선도 있고 대선도 있으니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그들로는 무시할 수가 없다.


이마트나 롯데마트가 새로 들어서면 근처의 동네슈퍼를 비롯한 골목상권은 장사가 될 수 없다. 다 문을 닫거나 업종을 바꿔야 한다. 그들은 현대식 건물에서 최신의 화려한 조명과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로 무장하고 통닭, 족발, 피자, 생선회, 두부, 만두 같은 서민들 생계상품을 만들어 판다. 넓은 주차장과 편리한 쇼핑카트도 준비되어 있다. '통큰 치킨'을 TV와 신문에 광고도 하고 동네가게 보다 양은 두 배 많고, 값은 반이라고 떠든다. 동네 통닭짐은 3~40마리 팔던 하루 매상이 10마리로 줄고, 롯데마트에는 값싼 치킨을 사려고 수백 명의 손님들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선다.


골목상권에서 생기는 이윤은 그 지역에서 사용되어 선순환이 일어나지만, 재벌이 만든 대형마트들이 벌어들인 돈은 최소한만 남기고 서울로 올라간다. 그 지역의 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공식적인 은퇴를 시작하는 금년에는 자영업자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 전망은 극히 어둡다고 한다. 일은 더 하고 싶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영업에 몰리고 있다. 신용불량자가 많은 자영업자는 사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2010년 전체 자살자의 6.7%에 해당하는 993명의 자영업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 통계청의 수치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자영업자의 환경이 2008년 이후 급속히 나빠졌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불황탓도 있겠지만, MB의 정책도 한 몫 거들었음에 틀림없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에서 가장 빚이 많은 연령층은 경제활동의 주축인 3~40 대고, 직업군은 주부와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가장 고통받는 경제상황인 치솟는 물가로 인한 결과다. 리터당 2천원이 넘나들고 있는 사상 최고 기름값은 고환율정책 덕분이지만, 그로인해 고통받는 서민을 위한 정책을 정부는 도외시하고 있다.


무조건 한 울타리에 집어넣고 무한경쟁을 시켜 적자생존을 유도하는 것이 자본주의요, 시장경제원칙은 아닐 것이다. 헤비급과 페더급 권투선수를 링위에 올려 같이 싸우게 하는 것은 공정한 룰도 아닐뿐더러 관람하는 사람도 재미가 없다. 권투에는 권투의 룰이 있어 공정하고 재미있는 것처럼, 정부는 시장의 룰을 만들고 슈퍼헤비급 선수가 플라이급 선수와 경기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을 지키는데 솔선하여 99%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짜 정부가 할 일이다.


미국이 부시를 대통령으로 뽑아 경제가 어려워졌듯이, 한국도 비슷한 상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후기>

MBC PD수첩에서 신년특집으로 '서민경제진단'을 방영하고 있습니다. 어제 1월 3일 방영한 '자영업, 내일은 없다' 편을 보고 이 글이 쓰고 싶어졌습니다. 경제와 정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던 제가 요즘 이것 저것 책을 보며 공부하고 있는데, 알면 알수록 재미가 새록새록하고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생각들이 많이 바뀌더군요.


최근에는 미국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미국이 참 대단한 나라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때 제국주의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도 했지만 - 아직도 제국주의의 냄새가 짙게 남아 있지만 - 민주주의를 꽃 피우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훌륭한 시도도 있었던 나라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이민을 갔던 무모함이 생각나 고소를 금치 못하기도 합니다. 이따금씩 출장가서 본 미국이 다인 줄 알았으니 정말 무모했던 거지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요? ㅎㅎㅎ


혹시 한국에 돌아오시더라도 사업같은 걸 하실 생각은 마시기 바랍니다. 굳이 무언가 하실 생각이 있다면 농사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냥 TV를 보면서 노파심이 들어 주제넘은 글을 써보았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는 분이 있다면 쓸데없이 시간을 들여 주제넘은 짓을 한다고 생각하시고 너그러이 지나가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