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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우리에게 북한이라는 존재는?

어제의 일이다. 국정조사를 중계하는 국회방송을 찾느라 우연히 돌린 채널에서 축구를 중계하고 있었다.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 결승(FIFA U-20 Women's World Cup Papua New Guinea 2016)이었는데, 전반 20분 즈음에 북한은 프랑스에게 1대 0으로 지고 있었다. 프로야구 시즌이 끝나기도 했지만, 워낙 메가톤급 뉴스가 많아 스포츠에 관심이 사라진 탓에 언제 한 경기인지도 몰랐다.


원래의 목적을 잊은 채 채널을 고정시켰고, 어느새 북한을 응원하며 몰입하고 있었다. 나뿐이 아니었다. 중계를 하는 해설자도 아나운서도 북한 편이었다. 쌍꺼풀도 없이 광대뼈가 불거진 채 가무잡잡한 얼굴에서 20세 한창나이의 여성다움이나 발랄함은 찾아볼 수 없는 북한 선수들. 게다가 키까지 작아서 화려한 용모의 프랑스 선수에 비해 더욱 초라해 보였다. 반칙으로 쓰러진 선수의 손톱에도 그 나이의 흔한 매니큐어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난 토요일 파푸아 뉴기니에서 벌어진 경기는 통쾌한 역전으로 북한이 우승했다. 정말 재밌는 경기였다. 전반을 1대 1 동점으로 마친 북한은 후반 초반 한 골을 더 넣어 2대 1로 뒤집은 뒤에도 계속 공세를 이어갔고 경기 종반에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더 추가했다. 중동의 비굴한 침대축구도 없었고, 골을 넣은 후 수비에서 한국 팀처럼 허둥대지도 않았으며, 상대 진영에서의 압박과 공격은 날카롭고 매서웠다. 최우수선수(Player of the match)로는 동점골을 어시스트하고 역전골을 기록한 156센티에 불과한 미드필더 김평화 선수가 뽑혔다.


경기를 보는 내내 애잔한 느낌이었다. 반칙을 당해 넘어지고도 곧바로 일어나 뛰었고 공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며, 승리에 대한 집념도 악착같았다. 경기가 끝나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북한 선수들과 패배의 아픔을 곱씹는 프랑스 선수들을 보고도 쉽게 채널을 바꿀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북한이란 어떤 의미일까?로 시작한 의문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북한은 어떤 존재이기에 이토록 마음이 애잔해질까? 그들의 승리에 왜 나와 중계진은 기뻐할까? 평상시 왜 우리는 북한을 그토록 증오할까?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국가의 하나인 북한의 공식 명칭은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DPRK,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며,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에 속하는 대한민국은 ‘Republic of Korea(ROK)’다. 전 세계 200개가 넘는 국가 중에서 ‘Korea’라는 명칭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동족이 사는 국가로서 국경을 마주하고 있지만, 한국인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는 거의 유일한 국가다.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우리는 학교에서 북한을 국가가 아닌 '괴뢰집단'이라고 배웠다. 교과서에도 그들의 지도자 김일성을 도적떼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괴수(魁帥)로 표현했으며, 그들의 군대를 괴뢰군(傀儡軍)이라고 부르며 괴수의 명령에 따라 6·25 사변을 일으킨 꼭두각시로, 피도 눈물도 없이 잔혹하기 짝이 없는 존재로 묘사했다. 해마다 6월이면 웅변대회와 글짓기 대회를 열어 반공과 승공을 넘어 멸공을 외치게 했고, 포스터와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는 어린 학생들에게 붉은색으로 그려진 빨갱이들을 때려잡는 용감한 잔인성을 독려했다.


그렇게 학습되고 세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선수들의 우승이 불쾌한 느낌은커녕 뿌듯한 가슴을 넘어 뭉클해진다. 무엇 때문일까? 가끔 TV에서 북한군을 볼 때가 있다. 160센티도 안 되는 북한군의 초라한 모습과 겁먹은 듯 찌푸린 표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호전성이 아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음식점에서 그들에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배불리 사 먹이고 싶다는 애틋함이었다. 축구에서 우승한 선수들도 그랬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을 가슴에 품고 정말 잘했다는 따뜻한 말을 건네며 등을 토닥여 주고 싶었다. 그들이 아무리 못생기고 초라해 보여도, 할 수만 있다면, 상대편 프랑스 선수들에게 그리고 프랑스를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관중들에게 이들이 우리와 같은 동포라고 자랑하고 싶었다.


'와아!'하는 함성과 함께, '그러면 그렇지, 제깟 것들이 별 수 있어!' 하는 말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관광버스 전면에 달린 TV에서는 북한에서 쏘아 올린 위성 '은하 3호'가 실패했다는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2012년 4월 13일 해남 미국타운 답사차 방문한 교민들이 탄 버스에서의 일이었다. 빈 좌석이 보이지 않는 45인승 버스의 승객은 대부분 6~70대로, 차내에 가득한 환희와 함께 증오의 냄새가 피어올랐다. 다른 사람의 실패가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된다는 잔인한 현실을 깨닫는 순간, 국민학생 시절 그렸던 포스터가 떠올랐다. 기억 속에 빨간색 크레용을 잔뜩 칠한 도화지에 써넣은 문구였다. "무찌르자, 공산당! 박살내자, 괴뢰군!"


'평안남도 대동군 율리면 추빈리 17번지' 옛날 호적등본의 원적(原籍) 란에 기재된 주소다. 선친이 고향에 부모님과 처자식을 두고 1·4 후퇴 때 단신 월남한 것은 당신의 나이 20대 후반이었다. 북한 당국에 의해 중화군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평양에 편입된 곳이다. 평양에서 대동강을 건너 개성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즉, 서울의 강남인 셈이다. 20마지기의 농사를 짓던 중농이었다고 하니 남북으로 갈리지 않았다면, 혹 부동산 재벌이 되어있지는 않았을까? 하하하


아, 북한이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영원한 증오의 대상일까, 아니면 가슴에 품어야 할 불쌍한 동족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상반된 이 두 가지 복합된 감정을 함께 지니고 살아야 하는 모순이 민족의 잔혹한 운명인가? 시지프스가 산꼭대기까지 굴려야 하는 숙명의 바위처럼! 신화 속의 시지프스도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고 하지 않던가? 신의 입장에서는 교활했지만.


▼ 우승컵을 들고 즐거워하는 북한 선수들. (출처: FIFA 홈페이지)


<골 모음 유튜브 동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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