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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續) 나는 1등이 싫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스포츠인 프로야구가 지난 주 전반기 일정을 끝내고 이번 주부터 후반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총 10개의 팀이 단일 리그로 7개월 동안 팀당 144게임을 소화하는 국내 시즌이, 36개 팀이 양대 리그로 나뉘어 벌어지는 미국의 메이저리그에 수준이나 규모면에서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인 특유의 열정이 담긴 응원과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경기 내용이, 재미에 있어서만큼은 메이저리그 부럽지 않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이래 줄곧 응원해오던 'MBC 청룡'이 오늘의 'LG 트윈스'다. 이팀은 금년에도 꼴찌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선수들 면면을 보면 절대로 허약한 팀이 아닌데도 나를 비롯한 팬들의 응원과 기대에 제대로 부응한 적이 없다. 무엇이 원인일까? (개인적인 소견으로) 나는 그 원인을 코치 스태프를 포함한 프런트 진에서 찾는다.


금년 시리즈 1, 2, 3위인 상위팀들의 감독은 평범한 선수시절을 보낸 사람인데 반해, 4위 SK, 6위 기아, 8위 LG, 9위 삼성은 스타 플레이어 출신인 감독이다. 선수 시절 엘리트들이 지도자 역할까지 뛰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3위팀 넥센의 염경엽 감독이 인상적이다. 그는 선수시절 통산 1할 대의 타율을 기록했던 무명의 내야수 출신이었으나,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전임감독 김시진을 이어받아 팀을 맡은 첫해에 만년 하위였던 넥센을 포스트 시즌에 진출시켰다.


강정호와 박병호를 메이저리그로 보내고, 자유계약 선수로 풀린 주전 마무리 투수 손승락과 거포 유한준까지 떠나가, 모든 전문가들이 최약체로 평가했던 팀을, 금년에도 3위권에 안정적으로 유지시키고 있다. 강정호와 박병호를 대신해 금년에 활약하는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전혀 생소한 젊은 친구들이 많다. 잡석들 가운데서 원석을 찾아내 갈고 다듬어 보석으로 키우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로, 바로 지도자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대표적인 선수가 박병호다. LG는 중요한 타석마다 삼진을 당하는 그를 넥센으로 방출했으나 염 감독을 만나자 크게 달라져서,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가 되었으며 5년간 최대 1,800만 불을 받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대체요원 선수로 가끔씩 모습을 보이던 선수들이 LG에서 방출되어 다른 팀으로 간 후에는 베스트 나인으로 활약하는 선수는 박병호뿐이 아니다. 원석을 구분하는 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보석으로 다듬을 줄도 모르는 프런트의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메이저리그로 간 박병호를 다시 보자.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타석에서 점점 자신감을 잃고 타율이 1할 대로 떨어지더니, 결국 지난 달에는 마이너리그로 추락했다. 감성적으로 치우치기 쉬운 인간을 어떤 지도자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발휘하는 실력도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엘리트 지도자가 아닌 것처럼, 공부 잘한다고 졸업한 뒤에도 뛰어난 사회인이 되는 것 역시 아니다. 선수시절에는 혼자만 잘하면 스타로 대접받는다. 학생도 마찬가지다. 혼자의 노력으로 1등에 오를 수 있다. 그런데 팀을 통솔하는 감독이 되거나,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 달라진다. 자신보다 못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고, 선수 개개인이 아닌 팀으로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성공할 수 있다.


1970년대 후반 고교야구인기가 최절정이었던 시절에, 부산고의 에이스로서 전국대회를 모두 석권했던 LG 양상문 감독은 선수들의 플레이가 너무 한심하게 보여서 기대할 게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학창시절 16년 동안 실패라고는 모른 채 1등만 했던 0.1%의 사람들이, 사회 지도자가 되어 ‘갑남을녀(甲男乙女)’, ‘장삼이사(張三李四)’ 평범한 사람들을 ‘개·돼지’로 여기는 것도 마찬가지 논리다.


23년 동안 검찰조직의 요직을 두루 거친 우병우의 검사시절 별명이 ‘기브스’이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심지어 사법고시 합격이 늦어져 검사로서 후배가 된 대학선배들에게 반말로 대할 때도 있었다니, 그가 얼마나 목에 힘을 주어 그런 별명을 얻게 되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으며, 그렇게 오만한 그가 검사로 지내면서 범죄 피의자들을 어떻게 다뤘을지 추측하는 것 또한 그렇다.


명품이라는 게 있다. ‘1등 제품’이라는 뜻일 거다. 1등 제품인 만큼 값도 그만큼 비싸고, 일부 부유층 사람들이 이용하는 상품이라고 생각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놀란 것 중의 하나가, 한국인들의 극진한 명품사랑이었다. 국민가방이 되었다는 여성들의 '루이뷔똥' 핸드백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 백팩이나 오리털 잠바까지, 상품을 고르는데 브랜드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1등에게만 보내는 존경심과 찬사가 상품에까지 전해진 것은 아닐까? 1등이 되지 못한 여한을 1등 제품을 소유하고 치장함으로써 대리만족을 한다면 정말 웃픈(?) 현실이며, 0.1%들에게 놀아나는 진정한 2·3류 인생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대기업의 마케팅 논리에 세뇌당한 탓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것은 부자를 더 부자로, 1등을 영원한 1등으로, 진골이나 성골을 그대로 존속시키므로 스스로를 영원히 2류, 3류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겉모습을 아무리 명품으로 싸 발라도 인간 자체가 바뀔 수는 없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은 그 우수함을 인정하면 그뿐이지, 그가 입는 것, 먹는 것을 흉내 낼 필요는 없다. 흉내를 낸다면 남에게 잘보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속일 수 없는 스스로에게 얼마나 비참한 기분이 들까. 독서실에서 만났던 여드름투성이의 그 친구가 공부하는 것을 나는 결코 이길 수는 없었다. 미련하게 배가 터지도록 저녁을 먹고는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낼 수 없어서 책상에 엎드려 자고 났을 때도, 그는 여전히 초저녁과 같은 자세로 공부하고 있었다. 우둔했든, 인내가 부족했든 그것이 내 한계였다.


상표를 보고 제품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질이나 성능, 가격과 디자인을 보고 골라야 마땅하다. 그리고 같은 값이면 1등이 아니라 2등 제품을 사야한다. 그래야 2등도 1등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제대로 된 경쟁사회를 유도하여 기초체력이 튼튼한 나라가 될 수 있다. 그래야 ‘1등 부족’들도 2등, 3등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스스로 돌아보게 만들 수 있으며, 모든 구성원들이 똑같이 대우받는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2등 제품을 선택한다. 한국에서 구입한 내 방의 TV는 물론이고 내가 사용하는 스마트폰도 LG다. 한국에서는 삼성에 밀려 2등인 LG가 언제가 되든 1등 삼성을 밀어내고 올라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2등 제품을 고른다. 나는 소비자에게 돌아갈 이익을 마켓팅에 쏟아붓고 소비자를 우롱하는 1등이 싫다. 1등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2등이 더 좋다.


<후기>

언젠가 30년에 가까운 이민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분을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완전 정장차림이 이상하게 보여서 물어보았지요. 이렇게 입지 않으면 사람들이 무시해서, 음식점에서도 달라진다는 것이 답이었습니다. 아마 고향이었기에 더 그런 것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잘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젊어서 고향 싫다고 이민 갔다가 와서는 저렇게 꾀죄죄한 모습으로 나타났구먼.” 이랬을까요?


천박할 수도 있는 미국문화가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한국문화는 정말 공감하기 힘듭니다.


그동안 지낼 만하더니 제주 날씨도 꽤 더워졌습니다. 운동하기 힘들 정도로 새벽에도 덥고, 열대야로 이틀째 잠을 설쳤습니다. 여러분도 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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