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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한국의 아이들

(2012년 6월 13일)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일들만 생각나고 자랑할 만한 일은 별로 없지만,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할 만한 일도 간혹 있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담배를 끊은 일이요, 또 하나는 아이들을 미국에서 살게 한 것이다.

금연을 한 것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 분이 없겠지만, 아이들 이야기는 의하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겠다. 

언젠가 한 아이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이야기 할 때는, 내 스스로도 아이들에게 못할 짓을 한 것은 아닐까 하고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학원차량을 운전하고 이곳 아이들이 생활하는 것을 가까이 보면서 애매함은 확신으로 변했다.


학원에서 학원으로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곳은 주로 학교지만, 학원에서 데려오는 경우도 있다. 아니 심지어는 유치원에서 데려오는 아이들도 있다. 현준용이라는 2학년 짜리 꼬마가 있다. 3시 30분에 영어학원에서 학원으로 데리고 온다. 그 아이를 5시에 다시 태권도 학원으로 데려다 준다. 한창 골목에서 뛰어 놀아야 할 아이가 학원을 3개나 다니는 것이다. 이 아이가 지난 주부터 학원을 나오지 않는다. 오늘 신문에서는 서민들이 좀처럼 줄이지 않는 사교육비, 즉 학원비까지 줄이고 있다고 전한다.


황진웅이라는 4학년 짜리 아이가 있다. 학교에서 데려와서 4시에 영어학원에 데려다 준다. 학원으로 가는 5분 가량의 시간에 차 안에서 숙제를 한다. '하우 아 유?'라는 말에 대답을 못한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가 대답이다. 학원에서는 무얼 배우니? 아이는 대답을 못한다. 하나에서 스물까지 세어보라는 말에도 일레븐부터는 더듬거린다. 여우가 영어로 뭐니? 폭스라는 대답이 금방 나온다. 늑대, 토끼, 소, 얼룩말 등 동물의 영어 이름은 쉽게 대답한다. 혼자 외워도 되는 아무 쓸데없는 단어 공부를 돈내고 학원을 다니며 배우고 있는 셈이다.


내가 운전하는 학원은 모든 과목을 다 가르치는 일반 학과목 학원이다. 유치원 아이부터 6학년 아이까지 다닌다. 영어도 가르치지만, 더 좋은 학원, 더 유명하고 잘 가르치는 학원을 찾아 다른 학원에 다니는지 모를 일이다.


옛날처럼 형제들이 많은 것도 아니니 형제들끼리 놀지도 못하고,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학원에 가 있으니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고 놀기 위해서 학원에 가야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학원비를 벌기 위해서 부모들은 더 돈 되는 일을 찾아 열심히 일할 수 밖에 없고, 돈 버는 일에는 엄마, 아빠가 따로 없다. 부모들은 돈 버느라 바빠 아이들 돌볼 시간이 없으니 더 학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학원이 돈을 받고 옛날 부모가 하던 일을 대신 떠맞고, 부모들은 떠맞긴 부모역할에 댓가를 지불하는 셈이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이만 불을 훨씬 넘어섰지만, 오천 불이 못 되던 시절에 비해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부모들은 부모역할을 포기하고 수입에 매달려야 하고, 늘어난 소득은 차량에 들어가는 휘발류로, 부족한 시간을 매워주는 부모대행, 주부대행비용으로 들어간다. 과거에는 집집마다 주부들이 가정에서 만들어 먹던, 고추장, 된장, 김치, 칼국수, 만두 등 모든 것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을 사 먹는다. 인간의 행복과는 거리가 먼 곳에 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쉼없이 뛰어 다닌다.


학원차량을 운전하다 보면 영어, 수학같은 학과목 학원은 물론 음악학원, 미술학원, 태권도, 발레, 검도와 바둑교실이라고 쓴 차량들을 쉽게 만난다. 옛날 동네 형이나, 할아버지 어깨 너머로 배웠던 바둑까지도 이제는 학원에서 배운다. 건물마다 학원이 들어서 있다. 주택가나 학교근처는 물론이고 상가나 비즈니스 건물에도 학원들 간판이 걸려있다.


아이들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수시로 차 안에서 싸우고 주먹질을 한다. 사나워지고 예민해진 것을 느낀다. 실컷 놀아야 할 나이에 그렇지 못하니 사나워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아이들은 커서 무엇을 추억하고 무엇을 기억할까? 나처럼 어린 시절, 엄마가 반죽한 밀가루 덩이를 다듬이 방망이로 밀던 추억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 옆에서 동생들은 조그만 반죽으로 장난감을 만들어 놀고 있었고, 엄마는 내가 민 동그라미를 접어 칼로 쓸고 있었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한국은 급속히 미국화 되어가고 있다. 미국처럼 제주의 가정에도 대부분 멀티카를 소유하고 있다. 아빠차와 엄마차가 따로 있는 것이다. 농촌지역에 가도 대부분 승용차와 트럭을 가지고 있다. 외형적인 '잘 사는 것'을 내적인 '행복'과 바꾸는 사회가 되고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이나라 살리는 통일♬이겨레 살리는 통일♬통일이여 어서 오라♬통일이여 오라♬'


어릴 때 음악 교과서에서 배웠던 노래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이 노래는 빨갱이 종북 좌파가 하는 노래라고 해서, 요즘은 아이들 교과서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임수경씨가 평양에서 북한인민들과 합창을 해서인지, DJ가 김정일하고 같이 불러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 얘, 나는 우리나라가 통일은 하지 말고 북한하고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 너 왠지 아니? 통일이 되면 돈이 엄청 많이 드는데, 그러면 엄마 아빠가 나라에 돈을 많이 내야 하잖아. 엄마 아빠가 돈을 많이 내면 우리에게 주는 용돈도 줄어들게 아니!


학교에서 아이들을 태우고 가는 중에, 강수지라는 초등학교 3학년 짜리 똘똘한 아이가 제주 사투리를 섞어가며 제 또래들과 하는 이야기다. 10살도 안 된 계집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지도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된다. 이 아이가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누구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을까? 이게 이 나라, 이 정부의 통일관은 아닐까?

아니, 이 사회의 현주소는 아닐까?


소원을 이루는데 희생과 비용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 희생과 치뤄야할 댓가가 아까워 소원을 미룬다면 그것은 더 이상 소원이 아니다. 한국사회는 더 이상 통일이 소원이지 않다. 그냥 아무 일없이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소원인 사회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사회가, 이 한국사회가 훨씬 더 잘 보인다.


사회 구성원 모두인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잊어버린 사회가 갈팡질팡하는 것은 당연하다.


프랑스의 '르몽드'지가 MB를 한국의 베를루스코니라고 했다고 한다. 국민이 잘 사는 사회가 아닌, 자신과 주변사람들만 잘 살게 한다는 것이다.


일제식민치하가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해본다.

박정희씨는 대일본제국의 조선총독부 총통쯤 정도는 지내지 않았을까!

MB는 제2의 박흥식(화신백화점 사장) 정도로 부를 이루지 않았을까!

노무현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어느 깊은 산속에서 이름 모를 주검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열살 짜리 꼬맹이의 잡담 한마디에 상념과 번뇌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다.


'아이는 모든 어른의 아버지'다.


<후기>

내 아이들은 최소한 이런 사회에서 살지 않을 것입니다. 그 아이들의 아이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제가 살아 본 미국사회에도 문제가 많지만, 최소한 아직까지는 한국처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미국에서 미국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국에서 잔뼈가 굵은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한국인으로 살겠지만 그 아이들은 그럴 필요가 없겠지요.

시민권 심사받을 때, 심사관에게 한 거짓말이 생각납니다.

한국과 미국이 전쟁을 벌인다면 누구 편에 서겠느냐고 물었었지요. 

미국이라고 대답한 그 대답은 거짓말이었슴을 고백합니다.


아마, 내 아이들은 미국편에 서겠지요. 그렇다 해도 저는 한국편에서 싸울 겁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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