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촌형님 썸네일형 리스트형 6촌 형님을 찾아가다 친척이라면 보통 친가와 외가로 나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4 후퇴 때 부모형제와 처자식을 북에 두고 단신 월남했던 부친이었으니 제대로 된 친가는 있을 리 없다. 전쟁 전부터 서울에 살고 계시던 선친의 이모님이 가장 가까운 일가였다. 선친의 고종사촌이 되는 분도 계시고 나와는 6촌 관계인 형님도 있었지만 워낙 나이차가 커서 거의 왕래가 없었다. 빛바랜 그분의 결혼식 흑백사진 속에서 콧수건을 가슴에 단 꼬마가 나였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엄마 쪽은 달랐다. 막내이었던 엄마의 언니인 이모님을 비롯해서, 오라버니인 외삼촌까지 있었으니 사촌들까지 포함하면 적지 않았다. 우리 집도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외가는 더했다. 모르긴 몰라도 서울에 사는 동생(내 모친)을 믿고 부여 ‘뒷떼기’라는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했던..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