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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여운(餘韻)- 셋

공정한 게임의 법칙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젊은이들은 재테크 또는 여름휴가를 해외 어느 곳으로 가는지를 화제로 삼는 동료들과 어울릴 수 없는 겁니다. 부동산과 같은 재산이 있는 부모를 둔 사람들을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반발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할지 모릅니다. 여기에서 미국과의 차이를 발견합니다. 미국에서는 자신들의 형편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저마다 행복을 추구하고 인생을 즐기거든요. 방법이 다를 뿐 스스로의 인생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동일한데, 한국은 다르다는 겁니다. 가진 것에 따라 신분이 달라지며, 인생 자체가 피곤해지는 사회입니다.”


한동안 인간승리로 생각했던 MB가 생각났다. 그는 현대의 주력 기업에서 사장 자리까지 오를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결국 사주인 정 씨 일가의 머슴에 불과했을 뿐이었지 정 씨 성(姓)을 가진 그 자식들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정주영 씨가 국민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뛰어들었을 때, 그는 정주영 씨를 배신하고 민자당을 택한 것도 이해는 된다.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대통령에 되었으면서도 그토록 열심히 부(富)를 챙겼을까. 그가 가진 재산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


빈부의 차이는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심지어 분배경제를 구현하는 공산국가에서도 심하다. 황금만능주의를 넘어 배금(拜金)사상이 일반화된 이유도 있음에 틀림없다. 극도로 산업화되고 전문화된 사회에서 가족이 붕괴되어 믿고 의지할 것은 결국 ‘돈’뿐이라고 생각한다. 늙어도 자식에게 도움 받지 못하며, 병들어서 아파도 돈이 없으면 기다리는 것은 ‘고독사’뿐이다. 돈 때문에 부부가 갈라서고 자식이 부모를 폭행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세상에서 믿을 게 따로 있을 리 없다. (추적60분 6월8일 방송분, ‘패륜범죄, 돈은 피보다 진했다’ 참조)


전쟁의 폐허에서 50년 만에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부는 산업을 키우기 위해 민생보다는 재벌을 양성하는데 급급했고 경쟁사회를 유도하고 부추겼다. IMF를 거치면서 경쟁은 극에 달했다. 경쟁에서 이긴 승자는 독식하며 부를 거머쥘 수 있었다. 승자만 있는 경쟁이란 있을 수 없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숱한 패자(敗者)를 양산했다. 경쟁을 통해서 나라가 선진국에 들어서고 승자는 모든 달콤함을 누리지만, 그 부산물인 패자를 국가도 승자도 도외시한다면 그것이 과연 공정한 사회의 모습일까. 그나마 경쟁이라는 것도 돈과 권력이 밀착한 불공정한 경쟁이었다면 더 그렇다.


문제는 부의 양극화가 아니라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 아닐까. 한진해운의 전(前) 사주 최은영 씨가 부실기업으로 발표되기 직전에 소유주식 전량을 처분하여 수 십 억의 손실을 방지한 것이 사전정보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조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천 년대 초 ‘살림의 여왕’이라는 ‘마사 스튜어트(Martha Stewart, 1941)’는 ‘임클론(ImClone)’이라는 회사의 주식을, 친구이었던 임클론 사장으로부터 입수한 사전정보로 전량 처분했다가 5개월이라는 실형을 받았다. 그녀가 이익을 본 것은 수만 달러에 불과해서 실형을 면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범죄행위를 감추려고 사전에 모의하고 허위로 증언했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는 ‘LG카드 사태’가 발생했다. 문제가 터지기 전에 LG 사주인 구 씨와 허 씨 일가는 주식을 전량 처분했으나, 가벼운 처벌만 받았을 뿐 실형을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이 회사의 주식을 갖고 있었던 일반 투자자들만 큰 피해를 보았다. 공정한 사회가 아니다. ‘마사 스튜어트’처럼 구 씨와 허 씨 일가를 처벌했으면 최은영 씨의 범죄는 없었을지 모른다. 이런 불공정의 뒤에는 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와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 같은 인물들이 있어 돈과 권력을 중계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은 자신의 실력으로 공정하게 겨루기 때문일 것이다. 야구나 축구에서 심판이 한쪽만 편든다면 그것은 스포츠가 아니다. 소변검사를 하고 비디오 판독을 하는 등의 노력도 공정하기 위한 노력이다. 공정한 스포츠에서는 약자가 강자에게 이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관전자는 그런 게임에 더 열광한다. 강자가 항상 약자에게 승리한다면, 그런 게임을 관전하는 바보는 없다. 지금 한국사회가 그런 것이 아닐까. 언제가 강자가 약자에게 이기는 사회! 언어폭력을 당하고, 무릎을 꿇리고, 매 맞고, 죽임을 당해도 약자는 어쩔 수 없는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을 원망하며, ‘N포세대’라고 스스로를 자학하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따져보면 모든 것은 ‘황금만능주의’가 불러온 비극이다. ‘세월호 사건’도 그렇고,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죽은 19살의 청년도 그렇고, 남양주 지하철 폭발사고도, 새벽 등산객을 살해한 것도 그렇다. 50대 여인을 죽이고 뺏은 돈은 고작 만7천 원이라고 한다. 범죄를 밝히고 법적용을 판단하는 유능한 검사장, 판사 출신이 변호사를 개업해서 5년 만에 123채의 원룸을 사들이고 수 백 억을 버는 사회, 회사에서 빌려준 돈으로 그 회사의 주식을 사서 38억을 벌었다는 현직 검사장을 보면서 젊은이들이 이 사회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반문할 필요도 없다. 반칙이 없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면 소변검사도 필요하고 때에 따라서는 비디오 판독도 도입해야 하는 것 아니던가.


2년 전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정부는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래서 안전사고가 없어졌을까. 배금사상이 철저한 사회에서 ‘안전’은 언제나 뒷전일 수밖에 없다. 안전에는 ‘쓰지 않아도 될 돈’이 들기 때문이다.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쓰면 '내가 차지할 몫'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서류상으로만 ‘2인1조’로 작성하고 실제로는 한 명이 작업하는데 안전이 확보될 턱이 없다. 304명을 전 국민이 TV로 실황 중계되는 가운데 수장을 시켰어도 바뀌는 것도 변한 것도 없다. ‘행안부’를 ‘안행부’로 바꿀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이 사회에서 만연하고 있는 ‘황금만능주의’를 척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칙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공정한 게임의 법칙을 만드는데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것이 소변검사가 되었든 비디오 판독이 되었든.


한국사회에 대한 젊은이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줄 수 있을지, 아니면 ‘헬조선’이라는 생각이 더 고착될 것인지는 '공정한 게임의 법칙'이 어떻게 지켜지는가에 달렸을 거다. 최은영 씨, 홍만표,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지는지를 그래서 지켜보고 있다.


"그럼, 한국사회는 희망이 없는 걸까요?" 그가 물었다.


"천만에요, 저는 오히려 희망을 봅니다. 헤겔은 변증법론에서 모든 사회는 '정(正)·반(反)·합(合)'으로 진행하며 발전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난 총선의 결과도 그것을 보여주고 있고요. 지난 역사에서 우리 민족이 그랬듯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바뀌어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은 그 과정일 뿐이죠. 단지 그 과정을 얼마나 단축시켜 약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을 줄이고 하루빨리 좋은 사회로 나가느냐의 문제겠지요. 그리고 그것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살아본 우리 역이민자가 조국을 위해 할 일이 아닐까요? 양쪽 사회를 비교하며 계속 문제점을 들추고 떠드는 것입니다."


<후기>

어제부터 선풍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에도 20℃(70℉)가 넘습니다. 온도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습도가 높아서 3마일 정도 뛰고 나면 땀으로 목욕을 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두어 달이 더위에 약한 제게는 힘든 시간입니다.


- 비가 내려도 후덥지근한 제주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