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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집과 이웃(7) (2012년 8월 29일) 자연 생태계에는 태풍도 필요하다고 한다. 바람이 바닷물을 뒤섞어 심해에 산소도 공급하고, 또 식물의 씨앗을 먼 곳까지 흘러보내 종자를 퍼뜨리는 일도 한다는 거다. 제주는 예로부터 태풍이 잦았던 곳으로 모든 자연 생태계가 바람에 맞서는 모습으로 진화해 왔다. 예를 들어 제주의 코스모스는 키가 크지 않다. 난장이 모습이다. 땅에 바짝 붙은 꽃이나 풀들이 많다. 전통가옥들도 지붕이 낮고, 초가에는 새끼줄로 얽어매고 돌맹이를 매달아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도록 대비를 한다. 제주에 흔한 돌로 쌓아놓은 듯한 담들도 엉성하게 쌓은 듯한 돌 사이에 구멍이 숭숭 있어서 바람에 저항하지 않고 바람을 통하게 해놓았다. 모진 바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숙명을 지닌 삶의 지혜다.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 더보기
집과 이웃 (6) (2012년 8월 20일) 더위가 날짜 가는 것을 잊은 듯 연일 기승을 부린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삼복 때 보다도 더 더운 것 같다. 육지는 몰라도 삼복 때도 이렇게 덥지는 않았는데, 요즘은 제주가 서울 보다 더 더운 것 같다. 일기예보를 보아도 기온이 더 높다. 저기압이 중부권에 머물며 비를 뿌리는 대신 남부와 제주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맹위를 떨치는 모양이다. 이곳은 여름에 에어컨이 필요 없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는 공염불이다. 내년에는 아무리 전기료가 무서워도 에어컨을 설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위와 더불어 짜증이 나는 일들이 생긴다. 한국에서는 차량을 주차시킬 때 후진으로 주차한다. 또 한국은 디젤차량이 대세다. 후진주차는 시간도 더 걸리고 악셀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소리도 요란하다. 거기다 .. 더보기
집과 이웃 (5) (2012년 8월 1일) 20여년 전 나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놓고 갈등하고 있었다. 별로 어렵지 않게 뉴질랜드 영주권을 받아놓고 선택을 해야했지만, 자회사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던 것이다. 이민을 선택하는 대신에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였다. 과장급 하나에 대리급 직원이 둘인 신생부서를 맡아서, 일하는 재미에 빠졌다. 그러는 사이에 영주권은 취소가 되었고 이민을 가겠다는 생각은 잊어버렸다. 내 부서의 사업은 잘 나갔다. 2~3년 후에는 30명이 넘는 부서로 커졌고, 만지는 비자금의 규모도 덩달아 커졌다. 수시로 야근을 하는 직원들에게 저녁을 사주고, 큰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서 회식을 하기도 했지만, 수주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명절 때는 높은 분들에게 줄 뇌물성 봉투를 만들기도 했고, .. 더보기
집과 이웃 (4) (2012년 7월 31일) 공동주택에 살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생기기도 하고, 다른 집에 일어난 문제를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이곳에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하수관은 101, 201, 301호가 공동으로 사용하는데, 1층인 101호에서 하수도로 연결되는 하수관이 막히면, 1층에서 제일 먼저 오버플로우가 발생하고 이어서 2층과 3층까지 오버플로우가 생긴다. 이 경우 누구 책임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1층, 2층, 3층에 사는 세 가구가 공동으로 비용분담을 해야 한다. 그런 일이 실제로 생겨서 변기가 막혔다. 문제는 1층과 2층 사이의 하수관이었기 때문에 2층에 사는 나와 3층에 사는 목사가 같이 부담했던 것이 작년 가을 무렵이었다. 나는 목사가 쉽게 응하지 않.. 더보기
집과 이웃 (3) (2012년 7월 29일) - 잠깐만요, 할 말이 있어요. 연립주택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목사에게 인사만 건네고 들어가려는 나를 붙잡아 세운 것은 며칠 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최소 2~3년은 하겠다고 큰소리 치고 시작한 운전이었지만, 무더위가 시작되자 힘이 들었다. '아, 이래서 노동이 힘이 드는구나!' 하고 체험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아이들에게 사람은 공부를 해야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만 가르쳤지,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는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한 것도 더위에 허덕이면서 운전을 하는 최근의 일이다. 돌담이 왜 무너졌는지, 그 땅은 누구 땅인지 장황한 설명에, 빨리 집에 들어가 옷을 벗어던지고 샤워를 하고픈 나는 짜증이 났다. 오후 7시가 지나 시장기도 꽤 느끼던 참이었다. '그.. 더보기
집과 이웃 (2) (2012년 7월 27일) - 여보, 나 이런 반찬 아주 좋아해! 당신이 이렇게 만들어 주면 나 아주 잘 먹을 텐데. 아랫층에 사는 젊은 친구 내외와 집에서 맥주를 하는 자리였다. 미국식으로 맥주나 한 잔 하자고 부른 자린데, 젊은 친구는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걸로 생각하고 화분을 하나 들고 왔다. 집사람이 놀라서 부랴부랴 있는 반찬, 없는 반찬을 준비해서 저녁상을 차렸는데, 그 자리에서 자기 와이프에게 활짝 웃으며 부드럽게 하는 말이었다. 말 한 마디에도 자기 와이프를 배려하는 투가 역력했다. 나라면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아마도 '당신도 좀 배워서 이렇게 만들어 봐!' 하지 않았을까! 세상 사람 모두가 다 내 스승이다! 아랫층 젊은 새댁과 수시로 왔다갔다 하는 집사람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이다. - 신제주에.. 더보기
집과 이웃 (1) (2012년 7월 26일) 재작년 말, 제주에 내려와서 집을 찾으러 다녔을 때는 참 당혹스러웠다. 듣던 말과는 틀리게, 전세는 없었고, 집값도 예상과는 달리 많이 비쌌다. 제주에는 '신구간'이라고 불리는 이사철이 따로 있다고는 하지만 -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 전세든 판매든 일단 시장에 나온 집이 없었다. 그렇다고 한국까지 와서 월세를 얻을 수는 없었고, 또 이삿짐 때문에 원룸에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보았을 때도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으나, 나온 집이 없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뿐더러, 일단 가격대가 괜찮았다는 것이 가장 큰 선택의 이유였다. 거기다가 우리가 집을 보고 망설이는 사이에, 우리보다 30분 늦게 보러 온 사람들이 우리가 사지 않으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