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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노인의 웃음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정신없이 시간이 간다. 손발을 놀리는 노동이지만 일에 열중하다 보면 시장기 때문에 점심때가 된 것을 깨닫고, 귀가하는 학생들을 보고 끝낼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쯤이면 허리도 아프고 손가락과 무릎에도 통증이 온다. 과거 사무실에서 일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환경이다. 바쁘고 긴박한 일로 긴장 속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쩌다 있는 일이고, 평상시 한가할 때면 시계를 쳐다보며 퇴근시간을 지루하게 기다렸었다. 그리고 정해진 날에 정해진 금액이 은행계좌로 꼬박꼬박 입금되었다. 지금 하는 노동은 전혀 다르다. 정해진 기간 내에 정해진 양을 마쳐야 하며, 그것도 수도계량기 한 건에 만 4천 원이 주어질 뿐이다. 쉬운 것은 30분이 채 안 걸리지만 어려운 것.. 더보기
운명과 인연 나는 운명론자는 아니다. 아니,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운명론을 무능력자의 한심한 변명이라고 비웃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뿐이라고 했던가. 살면서 운명이라는 비과학적 요소로 해석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정리해고를 당한 뒤 점점 무능력자가 되면서 운명이라는 존재에 의지하고 싶어졌다는 것이 솔직할 거다. "듀크, ○○○ 부에 대학선배 C과장이 있는데 이민을 간다네. 아이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구한다는데 내가 자네를 만나보라고 했으니까,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업무관계로 중요한 분이거든. 부탁한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과장의 부탁 전화 한 통이, 잠복되어있던 이민병.. 더보기
부러운 조카들 4주 전이었던 2월 17일 미 대사관에서 여권을 갱신한 날 조카 녀석이 쿠바로 떠났다. 그것도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유럽을 거쳐 쿠바 하바나로 들어간다고 했다. 밤 비행기를 타는 녀석은 초저녁에 들어와서 배낭에 짐을 꾸리느라 부산을 떨었다. 쿠바라고? 아니 왜? 그곳은 나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91년생이니까 이제 26살인 녀석은 K대 전자과를 졸업한 후, C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여 마지막 학년에 실습으로 쿠바를 선택한 것이다. 녀석이 쿠바를 선택한 이유도 내가 쿠바를 가고 싶은 나라 1순위로 꼽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지금이 때 묻지 않은 쿠바를 볼 수 있는 최적이라는 것이다. 미국과 수교를 했으니까 미국의 현대문명과 문화로 오염(?)될 것은 시간문제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인턴을 .. 더보기
운동과 봄 한국에 살고 있다고 해서 미국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저분한 주변 환경을 볼 때나 시끄러운 소음에는 깨끗한 자연을 가진 미국이나 뉴질랜드가 그리워진다. 주변에 건물 짓는 일이 끝났는지 요즘은 망치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위층에서 리노베이션을 하는지 날카로운 금속성의 전기톱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항의를 했다. 그런 소음을 내려면 미리 알려줘야 도서관으로 피신을 가던지 할 것 아니냐, 시끄러워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언제 끝나는 작업이냐? 고 따졌다. 다음날 아침에 남편 되는 목사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미안하다며 찜질방에라도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봉투를 놓고 갔다. 집사람을 시켜 억지로 돌려주고 말았지만,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행태를 이해하기 힘들다. 여차저차해서 언제까.. 더보기
3월을 열며 일 년 열두 달을 4계절로 나누면 3개월이 하나의 계절이 된다. 일 년의 시작은 1월이지만 계절의 시작은 봄이고, 봄의 시작은 3월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늘날의 달력인 '그레고리력' 훨씬 이전에 사용하던 로마시대의 달력은 1년이 10 달이었으며, 실제로 밤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이 새해의 첫날이었다. 지구 온난화로 계절의 변화가 옛날 같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3월의 시작은 정초와는 다르게 또 다른 의미의 출발선이다. 새 책과 새 노트로 새 학년을 시작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일 수도 있을 테고, 뒷동산에는 진달래가 피고 동네 울타리에는 개나리가 흐드러져 세상이 화사한 색으로 치장하는 탓일 수도 있다. 어제 새벽에 만난 차가운 공기가 오늘이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텐데도, 오늘 새벽이 보다 .. 더보기
반기문 씨에게 배우는 겸손의 의미 '겸손'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네이버 어학사전)'이다. 유사어로는 '공손', '겸양', '겸사', 반대말로는 '교만', '거만', '오만'이 있다. 영어에도 여러 단어가 있겠지만,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humble'이다. 아이들을 키울 때, 직원들과 대화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였다. 말로 하기는 쉽지만 현실에서는 지켜지기 힘든 게 바로 "Be humble"이다. 내가 경험했던 이민사회도 그랬다. 낯선 타국에서 성인으로 만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얼마나 대단했는지 과시하기 쉬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S대를 나왔다고 말하든가, OO회사에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다든가 하는 식이다. 이민생활.. 더보기
계란과 외할머니 AI(Avian Influenza)로 불리는 조류독감으로 달걀파동이 일어났다. 역사상 최초로 달걀을 수입한다고 한다. 음식점과 제과제빵업계에서는 필수품이라는 것이다. 도시락 반찬 정도로만 알았던 달걀이 어느덧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있었다. 한자어로 계란(鷄卵)이라고도 부르며 토종 한국어로 ‘닭의 알’이란 의미의 ‘달걀’은 내게 많은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단어다. 그 기억 때문에 달걀을 일부러 찾아 먹지 않았다. 국민학교 6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경기도로 이사한 부모님은 부업으로 마당 뒤편에 양계장을 짓고 닭을 길렀다. 기억이 희미해서 백 마리인지 2백 마리였던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아침저녁으로 진동하는 닭똥 냄새를 맡으며 달걀을 수거하러 다녔고, 늘 사료걱정과 겨울철 난방걱정을 하시던 부모님의 한숨소.. 더보기
새해 첫날에 해마다 맞이하는 1월1일이 다른 날과 다를 것은 없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며 겨울답게 쌀쌀한 날씨라는 것도 어제와 같고, 내일과도 비슷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1월1일 뜨는 해를 먼저 보겠다고 정동진의 추운 새벽바다에 나가 소원을 빈다고 해서, 다른 날에 해돋이를 보며 소원을 비는 사람보다 월등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감상 없이 이날을 맞이하는 것도 정상은 아닐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은퇴한 마당에 회사를 다닐 때처럼 특별하지는 않다. 회사에서는 결산과 신년 계획을 세워야 하는 12월이 제일 바빴다가 새해가 되면 좀 한가해진다. 지금은 다 지나간 옛일이 되었으나, 제일 괴로웠던 일은 실적평가(Evaluation)와 봉급인상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냉.. 더보기
현명했던 그들, 어리석었던 나 - 한국에게 미국이 어떤 나란데! 미국이 없었다면 1950년 공산화된 김일성 치하에서 살게 되었을 것 아닌가!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을 돕기 위해서 가장 부국이었던 미국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그들의 군대가 한국에 주둔하며 훈련하다가, 사고로 아이 한 둘 죽은 게 무슨 큰일이라고 저렇게 난리지?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행위가 아닌가! 2002년 말 미국에서의 이민생활이 웬만큼 안정되었을 무렵이었다. 1년 전에 영주권을 받아서 처음으로 한국도 다녀왔고 큰 아이는 대학에 갔으며, 가정이나 회사나 사소한 문제 밖에는 없던 시절이었다. 되돌아보면 이민생활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관심이 없었던 한국 관련 소식에 다시 주목하게 된 것은, 그해 여름에 있었던 월.. 더보기
한국 사는 재미 한국에 사는 재밋거리의 하나는 다이내믹 코리아답게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뉴스다. 지난 시월 최순실 게이트가 시작된 이후에는 시시각각으로 전개되는 뉴스거리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매주 토요일 광화문 광장으로 모이는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6차를 넘으면서 모든 이슈를 삼키고는 이번 주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막장 드라마를 능가하는 막장 현실 막장 드라마의 원조는 2008년에 방영된 '아내의 유혹'이라는 일일드라마다. 미국에 살면서 볼 기회는 없었지만 하도 소문이 요란해서 몇 차례 다운로드해서 보았던 기억은 있다. 자살을 가장한 아내가 얼굴에 점 하나 붙이고 다른 사람을 가장해서 남편에게 복수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내용이 줄거리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40년 관계도 그에 못지않다. 뿐만 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