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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

운명과 인연 나는 운명론자는 아니다. 아니,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운명론을 무능력자의 한심한 변명이라고 비웃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뿐이라고 했던가. 살면서 운명이라는 비과학적 요소로 해석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정리해고를 당한 뒤 점점 무능력자가 되면서 운명이라는 존재에 의지하고 싶어졌다는 것이 솔직할 거다. "듀크, ○○○ 부에 대학선배 C과장이 있는데 이민을 간다네. 아이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구한다는데 내가 자네를 만나보라고 했으니까,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업무관계로 중요한 분이거든. 부탁한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과장의 부탁 전화 한 통이, 잠복되어있던 이민병.. 더보기
영화 'Boyhood' 잔뜩 기대를 갖고 본 유명한 영화가 지루하고 졸립기만 하거나, 별 기대 없이 우연히 본 영화에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지난 글,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TOP 15'에서 5위에 올랐던 보이후드가 그런 영화다. 평범한 텍사스 싱글맘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상사가 러닝타임 2시간 30분이 넘도록 전개되는 내용이 지루할 법도 하지만, 이웃 가정을 몰래 훔쳐보는 관음(voyeurism)본능을 충족시켜는 듯한 매력으로 관람자는 곧 지루함을 잊고 빠져들게 된다. 조지 부시나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인물들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형편없는 나라 미국에 대해 대단하다고 감탄사가 나오게 되는 경우는, 그만큼 독창적이고 흔치 않은 생각이나 시도를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테슬라의 앨런 머스크 .. 더보기
부러운 조카들 4주 전이었던 2월 17일 미 대사관에서 여권을 갱신한 날 조카 녀석이 쿠바로 떠났다. 그것도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유럽을 거쳐 쿠바 하바나로 들어간다고 했다. 밤 비행기를 타는 녀석은 초저녁에 들어와서 배낭에 짐을 꾸리느라 부산을 떨었다. 쿠바라고? 아니 왜? 그곳은 나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91년생이니까 이제 26살인 녀석은 K대 전자과를 졸업한 후, C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여 마지막 학년에 실습으로 쿠바를 선택한 것이다. 녀석이 쿠바를 선택한 이유도 내가 쿠바를 가고 싶은 나라 1순위로 꼽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지금이 때 묻지 않은 쿠바를 볼 수 있는 최적이라는 것이다. 미국과 수교를 했으니까 미국의 현대문명과 문화로 오염(?)될 것은 시간문제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인턴을 .. 더보기
운동과 봄 한국에 살고 있다고 해서 미국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저분한 주변 환경을 볼 때나 시끄러운 소음에는 깨끗한 자연을 가진 미국이나 뉴질랜드가 그리워진다. 주변에 건물 짓는 일이 끝났는지 요즘은 망치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위층에서 리노베이션을 하는지 날카로운 금속성의 전기톱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항의를 했다. 그런 소음을 내려면 미리 알려줘야 도서관으로 피신을 가던지 할 것 아니냐, 시끄러워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언제 끝나는 작업이냐? 고 따졌다. 다음날 아침에 남편 되는 목사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미안하다며 찜질방에라도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봉투를 놓고 갔다. 집사람을 시켜 억지로 돌려주고 말았지만,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행태를 이해하기 힘들다. 여차저차해서 언제까.. 더보기
최순실의 탐욕 10년 전에 벌어졌던 일이 생각난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2008년에 터졌지만, 그 전조는 이미 2007년부터 나타났었다. 아니 2006년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2006년 말까지 미국의 부동산 값은 미친 듯이 올랐으니까. 뉴저지 중부 '브리지워터(Bridgewater)'에 있는 천 스퀘어 피트(28평)도 안 되는 2베드 2베스 콘도(한국식 아파트)가 30만 불 중반대 가격이었다. 2007년 4월 모기지 대출회사인 '뉴센추리 파이낸셜'의 파산을 시작으로 줄줄이 대형 금융회사가 쓰러져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상상하지도 못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파생상품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그 어려운 용어를 이해하게 된 것은 회사에서 레이오프되고 할 일이 없게 된 이후였다.. 더보기
탄핵 독후감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3월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대행이 탄핵 심판 선고일에 이 같은 역사에 길이 남을 심판결과를 주문했다. 이로써 작년 12월 9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이 의결된 후로 숨 가쁘게 진행된 대통령 탄핵은 예상대로 인용되었고, 작년 10월 말부터 이어진 촛불집회도 지난 토요일로 막을 내렸다. 60 평생에 처음 겪는 대통령 탄핵이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는 한국에 없었을 뿐더러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번은 달랐다. 유신시대를 살아온 당사자로서 그때의 씨앗으로 집권한 박근혜 정부에 관심이 많았을 뿐더러, 은퇴자로서 할 일이 별로 없는 겨울이라 시간도 많았다. 지난 4개월 동안 독서할 시간도 없이 오후 2시부터 잠잘 때까지 각종 뉴스를 쫓아다니고 이.. 더보기
가짜 뉴스 (Fake News) (끝) 아무런 객관적 근거 없이 하는 말이나 글은 그 사람의 생각이나 주장일 뿐이지 팩트는 아니다. 최소한 '신문에서 봤다니까!'라는 근거라도 제시해야 한다. 더 객관적인 팩트를 원하면 근거로 제시된 신문기사를 찾아 기사의 진위까지도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팩트로 받아들이기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까지 신문이나 방송을 탄 내용에 의심을 가져보지 않았다는 타성이 스마트폰 보급으로 일반화된 SNS를 타고 가짜 뉴스의 파급력을 높였다. 마케팅 연구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TV 광고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 브랜드에 대해 높은 충성도를 갖게 된다고 한다. 1980년 서울의 봄에 나는 군대에 있었다. 최전방에서 볼 수 있던 읽을거리는 온통 전두환 보안사령관 찬양으로 도배된 내무반의.. 더보기
가짜 뉴스 (Fake News) (하) 모든 범죄의 시작은 '감추고 속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인류 최초의 범죄인 '에덴동산의 선악과 사건'도 아담이 이브에게 한 거짓말이 출발선이었다. 젊은 시절 한국의 직장생활 중에 부당한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탄로 나는 것'이었다. 걸리지 않는다는 확신만 있다면 자신의 권한 내에서 상대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대신 돈으로 받으려 했다. 같은 짝퉁을 팔더라도 속이지 않으면 (상표권 침해를 제외하면) 범죄가 되지는 않는다. 진짜인 것처럼 위장해서 구매자를 속이려는 의도가 있을 때는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의도된 가짜 뉴스도 범죄로 취급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기술혁신과 사회의 급속한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법체제와 '표현의 자유'라는 선의의 법정신 탓에 범죄로.. 더보기
가짜 뉴스 (Fake News) (중) 이런 분들에게는 최순실 게이트가 언론에 오르내리다가 박근혜 대통령에게까지 불꽃이 튀어 탄핵으로 확대되는 것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탄핵을 발의한 야당 국회의원들도 못마땅하지만,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새누리당의 국회의원은 못마땅함을 넘어 미워 죽을 지경이다. 그런 놈들보다 더 못마땅한 것은 최순실 태블릿을 보도함으로써 대통령 탄핵이라는 심지에 불을 붙인 'JTBC'와 손석희 사장이다. JTBC 보도 후에 그걸 쫓아 비슷한 방향으로 보도하는 종편과 지상파 방송들도 꼴 보기 싫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6년간 야당을 종북좌파로 몰아붙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정부를 찬양하던 방송을 내보낸 곳이, 광우병 촛불시위 이후 이명박 정부가 장악하고 허가한 지상파와 종합편성 채널이었다. 그러던 방송들이 JTBC 보도.. 더보기
가짜 뉴스 (Fake News) (상) 10년 전 회사 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짝퉁시장을 간 적이 있다. 가짜 상품으로만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여자 핸드백을 포함한 가방류, 시계, 보석, 장신구 같은 온갖 액세서리류, 아이팟 같은 전자제품류, 구두, 지갑, 벨트 같은 가죽제품류 등 몇 종류 되지 않는 상품들의 엄청난 양이 그 넓은 시장 골목골목과 빌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눈앞에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제대로 돌아보려면 하루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중국지사에서는 젊은 여직원을 시켜 나를 안내하도록 했다. 키가 나와 비슷했던 그녀는 내가 관심을 보이면 나를 대신해 물건 값을 흥정했다. 주인이 3~4백 위안을 호가하면 무조건 백 위안으로 흥정을 시작했고 가격도 대충 그 근방에서 결정됐던 것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