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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

치과에서 "다른 분들은 보통 30분은 걸리는데 선생님은 평소 치아관리를 잘하시는지 치석이 별로 없어서 10분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양치질은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1년에 한 번 하는 스케일링은 보험이 되니까, 치석이 없더라도 꾸준히 하시는 게 좋습니다." 어제 치과에 들려 스케일링을 받던 중에 간호사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입 주위에 구멍 난 천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입을 최대한 벌린 채, 거북하고 민망한 자세로 눕다시피 앉아있는 내게, 어떤 대답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 듣고만 있었다.간호사는 눕힌 의자를 일으켜 세우며 입가심을 하라고 했다. 입안을 헹궈 뱉어낸 물에는 작은 핏덩이와 핏물이 보였다. 그제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스케일링 할 때마다 듣는 말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더보기
빗나간 모성애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그 친구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성(姓)이 ‘황’이라는 것만 생각날 뿐. 그는 아이스하키 선수로 입학한 친구였다. 당시 그 고등학교는 6대1이 넘는 후기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내가 5회 졸업생일 정도로 신생이었던 학교는 별 볼 일없는 축구부도 있었으나, 아이스하키는 대회마다 중동고등학교와 우승을 다투곤 했다. 1970년대 초 아이스하키 팀을 갖고 있는 학교가 몇 개 없었던 탓이 컸을 거다. 운동 특기자였던 황은 일주일에 한두 번 교실에 들어왔을 뿐이어서 얼굴은 알았지만 친하게 지내거나 말을 건네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입영열차 안에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다 입대를 했으니까, 고등학교 1학년 이후로 그를 본 기억이 없었으니 6~7년 .. 더보기
Glory taking, blame passing 모든 사극(史劇)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충신과 간신이다. 극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이 둘의 차이를 굳이 생각해본다. 먼저, 사극에서 충신들이 하는 언행의 특징들로,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머리에 떠오르는 것만 나열해보면 이렇다. - 자신이나 가정의 안위보다는 군주와 백성을 먼저 생각한다.- 옳고 그른 것의 사리분별이 분명하여 임금이 듣기 싫어하더라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다.- 신념과 소신이 쉽게 변하지 않으며, 이에 어긋나는 일은 추구하지 않는다.- 솔직하고 책략이 부족해서 모함이나 누명에 약하다. 반면에 이와 반대되는 행태가 간신들의 특징이겠으나 이 또한 나열해보자. - 군주와 백성이 어떻게 되던 일신의 영달과 가문의 광영이 중요하다.- 옳고.. 더보기
현명했던 그들, 어리석었던 나 - 한국에게 미국이 어떤 나란데! 미국이 없었다면 1950년 공산화된 김일성 치하에서 살게 되었을 것 아닌가!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을 돕기 위해서 가장 부국이었던 미국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그들의 군대가 한국에 주둔하며 훈련하다가, 사고로 아이 한 둘 죽은 게 무슨 큰일이라고 저렇게 난리지?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행위가 아닌가! 2002년 말 미국에서의 이민생활이 웬만큼 안정되었을 무렵이었다. 1년 전에 영주권을 받아서 처음으로 한국도 다녀왔고 큰 아이는 대학에 갔으며, 가정이나 회사나 사소한 문제 밖에는 없던 시절이었다. 되돌아보면 이민생활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관심이 없었던 한국 관련 소식에 다시 주목하게 된 것은, 그해 여름에 있었던 월.. 더보기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다 (노스텔지어라는 분은 인터넷에서 조우한 최고의 글쟁이 중의 한 분입니다. 만난 적은 없지만 촌철살인의 글이 좋아 그분의 불로그에 새 글이 올라올 때마다 가져오고 있습니다. 시를 표방하여 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다코스모스 하늘대는 둑길을 지나고 철길을 건너그대 등에 기대어 한없이 걷고 싶다 인터넷 시대니 쇼셜 미디어(SNS)시대니 난리지만나와는 관계없다바쁠 때일수록 돌아가라고아이들이 죽어간다는 문서를 가지고세월아 네월아 한가롭게 자전거를 타고와서벨을 두 번 눌러도 그가 연서를 전하러 온우체부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어차피 읽어봐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니나와는 관계없다오늘 밤에 촛불이 바람에 번져도나는 나의 길을 꿋꿋이 가야 한다머리를 올리고 주름을 펴야 한다 아무도 .. 더보기
앵커브리핑과 항소이유서 '땡전뉴스'라는 것이 있었다.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땡'하는 아홉 시 시보와 함께 TV에서 뉴스를 전하는 앵커의 첫마디가,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 ~~" 하면서 그날의 대통령 동정을 첫 소식으로 전했기 때문에 붙여진 비하다.(Youtube 동영상보기) TV를 '바보상자'라고 비하하며, 멍청한 사람들이나 TV 앞에 앉아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다는 폭력적(?) 주장을 한 것도 '땡전뉴스'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혈기왕성한 서른 살 전후의 일이었으니까. 6년 전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한국의 변한 모습에 감동이 여럿 있었다. 말단 공무원의 친절도 놀라움이었으나 더 큰 감동은 TV의 수준 높은 시사와 다큐 프로그램이었다.(지난 글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다.' 읽기) 일본의 NHK나 영국의 BBC에도 견줄만하다고 .. 더보기
머리 깎기 지금은 얼마인지 모르지만 미국에서 살 때는 이발비로 보통 20불을 지불했다. 팁을 포함하면 23불이나 25불을 주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가격이 비싸다고 여겼다. 머리를 감겨주는 것도 아니고 베큠으로 몸에 묻은 머리카락만 제거해주는데도 한국에 비해 몇 배나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회사 내에 있는 구내이발관을 이용하면 5~6천원으로 머리를 감는 것은 물론 면도까지 말끔하게 할 수 있었다. 주로 한아름에 쇼핑하러 가면서 같은 건물에 있는 이발소를 이용했는데 처음에는 17불이었던 이발비가 20불로 요금이 오른 후에는 싼 이발소를 찾았다. 내가 찾은 15불 짜리 이발소 이름이 'Tony's barber'였다. 가구나 의자가 낡고 가운이 얼룩졌어도 이발하는 솜씨만큼은 불만이 없었다. 나중에 토니라는 이름의 이발.. 더보기
죽여주는 여자 박카스가 약인지 음료인지는 모르겠으나 약방에서 팔았으니 약으로 생각한다. 그 박카스를 처음 마셔 본 것은 중학교 입시를 보러 갔을 때다. 아마 1967년 12월이었을 거다. 아무튼 무척 추웠던 것만큼은 확실히 기억난다. 용산 남영동에 위치한 용산중학교 교문으로 들어가는 나를 붙잡아 세운 엄마는 어디를 다녀오더니 따끈한 박카스 병 두 개를 내밀었고, 나는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들이켰다. 그런 정성도 무색하게 낙방하고 말았으니, 나는 지금까지 박카스를 누가 주는 바람에 먹었을지언정 일부러 사 먹은 기억은 없다. 요즘은 광고를 볼 수 없지만 TV가 별로 없던 그 시절에 박카스 광고는 매시간 나왔고 “피로회복을 위해 동아제약 박카스D를 마시자!”라는 선전문구는, 박카스를 마시지 않는 내게도 각인되어 있다. “끼.. 더보기
한국 사는 재미 한국에 사는 재밋거리의 하나는 다이내믹 코리아답게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뉴스다. 지난 시월 최순실 게이트가 시작된 이후에는 시시각각으로 전개되는 뉴스거리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매주 토요일 광화문 광장으로 모이는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6차를 넘으면서 모든 이슈를 삼키고는 이번 주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막장 드라마를 능가하는 막장 현실 막장 드라마의 원조는 2008년에 방영된 '아내의 유혹'이라는 일일드라마다. 미국에 살면서 볼 기회는 없었지만 하도 소문이 요란해서 몇 차례 다운로드해서 보았던 기억은 있다. 자살을 가장한 아내가 얼굴에 점 하나 붙이고 다른 사람을 가장해서 남편에게 복수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내용이 줄거리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40년 관계도 그에 못지않다. 뿐만 아.. 더보기
탄핵 무효표와 샤이 트럼프 지지자들 대부분의 국민이 예상하고 원했던 대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234표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재밌는 것은 무효로 분류된 7표다. 이것들은 찬성을 의미하는 '가'라고 쓰고는, 그 위에 '○' 또는 '「」'를 그려 넣어 '㉮' 또는 '「가」'로 고의적인 무효표를 만든 것이다. 탄핵 투표 전에 야당과 비박계는 투표 후 폰으로 사진을 찍어두기로 했다. 무기명으로 진행하는 투표에서 만에 하나 탄핵이 부결될 경우, 사진을 공개해서 자신의 결백(?)을 공개하기로 방침을 세웠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짐작하기 쉽다. '부' 또는 '否'라고 쓰고 싶지만, 일단 '가' 또는 '可'라고 쓰고 사진을 찍은 뒤에 '○' 또는 '「」'를 써넣어 무효표를 만들어 사실상 반대한 것이다. 탄핵이 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