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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

6촌 형님을 찾아가다 친척이라면 보통 친가와 외가로 나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4 후퇴 때 부모형제와 처자식을 북에 두고 단신 월남했던 부친이었으니 제대로 된 친가는 있을 리 없다. 전쟁 전부터 서울에 살고 계시던 선친의 이모님이 가장 가까운 일가였다. 선친의 고종사촌이 되는 분도 계시고 나와는 6촌 관계인 형님도 있었지만 워낙 나이차가 커서 거의 왕래가 없었다. 빛바랜 그분의 결혼식 흑백사진 속에서 콧수건을 가슴에 단 꼬마가 나였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엄마 쪽은 달랐다. 막내이었던 엄마의 언니인 이모님을 비롯해서, 오라버니인 외삼촌까지 있었으니 사촌들까지 포함하면 적지 않았다. 우리 집도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외가는 더했다. 모르긴 몰라도 서울에 사는 동생(내 모친)을 믿고 부여 ‘뒷떼기’라는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했던.. 더보기
절친의 절교선언 참 많이 아팠다. 정말이지 요 며칠 동안 마음과 함께 심한 가슴앓이를 하며 지냈다. ‘개ㅅ끼 같으니라고, 씨x놈’ 같은 심한 욕설을 나도 모르게 순간순간 읊조리기도 했고, 그래도 지난 40년 넘게 가까운 친구로 지내며 고마웠다는 자조적인 고소(苦笑)가 지어지기도 했다. 대학에서 처음 만난 이후 정말 좋은 친구로 지냈다. 우리가 다녔던 대학은 육성회비만 내고 수업료가 면제되던 국립대학으로 전교생이 장학금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력이 없어 S대는 가지 못하고, 돈이 없어 K, Y대는 갈 수 없던 아이들이 많았다. 비슷비슷한 처지의 동창생들이었다. 친구가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할 때까지 항상 붙어 다녔고, 학생들을 가르쳐 몇푼이라도 생기면 밤새 술을 마시며 개똥(?)철학을 논했었다. 통행금지에 걸리면 못 .. 더보기
이민자가 보는 자녀들의 결혼 지난 주말 친척의 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또 같은 날 대학친구의 딸 결혼식도 있어서 모처럼 친구도 만날 겸 찾아갔다가 인사만 나누고 돌아섰다. 결혼식 30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결혼식장 입구는 꽤나 북적거렸고, 그들 사이에서 1년 전에 결혼한 친구의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친구 부부가 일렬로 서서 하객들을 맞고 있었다. 친구인 혼주를 만나 축하인사를 건네려면 줄에서 기다려야 했다. 줄이 잘 빠지지 않았지만 일부러 그곳까지 갔으니 시간이 촉박하다는 핑계로 그냥 갈 수도 없었다. 겨우 다음 차례가 되어 처음 보는 친구의 아들과 며느리로 보이는 앞에 섰다. 혼주와 인사를 나누는 중년여성 셋이 얼마나 시간을 끄는지 친구의 아들 내외 앞에 뻘쭘하게 서 있게 된 것이다. 작년 초 동남아 여행.. 더보기
잡담한설(雜談閑說) - 10 건강과 광고효과 고인이 된 최진실 씨의 뛰어난 연기가 돋보였던 ‘장밋빛 인생’이라는 연속극을 미국에서 살 때 보았다. 이혼하고 연기인으로 컴백한 뒤에 혼신을 다했는지는 몰라도, 억척스런 가정주부 역의 그녀의 리얼한 연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극중의 그녀가 암으로 죽어갈 무렵, 남편 역의 손현주는 엉터리 약장수에 속아 맹물을 암치료 명약으로 믿고 적지 않은 돈을 주고 구입한다. 이런 일이 드라마에만 있을까? 오래전 한국에서 직장에 다닐 때의 일이다. 출근길 회사입구 앞에서 사람들이 찌라시를 나눠주고 있었다. 무심코 받아들고 사무실에서 보니 ‘알러지 치료에 특효’가 있다는 광고이었다. 거기에 적힌 증세는 마치 나를 두고 하는 듯했고 약효는 틀림없어 보였다. 해마다 4~5월이 되면 알러지 비염으로 코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