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최순실의 탐욕

10년 전에 벌어졌던 일이 생각난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2008년에 터졌지만, 그 전조는 이미 2007년부터 나타났었다. 아니 2006년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2006년 말까지 미국의 부동산 값은 미친 듯이 올랐으니까. 뉴저지 중부 '브리지워터(Bridgewater)'에 있는 천 스퀘어 피트(28평)도 안 되는 2베드 2베스 콘도(한국식 아파트)가 30만 불 중반대 가격이었다.


2007년 4월 모기지 대출회사인 '뉴센추리 파이낸셜'의 파산을 시작으로 줄줄이 대형 금융회사가 쓰러져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상상하지도 못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파생상품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그 어려운 용어를 이해하게 된 것은 회사에서 레이오프되고 할 일이 없게 된 이후였다.


그리고 월가의 탐욕(Greedy Wall Street)을 알게 되었다. 맨해튼과 한 시간 떨어진 타운에서 사는 관계로 월가의 소문을 듣기는 했어도, 먼 별나라 사람들의 이야기 같아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것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관이 있었다. 15만 불이 넘었던 401K(개인 은퇴연금) 에퀴티가 6만 불이 되었으며, 10만 불 이상 올랐던 콘도는 내가 샀던 가격 이하로 떨어졌다.


월가의 탐욕을 대표하는 인물이, 2008년 9월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의 CEO 딕(Richard Fuld)이었다. 그는 2006년과 2007년에만 연봉과 보너스로 4억 8천 5백만 불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챙겼다. 사업이나 장사를 해서 번 이익이 아니었다. 어떻게 연봉과 보너스로 그렇게 큰 금액을 챙길 수 있었을까. 1년도 못 가 파산하는 회사에서.


난생 처음으로 전자공학을 공부한 것을 후회했다. 경제나 금융을 전공했어야 했는데……. 심지어 은근히 공대에 갈 것을 종용했던 아들에게도 죄책감이 들었다. 쌍 시옷 들어간 욕이 절로 나왔다. 씨팔, 뭔 큰일을 한다고 그렇게 아끼고 절약하며 검소하게 살았던가! 내 인생의 긍지가 되었던 정직과 성실도, 검소함도 더 이상 자부심이 아니었다.


작년 시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까지는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며, 최태민이라는 이름만 겨우 기억에 남아 있었다. 2014년 말 정윤회 문건 파동이 터졌을 때도 박근혜 정권의 그렇고 그런 권력투쟁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4개월에 걸친 검찰과 특검의 수사에서 최순실에 대한 실체가 한 꺼풀씩 드러나면서, 그 끝 모를 탐욕에 소름이 돋았다.


지난주에 방영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최순실 은닉 재산 미스터리'를 비롯하여, 최태민의 3남 최재석 씨의 증언과 의붓아들 고(故) 조순제(1940~2008) 씨의 녹취록이 사실이라면, 최순실은 - 불법이든 합법이든 간에 - 최소 수백억에서 최대 수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부를 가졌다. 그리고 나이는 이미 50대 중반(박근혜가 당선한 2012년에)을 넘었다. 국가의 최고 권력자를 측근으로 둔 그녀는 무엇이 아쉽고 무엇이 부족했을까.


만약에 그녀가 진정한 키친 캐비닛(Kitchen Cabinet)으로서 대통령의 말벗이나 하며 세간의 민심동향을 전했다면, 그래서 대통령이 민심을 정책에 반영하고 국리민복을 위한 정치를 하게 도왔다면, 얼마든지 해피엔딩으로 만들 방법도 능력도 갖고 있었다. 그런 조건을 갖고 있던 사람이 역사 속에 몇 명이나 될까. 그러나 그녀가 그러지 못했던 것은 게걸스런 탐욕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인간이라면 갖는 욕망은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식욕, 수면욕, 성욕, 재물욕과 명예욕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중에서 식욕과 수면욕, 성욕은 동물에게도 필요한 생존에 관련된 욕망이므로 제외하면, 재물과 명예에 대한 욕구가 인간만이 추구하는 욕망이다. 나이가 들면 본능적인 식욕, 수면욕, 성욕의 감소와 함께 재물이나 명예에도 초연해지는 게 보통 사람들이다. 또한 재물과 명예는 한 가지면 몰라도 둘 다 갖기는 모순된 상반적 성격이다. 그러나 최태민의 특별한 유전자를 받은 최순실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탐욕을 가졌던 모양이다.


재벌가 2, 3세들의 스포츠인 승마는 '마칠기삼(馬七技三)'이라고 한다. 지난 1월 술집에서 종업원을 폭행하고 난동을 부린 혐의로 구속된 한화그룹 3남 김동선은 2014년 인천 아시아 게임에서 정유라와 함께 마장마술 단체 부문 금메달을 수상했다. 이때 최순실은 정유라보다 훨씬 비싼 말을 타는 김동선을 시샘했다고 한다. 정유라도 김동선처럼 재벌 2세로 태어나 50억이 넘는 말을 타면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다는 욕심이 'K스포츠'를 만든 동기라는 것이다.


마장마술은 승마보다 말 실력이 더 중요해서 '마팔기이(馬八技二)'라고 한다. 20% 밖에 안 되는 기술도 부족한 딸의 자질과 능력은 생각하지 않고 비싼 말로 실력을 대신하겠다는 욕심도 과한 것이지만, 대통령의 힘을 동원해서 자신의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겠다는 발상에는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다. 그 허접한 탐욕에 부응한 박근혜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지만.


미국의 월가에 탐욕스런 딕이 있었다면, 한국의 대통령에게는 게걸스런 최순실이 있었다. 딕은 160년 전통의 '리먼 브러더스'를 파산시켰고, 최순실은 한국 정부 최초로 대통령을 파면시켰다. 그리고 그녀는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아가면서까지 지키려했던 재산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했고, 이대를 졸업한 여자로 만들려했던 딸을 중졸의 학력으로 만들고 말았다.


지금 이순간 그녀는 구치소에서 자신의 탐욕을 후회하며 자책하고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평범한 사람과 다른 유전자를 가진 그녀는 남 탓을 할 것이 틀림없다, 오늘도 재판정에서 부인만 하고 모른다는 말로 일관하고 있다는 뉴스를보면!


<후기>

최순실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릭 펄드'가 생각나서 비교해 보았습니다.


지난주에는 제주에 사는 칠순에 접어든 선배님에게 점심을 얻어먹었습니다. 미국에서 30년 가까이 이민생활을 했던 그분의 말씀입니다. "내가 지난번 선거에서 박근혜를 찍었잖아! 그게 얼마나 후회되는지 몰라. 미국에 사는 친구들에게 요즘 박근혜 탄핵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이 뭐라는지 알아? 나보고 한국에서 살더니, 빨갱이가 다 됐다는 거야. 나는 온종일 뉴스를 보는 사람이고, 저희들은 미국에 살면서 어떻게 나보다 한국사정을 잘 아냐고? 그 친구들하고 대화하려면 싸움 밖에 안 돼. 그래서 그냥 서둘러 끊고 말아요."


이런 소재의 글이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 바꾸면 달라집니다. 이곳은 '역이민 카페'입니다. 즉 외국에서 오랜 이민생활 끝에 돌아오셨거나 돌아오실 계획이 있는 분들이 대상입니다. 그런 분들은 한국이 그동안 어떻게 바뀌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미국 교민들의 한국에 대한 생각은 한국을 떠났을 당시의 한국에 머물고 있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6년 넘게 살면서, 느끼고 생각한 모든 점을 피력하여 한국에 대해 알리는 것도 '역이민 카페'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정치든, 사회든, 문화든, 경제든 간에. 물론 개인의 단편적인 편견이라는 점도 고려해야겠지요.


욕망에 관한 짧은 말로 오늘 글을 마칩니다.


"욕심은 수많은 고통을 부르는 나팔이다." - 팔만대장경

"삶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첫째도 욕망, 둘째도 욕망, 셋째도 욕망이다." - 스탠리 쿠니츠

"욕망은 우리를 자꾸자꾸 끌고 간다.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 끌고 간다. 우리의 불행은 거기에 있다." -루소

"왜 굳이 의미를 찾으려 하는가? 인생은 욕망이지 의미가 아니다." - 찰리 채플린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탄핵 독후감  (0) 2017.03.14
내 아들은 비정규직  (0) 2017.02.03
노무현과 트럼프  (0) 2017.01.19
디지털 세상에서  (0) 2017.01.18
군주민수(君舟民水)  (0) 2017.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