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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탄핵 독후감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3월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대행이 탄핵 심판 선고일에 이 같은 역사에 길이 남을 심판결과를 주문했다. 이로써 작년 12월 9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이 의결된 후로 숨 가쁘게 진행된 대통령 탄핵은 예상대로 인용되었고, 작년 10월 말부터 이어진 촛불집회도 지난 토요일로 막을 내렸다. 


60 평생에 처음 겪는 대통령 탄핵이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는 한국에 없었을 뿐더러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번은 달랐다. 유신시대를 살아온 당사자로서 그때의 씨앗으로 집권한 박근혜 정부에 관심이 많았을 뿐더러, 은퇴자로서 할 일이 별로 없는 겨울이라 시간도 많았다. 지난 4개월 동안 독서할 시간도 없이 오후 2시부터 잠잘 때까지 각종 뉴스를 쫓아다니고 이슈의 배경에 집중했다. 


그야말로 한국 현대사에 영원히 기록될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책에서 읽었던 교훈, 법정스님이나 김수환 추기경 같은 스승의 가르침, 운명과도 같은 인과(因果), 역사의 반복을 볼 수 있었다. 지난 4개월 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을 깨달았을까?


최순실 하수인에서 내부 고발자로 돌아선 사람들


이번 사건에 단초를 제공한 결정적 인물은 (더블루K 이사) 고영태와 (K스포츠 부장) 노승일, (K스포츠 과장) 박헌영이었다. 고영태가 최순실과 내연의 관계였든 아니든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이들이 어떻게 최순실을 배신하고 내부 고발자가 되어 폭로에 앞장서게 되었을까.


원인은 최순실에게 있었다. 그녀는 이들을 존중하지 않았다. 일을 시키고 부려먹는 도구로 생각했을 뿐,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일의 내막도 알려주지 않았고 자신의 지시만 충실히 따르는 로봇의 역할을 요구했다. 


최순실의 가장 큰 실수는 이들이 한국체육대학의 동문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학연이라는 끈끈한 인연으로 뭉쳐진 이들은 최순실에게 충성하기보다는 자신들끼리 소통하며 정보를 주고받았다. 게다가 노승일은 학생회장 출신으로 리더십과 정의감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사람이 배반하도록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모욕감(Humiliation)이다. 지난 날 소위 '들이받은' 몇 차례의 하극상도 모욕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실수를 감싸주고 포용하는 보스들에게는 저절로 가슴에서 진한 충성심이 우러나왔다.


충성스런 신하에서 법정 증인이 된 사람들


헌재의 탄핵 심판에서 결정적 증인이 된 인물이, '체육계 대통령'으로 불렸던 (문화체육부 2차관) 김종, '왕수석'이라는 (정책수석) 안종범,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이었다. 이들에게는 심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척하는 인물들로 대통령은 말할 것 없고 최순실의 힘을 알고 무조건 복종하는 하인이었다.


체육계를 쥐고 흔들었던 김종과 청와대를 호령했던 왕수석 안종범은 법정에서는 한없이 초라한 모습이었다. 묻는 말에 거짓말을 하거나 부인하지 못하고 사실대로 순순히 자백했다. 미국에서 취득한 박사 학위의 안종범(위스콘신 대학)과 김종(뉴멕시코 대학)은 대통령이나 최순실의 지시를 꼼꼼하게 수첩에 기록하는 성실함(?)으로 결정적 증거를 남겼다.


박근혜 정권의 비호 아래 문화융성정책을 책임졌던 차은택도,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낱낱이 증언함으로써 대통령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들의 역할은 권력자의 의도를 영혼 없는 하인이나 머슴처럼 충실히 따르는 것이었다. 권력의 그늘 속에서 단물을 즐기다가 자신이 불리해지면 언제든지 주군에게도 달려드는, 역사 소설이나 사극에서 흔히 보는 인물이 바로 이들이었다.


회사 경영이나 국가 운영이나 인사가 만사다. 제대로 된 경영자라면 피해야 할 '0' 순위 인물들인 셈이다.


김평우 변호사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차남인 김평우(1945~) 변호사는 이번 대통령 대리인단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최악의 변론으로, 서석구 변호인과 함께 탄핵결정에 크게 기여했다. 경기 중·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서울 법대를 수석 졸업한 것은 물론 재학 중인 1967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면 하버드 대학 로스쿨을 수료한 인재다.


서울지방법원,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판사 등 1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판사 생활을 거쳐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1980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1981년 미국 뉴욕 휘트맨&랜삼 법률사무소 외국인 변호사를 거쳐 1982년 국내 영미식 로펌의 시초로 꼽히는 법무법인 세종 설립에 참여해 소속 변호사로 활동했고, 1997~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 2000~2002년 세계한인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했다. 게다가 동부그룹 총수의 매제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이 권위가 생명인 헌법재판소의 법정에서 비상식적인 발언과 심지어 재판관을 모독하는 막말을 하는가 하면, 법정 밖에서는 내란과 폭력을 조장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탄핵심판 후반에 대리인단에 가담하였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까닭을 추측해 본다.


드러난 증거에 법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적용하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재판으로 판단했을지 모른다. 방법은 딱 하나뿐! 억지 논리를 동원해서라도 탄핵의 부당함을 강조해서 정치적 여론전으로 몰아가야 한다는 것을 정확히 짚었기에 그랬을 거다. 그게 아니라면 제 정신이 아니었거나.


아무리 그랬다손 치더라도 '법과 양심에 의해 재판'하는 판사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양심을 저버린 행위가 아니었을까. 양심이 시키는 대로 했으면 변호를 맡지 말아야 하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 없는 78%의 여론


작년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234명의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전체 재적의원 300명의 정확히 78%이었으며, 조사기관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었으나 여론조사 결과도 78~81%의 찬성을 보였다. 이 결과는 탄핵심판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재미있던 것은 이 결과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김진태, 윤상현 같은 친박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대통령 대리인단과 박사모 등 맞불집회 사람들도 이런 결과를 반박했다. 반박 논리는 8~40%에 불과한 응답률이었다. 휴대폰 응답률은 10%이하였고 유선전화 응답율도 최고 40%를 넘지 않았다. 응답하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탄핵에 반대한다는 논리였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보고 듣지도 못한 것조차도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으로 믿어버리는 우격다짐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대한민국 최고 학력을 보유하고 가장 합리적인 법논리로 무장한 사람들조차 그럴진대 우리 같은 갑남을녀(甲男乙女)는 말할 것도 없다.


봉건왕조시대조차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민심을 왜곡한 사람들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었을까.


충신과 간신


어제 뉴스는 대통령 측은 끝까지 4:2:2의 심판으로 탄핵이 기각될 것으로 믿었다고 전한다. 4:2:2는 찬성이 4, 기각이 2, 각하가 2다. 박 대통령이 임명한 재판관이 두 명, 공안검사 출신이 한 명, TK 지역 판사 출신이 한 명이라는 것이 그렇게 믿었던 근거였다. 대통령도 그렇게 판단했던 듯하다. 탄핵이 인용되고 나서야 삼성동 집을 부랴부랴 수리하고 손본 것을 보면.


백성들이야 믿고싶은 대로 믿는다치더라도, 수십 수백 명의 내노라하는 정치인과 법률가, 학자들을 참모로 거느린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엉터리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답은 대통령 주변에 직언을 하는 충신은 하나도 없고, 복종하는 간신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된 잘못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언젠가 '권위주의'라는 글에도 썼지만, 권위적인 사람은 귀에 거슬리는 직언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기 속성 때문에 주변에는 항상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이 꼬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바로 그랬다. 대통령이 되지 전부터 자신의 수족 노릇을 했던 유승민이나 김무성 같은 사람들이나, 소신을 갖고 바른 소리를 하는 유진룡 문체부 장관이나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을 쳐냈다. 그 결과 주변에는 골박(골수 친박), 진(실한)박 같이 무조건 충성하는 간신들만 남게 되었고 어느 누구도 대통령의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가장 어이 없는 것은 대통령 대리인단의 이율배반적 모순이다. 그들은 헌재의 탄핵심판을 어떻게든 지연시키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면서도 대통령에게는 4:2:2로 탄핵이 기각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기각된다고 확신했다면 하루라도 빨리 재판을 진행시켜 대통령의 직무 복귀를 서둘러야 하지 않았을까. 실로 웃기는 짬뽕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간단한 논리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대통령은 참으로 우둔했다.


<후기>

글이 길어져 여기서 줄입니다.

자칭 글쟁이(?)로서 하루라도 글을 안 쓰면 허전하고, 생각나는 글감이 없어서 쓴 글이었습니다. 탄핵이 끝나면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네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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