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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가짜 뉴스 (Fake News) (끝)

아무런 객관적 근거 없이 하는 말이나 글은 그 사람의 생각이나 주장일 뿐이지 팩트는 아니다. 최소한 '신문에서 봤다니까!'라는 근거라도 제시해야 한다. 더 객관적인 팩트를 원하면 근거로 제시된 신문기사를 찾아 기사의 진위까지도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팩트로 받아들이기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까지 신문이나 방송을 탄 내용에 의심을 가져보지 않았다는 타성이 스마트폰 보급으로 일반화된 SNS를 타고 가짜 뉴스의 파급력을 높였다.


마케팅 연구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TV 광고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 브랜드에 대해 높은 충성도를 갖게 된다고 한다. 1980년 서울의 봄에 나는 군대에 있었다. 최전방에서 볼 수 있던 읽을거리는 온통 전두환 보안사령관 찬양으로 도배된 내무반의 '전우신문'뿐이었다. 당시에 듣보잡이었던 전두환의 육사생도 시절 축구부 주장을 지냈던 것부터 리더십이 뛰어난 지휘관이었다는 것까지,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내가 깡패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으로 착각하기에 충분했다. 거짓말도 반복해서 수십 번 듣게 되면 사실로 받아들이는 게 바로 우매한 인간의 습성이다.


십수 년 전 홍콩 배우 이연걸(미국명: 제트 리)에 대한 가짜 뉴스에 낚였던 것은 믿고 싶은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수 억 달러에 이르는 전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마흔 살의 나이에 속세를 떠나 입산하고 구도의 길에 나선다는 뉴스가 감동적이었기에 홀딱 속고 말았다. 아직도 인터넷에는 그 소문의 일부가 돌아다니고 있다.(기사보기따라서 가짜 뉴스에 속아 넘어가는 이유를 요약하면, ① 활자화된 문장을 쉽게 믿는 습성과 ②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보고 듣는 탓이고 ③ 마지막으로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믿고 싶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사회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은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정신적 문제를 갖고 살아간다고 한다. 이혼과 자살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전혀 불면과 우울감을 느끼지 않는 현대인은 별로 없다는 게 증거다. 주위를 둘러보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젊은이들이 대부분인 촛불 집회와 60대 이상 노인들이 주축으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맞불 집회를 어느 쪽이 조금이라도 더 정상이고 비정상인지를 분석해 본다.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일반적 경향이라는 것이지, 전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 경향이라 함은 50%를 넘는 경우를 의미한다.


살아계시면 아흔 살이 훌쩍 넘었을 부친은, 1950년 겨울 한국전쟁 평양 퇴각 때 인근의 고향에 연로하신 부모님과 처와 두 아들을 두고 단신 월남했다. 5살과 태어난 지 세 달이 된 두 아들을 데리고 피난을 떠나는 중에, 출산 후 얼마 되지 않은 부인의 다리가 퉁퉁 붓는 바람에 그만 돌아가라고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평생을 이북의 가족을 그리워하며 마음을 졸이고 사셨다. 젊은 시절 술을 마시면 인사불성이 되었다. 내 모친은 스무 살을 갓 넘은 나이에 아이를 뱃속에 두고, 경찰이었던 남편이 불에 타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퇴각하기 직전의 강원도 화천 주둔 인민군은 포로들을 전부 농협 창고에 가두고 불을 질렀다.


그분들의 고난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삶을 누리기에는 너무도 큰 고통을 겪었다. 영화 '실미도'와 같은 극한 훈련을 경험한 사람들이 어떻게 정상적일 수 있을까. 어렸을 때 배고팠던 경험을 갖고 있는 나는 아직도 음식을 잘 남기지 못한다. 배가 불러 괴로울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음식을 남기지 못하는 것이 과연 정상일까. 한국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을 겪은 사람과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나서 안정된 삶을 누린 사람들을 억지로 비교한다면 누가 더 정상일까. 매번 끼니거리를 걱정하는 집에 자란 아이와 여유로운 집에서 자유로운 교육을 받은 아이는 누가 더 정상일까.


유신 같은 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배운 우리보다는, 보다 세련되고 효율적인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 보다 진실에 가까운 사고를 지녔다고 믿는다. 좌파가 무엇인지 접근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살아온 우리보다는 유럽의 좌파활동을 정식으로 교육받은 젊은이들이 좌파에 대한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모든 부분이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교육만 옛날 그대로일 수는 없잖은가.


가짜 뉴스의 끝판왕은 '종북몰이'가 아닐까. 한국으로 돌아온 후 6년 동안 살면서 가장 많이 접한 단어가 바로 '종북좌파'이었다. 내가 가진 상식으로는 제정신인 사람이 '종북'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종북'의 실체가 무엇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았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종북의 실체에 대한 답을 어느 누구도 속시원하게 들려주지 않았다. 기껏 돌아온 답이래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었다. 북한에 퍼주는 바람에 그들이 핵무장을 했다는 주장이다. 특히 DJ 정부에서 박지원을 시켜 4억 달러를 불법으로 지원한 것이 바로 종북의 실체라는 답이었다. 개인적으로 햇볕정책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불법으로 4억 달러나 송금한 것을 찬성하거나 공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종북이라는 주장 또한 어불성설이다.


통일을 앞당기고 싶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게 너무 중요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데 있다. 어제 손석희 '앵커브리핑'에서 '법(法)'이라는 글자를 설명했다. '물 수(水)'변에 '갈 거(去)'가 바로 '法'이라는 글자다. 즉, 물이 흘러가듯 순리를 따르는 게 법이라는 설명이었다. 아무리 통일이 중요하더라도 법을 지키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 시간을 두고 공론을 충분히 형성한 뒤, 합법적으로 돈을 보냈다면 종북몰이로 국론이 양분되는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4억 달러가 핵개발에 도움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그것 가지고 개발에 성공했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개인도 아니고 2천 만이 넘는 인구를 가진 자원부국에서 4억 달러가 그리 큰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종북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려준 것은 김기춘 씨다. 그는 문화예술계 인사 만 명에 가까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정부의 지원금을 차단했고,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 전경련과 국정원을 동원하여 불법자금을 지원했다.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것은 '종북좌파' 성향이라는 판단이 기준이었으며, 화이트리스트는 정부의 정책에 지지한다는 집단이기에 선택되었다. 대표적 화이트리스트로 정부지원을 받는 단체인 '박사모', '자유총연맹', '엄마부대'와 '어버이연합'은 정부를 지지하기 보다는 정권을 지지하는 단체라는 점에서, 종북의 실체는 정권에 저항하고 반대하는 집단이다.


따라서 종북의 실체는 없다는 것을 김기춘 씨가 제대로 가르쳐 주었다. 그에 따르면 종북은 없고, 종북 프레임은 있다.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에게 '종북 프레임'을 씌워 배척하고 불이익을 주는 것이 종북몰이의 실체니까. 그런 관점이라면 나는 철저하게 '종북좌빨'인 셈이다.


세상은 이미 우리 세대의 손을 떠났다. 더 이상 우리 세대가 좌우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세상은 젊은 세대로 넘어갔다. 그들이 50년, 60년을 살아갈 세상이다. 기껏해봤자 20년, 30년을 살다가 떠날 우리 세대는 손주들 돌보는 것에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가급적 다음 세대에게 피해주지 않고 살다가 떠나면 그뿐이다.


2천 년 전에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카이저의 것은 카이저에게로!


<후기>

4회에 걸친 이번 글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자료를 찾고 링크를 붙이느라고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끝까지 긴 글 읽어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은 이 또한 '가짜 뉴스'라고 생각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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