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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참척의 고통(慘慽之痛)

인간사에서 가장 큰 슬픔은 어떤 것일까?라는 물음으로 글을 시작한다. 유교문화권에서 농경사회를 살았던 우리 앞 세대는, 부모의 사망을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라는 의미의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고 표현하여, 인생 최고의 슬픔으로 여겼다.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농경 지식으로 농사를 해서 먹고살았던 시대였으니 당연했다. 즉, 부모의 경험에 의지해서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부모의 죽음으로 인해 스스로 식솔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니 하늘이 무너진다는 표현이 과장만은 아니다.


어렸을 때 읽었던 무협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로, 부모의 복수가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모를 살해한 원수를,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이라며 최고의 무술을 연마한 후, 찾아가서 통쾌하게 복수하는 결말이었다. 그런 내용이 요즘에도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 그런 소설을 쓴다면 아버지 원한을 갚는다는 설정하기 보다는 사랑이나 연인을 위한 쟁탈로 바뀌어야 읽히지 않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쏟아지는 현대의 고도산업사회에서 같은 논리를 적용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흔하다.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신기술의 시대에서 눈썰미도 떨어지고 기억력도 쇠퇴한 부모들이,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 턱이 없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짐까지 된다면, 극도로 양극화가 심화된 세상에서는 설상가상이다.


변하는 세상에 따라 자식의 부모관은 변했지만,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마음은 그대로다. 아니, 한두 명의 자녀뿐인 요즘이 더 애틋해졌는지도 모른다. 식구 수가 곧바로 노동력이었던 과거의 농경사회에는 대여섯 명의 자식이 보통이었고,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또 낳으면 돼지!’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시대가 바뀐 현대에서 부모의 죽음이 더 이상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슬픔은커녕 내 경우는 그 반대였다. 10여 년 전 내 기도제목은 ‘엄마의 죽음’이었다. 치매로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하고 아무 곳에서나 본다는 여동생의 전언은 차라리 고통보다 심한 고문이었다. 미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빨리 돌아가시게 해달라는 기도가 전부였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이기에 더했다. 글의 소재에서 많이 벗어났으나,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글이 자꾸 옆으로 샌다.


‘천붕지통’의 반대가 ‘참척지통’이다.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자식이나 손주가 사망하는 슬픔을 의미한다. ‘참(慘)’은 참혹하다는 뜻이고, ‘척(慽)’은 슬프다는 뜻이니까, ‘너무 슬퍼서 참혹하다’ 거나 ‘참혹할 정도의 슬픔’으로 해석된다. 인생사에서 천붕이 과거에 최고의 슬픔이었다면 참척은 현시대에 최고의 고통일 것이다. 너무 끔찍해서 상상조차 버겁다.


대학생이었던 1976년, 아버지의 사촌동생이 사고를 당했던 일이 있었다. 4·19 때 서울대 상대 학생회장을 지냈을 만큼 대단했던 분으로 당시에 사업체를 운영했다. 내게는 할머니이자 아버지에게는 이모님이었던 분이 얼마나 슬퍼하셨는지 잊지 못한다. 몇 날 며칠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초점 잃은 눈동자를 허공에 둔 채, ‘우~~’하는 짐승이 내는 듯한 신음소리만 내셨다. 내가 최초로 목격한 참척지통이었다.


참척을 언급할 때, 고(故) 박완서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난 직후인 1988년 가을, 남편을 여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6살의 의사였던 외아들을 사고로 잃었다. 이미 사위와 손주를 본 할머니이었으나,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선생은 십자가를 내던지며 몸부림쳤다. 절망감으로 신(神)을 부정하고 저주하며, 생명의 본능 때문에 음식을 억지로 먹고는 모조리 토해내는 이야기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선생의 자전적 소설에 나오는 한국전쟁 때 오빠가 죽는 장면과 아들을 잃은 엄마의 처절한 묘사에 소름이 돋았었다. 체질이나 육체적인 것만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도 유전된다는, 언젠가 들었던 신부님의 강론이 왜 그때 떠올랐는지.


살다 보니 참척지통을 당한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다. 아니, ROTC를 거쳐 장교로 제대한 여름, 경포대에서 익사로 죽은 친구도 있다. 친구가 죽을 때 같이 있던 또 다른 친구는 아직까지도 그 기억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그게 얼마나 큰 아픔이고 슬픔인지는 고인이 된 할머니와 박완서 선생을 인용할 필요도 없다. 참척지통을 당한 가족과 친구는 순간적으로 10년은 더 늙었으니까. 게다가 친구의 참척은 유일한 자식이 첫 직장에서 당한 사고이었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고, 어떤 행동도 고통이나 슬픔을 덜어줄 수 없다. 같이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밖에.


누군가의 유서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삶도 죽음도 자연의 일부다. 따라서 우리 주변 가까이에는 삶과 함께 늘 죽음도 존재하지만, 자연의 일부라고 해서 모든 죽음이 같을 수는 없다. 아흔이 넘은 부모님의 죽음은 더 이상 천붕이 아니지만, 젊음의 예기치 않은 사고는 참척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하다. 3년 전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로 250명의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이 변을 당했다. 그야말로 500명의 부모들이 졸지에 참척지통 속에서 살게 되었다는 의미다.


서서히 물속으로 잠기는 선수를 TV로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고통을 느꼈다. 아이들보다는 그들의 부모들이 걱정되었다. 내 아이들은 다 성장했다고 해서, 내 아이들은 미국에 살고 있다고 해서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을 읽어서 그랬는지, 참척지통을 겪은 가족과 친구가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부모의 입장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남은 인생이 지옥이나 다름없을 부모들을 생각하면 끔찍했다. 참척의 고통이 박완서 선생만 특별하지는 않을 테니까. 선생이 세월호 참극을 만나기 전에 돌아가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대통령이라면 그들의 아픔 속으로 들어가서 고통을 함께했어야 옳았다. 경찰서가 됐든 정부청사가 됐든 그들과 같이 행진하며 슬픔을 같이하지는 못할망정, 대통령을 만나겠다며 청와대로 향하는 그들을 경찰로 하여금 막아서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심지어 세월호를 연상케 하는 노란색마저 싫어했다고 뉴스가 전한다. 대통령 탄핵은 최순실 때문에 벌어진 게 아니고, 훨씬 이전인 세월호 침몰에 대한 무책임한 대응이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500명이 넘는 참척의 고통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서브프라임 때문에 발발한 것이 아니고, 2001년 9/11이 원인이었던 것처럼. 어쩌면 1979년 10월 26일에 오늘날의 혼란이 잉태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식이 없는 박 대통령은 자신의 천붕만 중요했을 뿐, 타인의 참척은 무시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무 일없이 건강하게 성장한 세 아이들이 고맙다. 오늘날 내가 행복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큰 고통 없이 살아가는 것도 아이들 덕분이니까. 그저 모든 게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여기서 무엇을 더 바라면 욕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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