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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노스텔지어의 글 (퍼온 글)

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들까?

담장은 사생활을 보호하고 사유 재산의 경계 표시입니다. 국경의 담은 국가 간의 경계를 표시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담은 내 재산의 경계 표시로 담을 쌓는 사람이 당연히 비용부담을 해야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멕시코와 국경의 담 건설비용을 멕시코가 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멕시코는 담이 필요치 않습니다. 국가 간 경제력 차이로 일어나는 인구 ‘삼투압’ 현상이 지속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국경의 담이 의미 없다는 것은 캐나다와 미국 간의 담 얘기가 없는 것만 봐도 지극히 포퓰리즘 정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담도 부족해 유리를 깨 담 위에 꽂아도 도둑은 넘습니다.

트럼프 같은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 것은 레이건 시대부터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폐해입니다. 자본주의의 단점인 부익부 빈익빈의 결과 소득분배 불균형으로 인한 반발의 결과입니다. 원가 절감을 위해 멕시코와 중국을 비롯한 이머징 마켓의 국가로 생산시설을 옮기고 나니 동부의 러스트벨트가 생긴 것이고 그 결과 백인 우월주의자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수 년 전에 미국의 정치와 경제가 문제 있다고 쓴 글이 있습니다.(관련글 보기)


정당하지 못한 일은 반드시 부메랑으로 되돌아옵니다. 트럼프 대통령 탄생은 미국의 군산복합체(관련글 보기) 정치의 역풍입니다. CIA는 미국의 이해에 반하는 타국 정부를 전복시키는 비밀 병기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현재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테러 공포를 주고 있는 이슬람 무장 세력도 탄생의 뿌리는 미국이 뿌린 것입니다. 구소련과 아프가니스탄은 1979년부터 1989년까지 거의 10년 동안 전쟁을 합니다. 언뜻 보면 미국과 베트남 전쟁처럼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자세한 내막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호되게 당한 경험으로 소련 붕괴를 노리고 비밀리에 아프가니스탄 반군을 지원한 결과 결국 소련이 손을 들고 철수하게 됩니다.

이 세력이 무자헤딘(성전지하드에서 싸우는 전사)으로 시아파와(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아들이 없어 사촌 동생이자 사위인 알리를 추종하며 무함마드 혈통만이 칼리파인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종파) 수니파(공동체 합으로 종교 지도자를 뽑는 종파)인데, 수니파가 시아파의 지도자인 알리와 차남 후세인과 가족들을 암살하자 시아파와 수니파는 원수가 됐습니다. 여기서 변종된 것이 바로 911테러 세력인 알카에다 세력이고 이라크와 시리아를 미국이 붕괴시키자 정권을 잡았던 세력이 변종이 되어 이슬람 국가라는 IS 테러 집단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슬람 공포증을 이용하여 정권을 잡은 이가 바로 현재의 트럼프입니다.

이처럼 미국은 눈앞의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다가 수년 후 부메랑으로 돌아오면 돌변합니다. 마치 다른 나라의 이익을 위해 미국이 희생한 것처럼 여론을 형성합니다.

자신은 너무 똑똑해 책을 읽지 않는다는 트럼프에게 시 한 수 소개합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너무 좋아했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관련글 보기)의 시입니다. 좀 길지만, 전문을 소개합니다.

담장 수리 (Mending Wall) Robert Frost


뭔지 담을 좋아하지 않는 게 있어,

그게 담 밑의 언 땅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담 위의 돌들을 밖으로 굴러 내리게 하지요.

그래서 두 사람이 넉넉히 지나다닐 수 있는 틈을 만들거든요.


사냥꾼들이 하는 짓은 또 다른 문제예요.

그들이 담을 다 망가뜨리고 지나간 뒤

나는 그걸 수리한 일이 있지만

허나 그들은 토끼를 몰아

짖어대는 개들을 즐겁게 해주거든요.


내가 지금 말하는 틈은

누가 그랬든지 보지도 듣지도 못했는데

봄에 수리하다 보면 그렇게 돼 있단 말이어요.


나는 언덕 너머 사는 이웃집에 알리고,

날을 받아 만나서 두 집 경계선을 걸으며

두 집 사이에 다시 담을 쌓아 올리죠.

우리는 우리 사이에 담을 유지해요.


담 양쪽에 떨어진 돌들을 서로가 주워 올려야 하고요.

어떤 돌은 모가 나서 넓적하고 어떤 건 거의 공 같아서

우리는 그것들을 올려놓으며 주문을 다 외어야 해요.


“우리가 돌아설 때까지 제발 떨어지지 말아다오!”

돌을 만지느라고 손이 거칠어집니다.

뭐 그저 양쪽에 한 사람씩 서서 하는

좀 색다른 야외 놀이지요좀 더 갑니다.

그러면 담이 소용없는 곳이 나오지요.

저쪽은 전부 소나무고 이쪽은 사과나무예요.

내 사과나무가 경계선을 넘어가

떨어진 솔방울을 먹지는 않겠지요, 하고 그에게 말합니다.


그는 단지 “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되지요”라고 말할 뿐이에요.

봄은 나에게는 재난의 계절, 그래서 나는 혹시

그를 깨우쳐 줄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보지요.


“왜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들죠?

소를 기르는 곳에서나 그렇지 않나요? 여기는 소도 없는데요뭐

담을 쌓기 전에 알고 싶어요.

내가 도대체 담으로 무엇을 막으며

누구를 해롭게 하고 싶어 하느냐에 대해서 말이죠.

뭔가 담을 싫어하는 게 있어서

그게 담을 무너뜨리고 싶어 합니다.”


나는 그에게 “요정이에요”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그게 꼭 요정인지도 알 수 없고,

그래서 나는 그가 스스로 알게 되기를 바라지요.


나는 그가 구석기시대의 야만인처럼

양쪽 손에 돌을 잔뜩 거머쥐고 옮기는 걸 봅니다.

내가 보기엔 그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은데요,

숲이나 나무 그늘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그는 자기 아버지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고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되풀이합니다.

“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되지요.” (번역 정현종 시인)


원문 제목은 담장, 벽(Wall)이지만, 본문에는 화자인 시인이 아니라 이웃 사람을 통하여 옛 고사를 인용하도록 하여 반어적으로 울타리가(Fence) 필요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합니다. 내 땅에는 사과나무가 있고 이웃에는 소나무뿐인데 이종 간에 무슨 울타리며 담이 필요하냐는 말입니다. 과연 “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


낮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듭니다. 담을 쌓는 순간 나의 공간은 한정되고 담장을 허물면 자연과 이웃 간의 사유 공간이 무한대로 확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