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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노무현과 트럼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처음 참가한 투표가 2008년 오바마가 출마한 대선이었고, 오바마는 그때까지 내가 선거에서 투표한 사람으로 당선된 첫 대통령이었다. 그 오바마가 오늘로 두 번의 임기를 끝내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다. 나는 그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금융위기 때 해고된 나는 평상시의 네 배가 넘는 장장 98주에 걸친 실업수당 덕분에 2년 동안 생계유지에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레이오프 전까지는 정치나 경제 같은 시사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탓에, 오바마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예상치 못한 실업자가 되어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기도 했지만, 미국의 금융위기를 가져온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궁금증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면서 시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관련된 모든 기사를 인터넷을 뒤져 읽었던 것은 난생처음 아무 대책도 없이 비자발적 실업자가 된 충격도 한몫했을 거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한국에 있지도 않았고,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된 지 2년도 안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논할 자격도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경험에 의존하기보다는 그동안 책과 기사를 읽고 다큐에서 얻은 지식에 근거해서, 전문가가 아닌 갑남을녀의 시선으로 두 사람을 비교한다.


두 사람은 출생에 있어서 정확히 15년(1946년과 1961년) 차이가 난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보면 절반 세대 차이인 셈으로 50대 중반과 40대 중반에 대통령에 당선된다. 시민운동가와 인권변호사 즉 법조인 출신이지만 그들의 성장기는 차이가 크다. 외할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으로 사립학교에 다니고, 시민운동가로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오바마에 비해, 고졸 출신의 노무현은 글자 그대로 ‘형설의 공’으로 성공을 일구었다. 인권변호사로서 가시밭길을 선택한 동기는 다르지만, 그전까지는 돈을 잘 벌거나 탄탄한 직장에서 안정적 지위를 누리던, 소위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는 점은 같다.


당내 대선 경선에 입후보했을 때는 소속 당에서 미미한 지지기반으로 출발했으나 젊은 세대와 진보세력의 적극적 지지로 돌풍을 일으킨 끝에, 노무현은 이인제라는 정치 거목을 오바마는 힐러리라는 감당하기 버거운 기득권을 물리치고 후보가 되었다. 후보가 된 후에는 비교적 순탄한 과정을 거쳐 대통령이 된 오바마에 비해, 노무현은 당내 내분과 후보 단일화 및 파기 등 몹시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국회의원 출신이라는 점은 같지만, 대도시를 택한 오바마에 비해 출신지를 고집한 노무현은 수차례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말과 연설을 잘하고 토론에 능했으며 탈권위적인 점은 같았으나, 오바마의 탈권위는 여론으로부터 호감을 얻은 반면에, 노무현의 서민적 언행은 대통령 위신을 추락시킨다며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진보적 가치 실현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도 미국에서는 존중받았지만, 한국에서는 언론으로부터 좌파라며 매도되었다. 당선되기 전에 미국을 방문한 적이 없는 고졸 출신 대통령으로 반미주의자로 낙인찍혔으나, 이라크에는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군대를 파병했으며 미국과 FTA를 추진했다. 이로 인해 지지자들과 진보언론이라는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으로부터 비난에도 시달려야 했다.


재임기간 중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화려한 백악관 시대를 보낸 오바마에 비해, 노무현은 국회의 탄핵으로 두 달가량 직무가 정지되기도 했으며 보수언론과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언론과 자신의 진영으로부터도 조롱과 비판을 받았다. 임기를 끝낼 즈음 노무현의 지지여론은 10% 안팎이었으나, 오바마는 55%라는 높은 지지로 퇴임연설에서 군중으로부터 “4년 더(4 more year)”라는 환호성을 받았다. 퇴임 후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로 돌아가는 오바마가 미국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알 수 없지만, 고향으로 돌아간 노무현은 MB 정권의 정치적 탄압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궁지에 몰린다.


2007년 12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정치성과는 거리를 둔 실용주의를 내세우면서,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임자가 존중받는 전통을 만들겠다는 약속으로, 전임 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 가능성을 배제하였으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내일 취임하는 트럼프가 앞으로 오바마에게 어떻게 보복하는지 두고 볼 일이다. 물론 삼권분립을 비롯한 민주주의 체제가 잘 갖춰진 미국이 한국과는 다르겠지만, 오바마에게 출생지를 문제 삼으며 끊임없이 시비를 걸다가 공개망신을 당한 기억이 있는 트럼프가 가만있지는 않을 것 같다. 이미 오바마 최대 업적으로 손꼽히는 오바마케어와 TPP 폐기를 선언한 바 있다.


임기 말 지지도는 오바마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부터 평가가 오르며 시간이 갈수록 지지도가 상승하고 있다. 2010년 9월에 시행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은 누구인지’ 묻는 여론조사에서 박정희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가장 많이 올랐다. 전체 지지율은 25.3%로 박정희에 이어 2위로 나타났으며 특히 20~30대 젊은 층과, 화이트칼라 직종, 대학 재학 이상의 고학력층에서는 박정희를 능가하는 지지율을 보였다. 폭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는 노무현에 대해 미국 대사관이 “고졸 출신의 대통령으로서 국제무대에서는 신인이지만 주관이 뚜렷하고 신념이 확고하다"라고 긍정적으로 평했다고 전했다.


오바마와 노무현, 노무현과 오바마는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환경, 서로 다른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지만, 무지한 내 눈에는 서로 닮은 점이 더 많이 보였다. 하물며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링컨 대통령을 말하는 것도, 시대를 너무 앞서 갔다는 점도, 눈앞의 이익이나 여론보다는 멀리 보고 인류애 같은 큰 가치에 치중했다는 점도 닮았다. 노무현은 2003년 구태의연한 대법관 선발 관행에 제동을 걸고는 최초로 여성 헌법재판관(전효숙)과 서열을 무시한 여성 대법관(김영란)을, 오바마는 최초로 히스패닉계 여성 대법관을 탄생시켰다. 또한 경선을 했던 상대방을 내각의 주요 포스트로 기용한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두 번의 임기를 끝내고도 50대 중반에 불과한 오바마가 앞으로 미국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주목된다. 그리고 이미 고인이 되었으나, 노무현이 미국과 같은 환경에서 대통령을 지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어리석은 상상을 해본다.


2017년 1월 19일, 오바마의 임기가 끝나는 날에


▼ 오바마 당선 직후부터 끊임없이 오바마의 출생을 물고 늘어졌던 트럼프

▼ 백악관에 초청된 인사들에게 오바마가 연설 중에 트럼프를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참석자들의 시선이 트럼프에게 쏠린다.

▼ 오바마는 이때 트럼프가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때 당한 망신을 되갚아주기 위해,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물론 호사가들의 입방아라고 생각한다.

 오바마가 조크삼아 제시한 트럼프의 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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