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거짓말하는 사람들

회사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감사(監査)에서 적발되거나 신문에 기사로 실리면, 높은 사람들은 사실을 축소하거나 은폐하기에 바빴다는 것이, 지난날 내가 경험했던 직장생활이었다. 구조적인 전체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비리로 국한시킨다든가, 잘못된 정보나 오해에서 비롯된 착오로 몰기 위한 대책회의가 이어졌고, 담당 실무자들은 말을 맞추기 위한 목적으로 가상 질문과 답변으로 연습도 했으며, 과거에 만들어졌던 서류를 새로 만들기까지 했다.


2~30년에 한국에서 했던 직장생활을 기억하게 만든 것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연일 터져 나오는 뉴스 때문이다. 청문회나 특검에 불려 나온 인물들은 모르는 일이라거나, 자신이 관여한 일이 아니라며 하나같이 부인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별로 낯설지 않았다. 그런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거짓과 허위를 처음 접한 것은 군대였다. ‘통신 기재계’라는 이름으로 포병대대본부에서 통신 기자재를 담당했던 나는, 사단이나 포병단에서 검열 나온다고 하면 남는 기자재를 땅에 파묻거나, 모자라는 자재를 맞추기 위해 허위서류를 밤새 만들곤 했다.


왜 그랬을까? 그건 실제로 하는 일과 해야 했던 일의 괴리 때문이었다. 통신 기재계로서 내 위치는 통신자재창고로 훈련에 필요한 기자재를 관리하는 일이었지만, 해야 했던 일은 주로 작업이었다. 사단장이 지나간다고 하면 비포장도로를 포장도로처럼 평탄하게 만드는 작업에 동원되었고, 전방에 필요한 각종 건설현장에 작업인부로 차출되었다. 행정병으로서 행정을 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휴대용 무전기에 필요한 배터리를 사적인 용도로 장교나 선임하사들이 요구하면 거절할 수도 없어서, 장부와 실제 현황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사찰 나온 검열관에게 적당하게 거짓말로 둘러대었음은 물론이다.


‘가라 행정’이 일반화된 군대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회사생활에서도 거짓과 허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게 ‘가라 출장’이었다. 부서에 필요한 경비를 만든다는 핑계로 공공연하게 ‘가지도 않는 서류상 출장’이 행해졌다. 그날 생성된 서류의 사인 란에는 ‘출장’이라고 표시하고 빈칸으로 남겼다. 지금은 그런 관행이 없어졌는지 모르겠으나, 웃지 못할 코미디 같은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감사가 나올 때는 불필요한 서류들을 집에 가져다 놓기도 했고, 1~2년 된 서류들을 다시 검토하여 출장 기록과 업무일지를 맞춘다든가 빠진 서류들을 챙기기도 했다.


청문회에 불려 나와 무섭게 다그치는 국회의원에게 얌전한 모습으로 거짓말을 늘어놓는 증인들을 보면서, 증인들에게 일말의 동정심이 인 것은 감사관이나 검열관 앞에서 쩔쩔매던 과거의 내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그들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권력의 정점에서 한 나라를 좌지우지했던 권력자들이고, 명문대를 졸업하고 일찍이 유학을 다녀온 석·박사들이며 사회와 국가의 지도자들이다. 고작 건전지 개수나 갖고 검열관 앞에서 거짓말하고 허위서류를 내놓는 나 같은 사람과 같을 수 없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K스포츠의 박헌영 과장이나 노승일 부장 같은 ‘갑남을녀’였으며, 온갖 권력을 한 손에 거머쥐고 국민의 삶을 쥐락펴락했던 대단한 능력의 사람들은 모른다거나 개입하지 않았다는 말로 무능함을 가장하며 거짓말을 일삼았다.


이를 귀납적 방법론으로 해석한다면, 솔직한 사람은 평범한 인생으로 끝나고 거짓말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종합대학의 총장이나 학자, 혹은 장·차관이나 대통령 비서관 같이 출세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물론 ‘내가 해봐서 알지만(?)’ 거짓말도 좋은 머리를 필요로 한다. 누구에게, 언제,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일일이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수재로 소문났던 김기춘이나 우병우 씨가 그래서 그토록 거짓말에 능수능란하고, 그렇게까지 출세에 출세를 거듭했는지 모를 일이다.


다시 내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본다. 1960년대 살던 빈민촌이 부끄러워 가정방문하겠다는 담임에게 부모님이 안 계시다고 거짓말을 했고, 도시락 반찬이 창피해서 숨겼으며, 대학 축제 때 찾아온 파트너를 거짓말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창피하고 숨기고 싶지만, 나이 탓인지는 몰라도 그럴수록 더 기억 밖으로 뛰쳐나와 밤을 불면으로 만들곤 한다. 소심한 인간으로서 순간의 수치를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는데도 그랬다. 미국에서 가족여행 때 숙박료에 붙는 추가 요금 몇 푼 아끼려고 했다가 들통났던 거짓말은 수치심이 더 오래갔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배우고, 훨씬 더 똑똑하고, 훨씬 더 대범해서 수치심 속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지 않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뻔뻔하고 대범하더라도 진실을 떳떳하게 밝히고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교육자로서 또는 사회나 국가의 지도자급 인물로서, 남은 인생 동안 스스로 괴로워하지 않고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나저나 거짓말하지 않는 정직한 사람들이 총장이나 학장이 되고 장·차관을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부터 거짓말과 말 바꾸기를 일삼는 나라에서, 거짓말이 너무 일상화되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바랄 수 없는 희망일까.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척의 고통(慘慽之痛)  (1) 2017.02.11
정치와 종교  (0) 2017.01.30
Glory taking, blame passing  (0) 2016.12.27
앵커브리핑과 항소이유서  (0) 2016.12.21
우리에게 북한이라는 존재는?  (0) 2016.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