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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가을아침(秋朝)의 역설적 단상

드디어 약속한 일을 끝냈다. 장장 5주에 걸쳐 궂은 날을 제외하고 아침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쉼 없이 케이블을 자르고 연결하는 단순한 일을 반복했다. 사실 육체적으로 고된 일은 더 이상 싫었다. 평상시 같으면 거절했겠지만, 한국을 방문했던 딸아이 부부가 돌아가고 난 후, 마음이 영 허전해서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잡념이 심했다. 책을 펼쳐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부질없이 불쑥불쑥 찾아드는 자책과 회한으로 괴로웠다.


그러던 중 제주에서 사귄 친구 P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니 11월 말까지만 도와달라는 말에 전혀 망설임 없이 나섰다. 기대했던 대로 시간은 잘 갔다.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하는 일이지만 20가닥의 가느다란 통신선을 착오 없이 연결하는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실수하기 쉬웠으므로 배가 고픈지도 식사시간이 됐는지도 몰랐다. 아침이면 손가락이 굽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팠으나 움직이다 보면 통증은 사라졌다. 가느다란 통신선을 연결하느라 사용한 손가락 끝에는 굳은살이 앉았다.


그래도 그런대로 할 만했으나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심한 날씨로 바뀌자 상황이 변했다. 좁은 골목을 휘몰아치는 바람이 전하는 한기를 이겨내기가 버거웠다. 한겨울에도 입은 적이 없는 내복을 영상인 날씨에도 불구하고 꺼내 입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추위를 느꼈다. 목도리까지 칭칭 감고 일하기도 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라는 명언은 유행가 가사에만 있는 말은 아니었다. 많이 느끼고 배웠다. 노동이나 막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을 이해할 것 같았다. 예전에는 힘들게 번 돈으로 술 마시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지하고 못난 그들 탓이라고만 여겼기에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거다. 그런 돈이 있으면 어떻게든 저축해서 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해야 옳지 않겠느냐며 그들을 탓했다. 마치 자신이 무슨 지식인이나 되는 체하며 교만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읽었던 두 개의 기사가 생각났다.


먼저는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추기경이 된 정진석 서울 대교구장이 신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동기다. 서울대 학생시절 일어난 한국전쟁 중에 영어실력으로 포로수용소에서 감시하는 미군의 통역을 맡았다. 인간으로서 최악의 상황에 처한 전쟁포로들이 철조망 부근을 맴돌며 암매하는 보따리장수들에게서, 목숨과도 같은 돈으로 개피 담배를 몰래 사 피우는 것을 보고 같은 인간으로서 절망을 느꼈다는 것이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 동기였다고 신문은 전했다.


다음으로 희망이 없어 오히려 현재가 행복하다는 일본 청년들에 대해 쓴 책이다.(기사 읽기) “희망이 없다, 고로 나는 지금 행복하다”는 논리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서로 다른 듯하지만 실상은 같은 내용이라는 통찰이, 골목길에서 찬바람을 맞던 중에 불현듯 떠올랐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면 오늘, 바로 지금의 순간을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담배 한 모금을 깊숙이 빨아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어서 복잡한 잡념에 사로잡힌 머리를 단순하게 만든다거나, 소주 한 병을 뱃속에 털어 넣어 온몸에 퍼지는 열기를 느끼기 위해 지금 가진 모든 것을 건다는 것을 이해할 것 같다는 거다. 앞의 말의 단어를 반댓말로 바꿔, “희망이 많다, 고로 나는 지금 불행하다”로 해도 같은 의미가 되지 않을까?


이 역설적 논리에 ‘최순실’을 대입해 본다. 지난 4년 동안 그녀만큼 희망이 가득했던 사람이 대한민국에 또 있었을까?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기껏 헬스클럽 트레이너인 34세의 젊은 여성도 청와대 3급 행정관으로 넣을 수 있었으니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 고시를 패스한 사무관도 부이사관인 3급까지 올라가려면 20년은 족히 걸리는 게 현실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대통령을 시켜 언제라도 끌어내렸고 자신을 만족시키는 사람은 누구라도 높은 자리에 올릴 수 있었던 그녀는 과연 행복했을까? 구치소에 갇힌 피의자로 전락한 지금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할까?


정당하든 부당하게 모은 재산이든 이미 수천억대의 부동산을 가진 그녀에게 무엇이 더 필요했을까? 그녀에게 만약 더 이상의 희망이 없었다면 - 물론 여기서의 희망은 그녀에게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 자신의 아바타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다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제주의 모진 바람을 피하기 위해 골목길 안쪽 시멘트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희망이 너무 많아 불행해진 순실이' 생각에 잠기며 떠올린 미소를 P가 큰 소리로 조각내 버렸다.

“장형, 점심 먹으러 갑시다!”


<후기>

오늘부로 저는 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제 본업인 카페지기로, 아니 자칭 글쟁이(?)로. 하하하, 지난달 7일 딸아이의 방문으로 깨졌던 일상이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짜증도 나고 화나는 일도 있었으나, 참고 견디며 약속을 지킨 것에 만족합니다. 스스로에게 상이라도 주어야겠습니다.


앞으로 며칠은 일하고 경험하면서 제주에 대해, 그리고 평범한 삶에 대해 보고 느낀 것에 대한 글을 차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에 계시는 분들은 추수감사절 연휴를 마지막까지 가족과 함께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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